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떠나고 유연하게 일한다. 리조트 워크 라이프 속 진화한 서머 워치.


몇 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낯선 도시. 호텔 체크인을 마친 뒤 무심코 손목을 바라본다. ‘다음 일정까지는 얼마나 남았을까?’ ‘저녁 예약 시간은 몇 시였더라.’ ‘서울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 연락해도 괜찮을까?’ 휴가를 떠나도 시간을 확인하는 횟수는 줄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도시의 시간과 여행지의 일정이 동시에 겹치는 순간, 타임피스의 존재는 더 부각된다.
팬데믹 시기 확산된 워케이션(Workcation)이 일과 휴식의 경계를 허물었다면, 최근에는 출장 일정을 며칠 더 연장해 여가를 즐기는 블레저(Bleisure)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며 여행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실제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글로벌 비즈니스 트래블(Amex GBT)의 조사에 따르면, 비즈니스 여행객의 60% 이상이 출장 뒤 여가 일정을 추가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행의 목적과 상관없이 이동하는 사람들의 시간이 더 복잡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행 중에도 여러 도시의 시간을 확인하고, 예약된 일정을 관리하며, 필요할 때는 업무와 연결되고 다시 휴식으로 돌아간다. 원격근무의 확산뿐 아니라 일하는 시간과 장소를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이 늘면서 여행도 이전보다 유연해졌다.


이처럼 라이프스타일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타임피스에 요구되는 조건도 달라졌다. 이제는 어떤 목적보다 다양한 순간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시계가 각광받는다. 특히 여름휴가철에는 이 변화가 가장 뚜렷이 나타나는 시즌이다. 한때 서머 워치는 물놀이를 위한 다이버 워치, 디너와 파티를 위한 칵테일 워치로 크게 나뉘었다. 그만큼 액티비티와 드레스업의 차이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타임피스는 하나의 시계가 멀티플레이어처럼 능력을 발휘한다.
가장 큰 변화는 기능과 스타일이다. GMT와 듀얼 타임, 향상된 워터 레지스턴스, 크로노그래프 같은 기술은 더 강력해졌지만, 디자인은 오히려 간결해지는 추세. 먼저 주목할 기능은 GMT와 듀얼 타임이다. 떠나온 도시의 시간대에 맞춰 온라인 콘텐츠를 업로드하고 실시간 반응을 살펴보거나,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연락하기 좋은 시간을 계산해야 하는 순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정각 단위가 아닌 시차까지 분 단위로 조정하는 듀얼 타임 시스템을 갖춘 ‘루이 비통 에스칼 트윈 존’ 워치와 24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인디케이터로 상대 도시가 아침인지 저녁인지 한눈에 파악하는 ‘몽블랑 보헴 데이 앤 나이트’ 워치는 이런 상황에서 특히 유용하다. 과거 파일럿을 위해 개발된 기능이 이제는 보다 넓은 의미의 여행자를 위해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높은 워터 레지스턴스 역시 더 이상 전문 다이버만을 위한 기능이 아니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호텔에 짐을 풀고, 수영장으로 향했다가 저녁 약속 장소로 이동하는 일정 속에서 시계를 벗고 착용하는 번거로움을 줄인다. 물에 들어가기 위해서라기보다 어떤 환경에서도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한 기능이 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론진의 ‘하이드로콘퀘스트’ 워치와 태그호이어 ‘아쿠아레이서’ 워치는 각각 최대 300m 방수 성능을 갖췄지만, 기능을 과시하기보다 세라믹 베젤과 블루 다이얼, 다이아몬드 인덱스 등을 통해 세련된 스타일을 연출한다. 시간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 측정하는 기능 역시 진화하고 있다. 지난날 크로노그래프는 레이싱이나 항공 분야에서 사용되는 전문 기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운동 시간부터 수영 세션과 이동 시간, 예약 간격까지 하루를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디올의 ‘시프르 루즈 크로노그래프’ 워치는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정교한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담고 있으면서도 전통적 스포츠 워치의 투박함 대신 하우스 특유의 세련된 미학을 드러낸다. 기능만큼 중요한 건 하나의 시계로 다양한 순간을 유연하게 소화한다는 부분이다. 오데마 피게의 ‘로열 오크 오프쇼어 다이버’ 워치는 클릭 한 번으로 스트랩과 버클을 교체하는 인터체인저블 시스템을 갖춰 해변과 리조트 디너를 자유롭게 오간다.


최근 스포츠 워치가 각광받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이다. 기능은 더 향상됐지만 외형은 점점 도시적으로 변하고 있다. IWC의 ‘인제니어’ 컬렉션은 가볍고 스크래치에 강한 세라믹 소재를 새롭게 적용해 스포츠 워치의 기술력을 유지하면서도 보다 도시 지향적인 무드를 완성했다. 샤넬의 ‘J12 슈퍼레제라 칼리버 12.1’ 워치 역시 매트 블랙 세라믹 케이스와 200m 방수 성능, COSC 인증 무브먼트를 탑재하며 스포츠 워치의 영역을 확장한다. 기능은 향상됐지만 외형은 점점 세련되고 가벼워지는 것. 테일러드 재킷과 리넨 셔츠, 수영복 커버업까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결국 새로운 서머 워치의 키워드는 경계의 소멸이다. 서로 다른 도시의 시간, 예약된 일정의 시간, 잠시 멈춰 쉬는 시간까지. 오늘날의 서머 워치는 그 모든 역할을 하나로 통합한다. 체크인과 클락인 사이를 오가는 이들에게 여전히 제일 작지만 가장 유용한 여행 도구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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