미세 플라스틱의 악몽
메이크업 제품에 들어간 펄과 글리터는 머리카락 한 올보다 얇은 미세 입자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입자가 지구에 남기는 발자국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SEEING CLEARLY
글리터를 활용하면 꿈속에서 본 듯한 몽환적인 메이크업을 연출할 수 있다. 하지만 글리터가 지구에 남긴 발자국이 악몽에 가깝다면?
골드 펄이 들어 있는 초콜릿색 아이섀도를 펴 바르고, 프리즘처럼 영롱한 구릿빛으로 포인트를 준다. 마지막으로 눈 앞머리에 은은하게 빛나는 샴페인 컬러 반짝이를 톡톡 얹어주면 외출 준비 끝. 화려한 금요일 밤을 즐길 때도, 피곤한 월요일 아침 얼굴에 생기를 더할 때도, 글리터만큼 유용하고 효과적인 것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답기만 한 글리터가 지구에는 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클렌징 후 하수도로 흘러 들어간 글리터 미세입자는 흙은 물론이고 강과 대기, 먼지에서도 검출된다고 한다. 이에 과학자들은 글리터가 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천연 추출물이든 합성 물질이든, 글리터는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글리터는 미세플라스틱, 셀룰로오스, 운모(마이카), 유리. 미세플라스틱의 4가지 성분 중 하나로 만들어진다. 미세플라스틱은 염색과 가공이 저렴하지만 가장 큰 환경 오염을 유발한다. 메이크업을 씻어내면, 글리터 잔여물은 배수관을 통해 폐수처리장으로 이동한다. 이때 침전되거나 필터에 걸러진 글리터는 다행히도 농업 비료로 재활용할 수 있지만, 아주 미세해 필터를 통과한 잔여물은 그대로 호수, 강,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터키 시카리아 대학 환경공학과 교수 메럴 유트세버에 따르면, 이 글리터 조각들은 생분해되지 않고 수세기 동안 지구에 남게 된다고. 수십 년도 아닌 수백 년 동안 말이다. 날카로운 형태도 문제다. 동물이나 어류가 미세플라스틱을 삼키는 경우, 동그란 모양은 소화 기관을 통과해 체외로 배출되기 쉽지만 날카로운 모양은 체내에 남아 위장 천공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글리터지만 생물체에게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다. 글리터 폐기물은 결국 돌고 돌아 우리의 식탁에 올라온다. “바다로 흘러 들어간 미세플라스틱은 천일염이나 생선에서도 발견돼요. 우리도 모르게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다는 이야기죠.” 플라스틱 오염 감소를 위한 비영리 환경단체인 5대 환류 연구소(5 Gyres)의 리사 어들의 말이다. 우리가 사용하고 버린 폐기물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온다. 이는 분명히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미세플라스틱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화학 물질이 암을 유발하고 여성의 임신 가능성, 남성의 정자 활동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죠. 이외에 광범위한 부작용을 유발하기도 하고요.”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에서 지속 가능성 관련 연구를 총괄하는 화학자 셰리 메이슨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글리터 제품에 미세플라스틱은 얼마나 흔하게 사용될까? <얼루어 US>가 조사에 착수했다. 다양한 뷰티 브랜드에서 출시한 약 100개 제품의 성분을 살펴보았고, 그중 32%가량이 미세플라스틱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전 성분표에는 미세플라스틱이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PET로 표시된다). 즉, 우리가 사용하는 글리터 제품 세 개 중 하나꼴로 미세플라스틱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 2017년, 미국 식품의약국은 클렌저, 스크럽, 치약과 같은 세정 제품에 마이크로비즈 사용을 금지했다. 반면 글리터와 같은 메이크업 제품과 관련한 미세플라스틱 규제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국가적 규제가 없다 할지라도, 소비자들이 클린 뷰티를 추구하는 트렌드에 따라 뷰티 브랜드들도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미세플라스틱의 대체제로 업계의 관심이 쏠린 것은 두 번째 종류의 글리터, 셀룰로오스(식물 기반의 합성 섬유)다. 셀룰로오스 글리터는 100% 생분해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많은 뷰티 브랜드의 기대를 받으며 등장했다. 하지만 재생 셀룰로오스(MRC)의 경우 미세플라스틱 글리터와 비슷한 오염 작용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공개되며 논란이 점화됐다. 셀룰로오스는 다른 물질로 싸여져야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데, 이때 대부분의 제조 업체가 알루미늄이나 플라스틱 폴리머 필름을 사용하기에 문제인 것이다. 셀룰로오스 자체는 친환경 성분이지만, 가공 과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셀룰로오스를 바람직한 글리터 대체제라고 단언하기에는 이르다.
DEEP BREATHS
“글리터는 공기 중엔 먼지처럼 떠다닌다. 때문에 숨을 들이쉴 때마다 미세플라스틱을 함께 마시는 셈이다.” – 환경 연구원 리사 어들(Lisa Erdle)
“글리터는 단 한 번만 사용해도 수천 조각의 잔여물이 발생한다. 이 모든 것은 바다와 땅에 유입돼 축적된다. 그리고 수세기 동안 지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 환경 엔지니어 메럴 유트세버(Meral Yurtsever).
세 번째 원료는 운모(마이카)다. 광채 효과가 있어 색조뿐만 아니라 기초 화장품에도 사용되는데, 이 또한 마찬가지로 환경 오염을 유발한다.
영국 케임브리지 소재의 앵글리아 러스킨 대학 생태학 교수 대니얼 그린은 “미세플라스틱, 재생 셀룰로오스, 운모 모두 조류와 수생 식물에 해를 끼칠 수 있어요. 연쇄적 작용으로 먹이사슬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죠”라고 이야기한다. 이외에 운모가 환경에 미치는 파급력에 대해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지만, 운모 채광의 사회적 비용에 대한 문제는 확실하다.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세계 최대 운모 수출국 중 하나인 마다가스카르에서는 4살 남짓한 아이들이 대략 1만 명이나 채광에 동원된다고 한다. 인도에서도 아동 착취 문제가 불거졌다. 코로나 사태로 수입원이 끊긴 부모들을 대신해 아이들이 운모 광산으로 향하는 것. 채광에 대한 글로벌 규제의 부재와 불투명한 공급망 때문에 우리가 사용하는 운모가 윤리적 방식으로 생산된 것인지는 알 방법이 없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몇몇 브랜드가 아동 착취로 생산된 운모를 사용하지 않기로 선언했다는 것. 세계 최대 화장품 회사인 코티와 로레알이 그렇다. 두 회사 모두 윤리적 운모 조달 계획의 설립 멤버로, 2022년까지 인도 운모 채굴에 동원되는 아동 노동을 완전히 근절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공급업체가 철저히 관리하는 광산에서 채광되는 운모만을 사용하며, 인권을 존중하는 근무 환경이 보장되는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것이라 밝혔다.(로레알 그룹 산하에는 랑콤, 입생로랑, 아르마니 뷰티, 어반디케이, 로레알 파리, 메이블린 뉴욕, 닉스 등이 있다. 코티 그룹은 구찌 뷰티, 림멜 런던, 샐리 한센, 커버걸을 보유하고 있다.)
마지막 성분은 유리,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붕규산염 유리다. 유리를 가공 처리한 후 광물질로 코팅하면 마치 홀로그램 같은 다채로운 색을 띠어 글리터로 사용할 수 있다. 눈가 메이크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적절한 모양과 크기로 세밀하게 가공해야 하기에 원가가 비싸 자주 사용되는 성분은 아니다. 유리는 천연 자원이기에 보다 친환경적이지 않냐고? 저명한 화장품 화학자 크루파 코스틀린은 “유리 입자에 코팅을 입히기 때문에 생분해가 더 어려울 수도 있다”고 밝혔다. 유트세버 교수도 의문점을 제기한다. “자연에 있어야 할 광물질이 인간의 손을 거치면 발견되지 않아야 할 장소까지 흘러 들어갑니다. 천연이든 합성이든 우리가 소비하는 순간 지구에 탄소 발자국을 남기죠.” 그 어떤 성분도 데이터로 친환경성을 입증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
이쯤 되면 글리터 불매 운동이라도 해야 하나 싶겠지만, 희망을 잃기엔 이르다. 차세대 글리터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니까. 메이크업 전문 브랜드 맥과 바비 브라운으로 잘 알려진 에스티 로더 그룹은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얼루어 US>에 전달했다. “에스티 로더 그룹은 생분해가 되지 않는 플라스틱 글리터 사용을 점진적으로 중단할 예정이며 각종 전문가, 공급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혁신적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뷰티 업계는 비용이 더 들더라도 시간을 할애해 믿을 만한 환경 평가를 거친 대체제를 찾아낼 의무가 있다. 친환경성을 입증했다며 등장한 대안이 유해한 것으로 판명돼 사용 승인이 취소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봐왔지 않은가? 제품을 생산하는 뷰티 기업, 이를 사용하는 소비자, 관련 사안을 다루는 언론 모두 새겨들어야 할 말이 있다. 바로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제품을 단 하루 사용하기 위해 생산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라는 제니스 브래니 교수의 말. 머리카락 두께 정도의 미세한 입자가 지구에 남기는 거대한 상처와 흔적을 기억하자. 반짝이는 메이크업을 포기하자는 게 아니다. 글리터처럼 빛나는 친환경적 미래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 에디터
- 신지수
- 글
- ELIZABETH SIEG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