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의 아티스틱 디렉터 어거스틴 돌 마이오(Augustin Dol-Maillot)를 만나다.

명동 한복판,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지하 1층에 자리한 배리(Barrie) 스토어는 스코틀랜드 캐시미어의 전통적 이미지를 새롭게 뒤집는다. 이곳에서 만난 배리의 아티스틱 디렉터 어거스틴 돌 마이오는 서울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첫인사를 건넸다. 120여 년간 이어져온 브랜드 헤리티지와 오늘날 스타일의 균형을 깊이 고민해온 마이오. 그는 캐시미어를 단순한 고급 소재로만 바라보지 않으며, 스코틀랜드 공방 기술에 파리 스튜디오의 창의성을 더해 캐시미어의 영역을 확장 중이다.
A 오늘 아침 서울의 풍경은 어땠나?
파리와는 또 다른 스케일과 에너지를 지닌 도시다. 오늘 아침에도 호텔 창밖 풍경을 한참 바라봤는데, 이곳이 가진 밀도와 움직임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A 아티스틱 디렉터로서 낯선 도시를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관찰하게 되는 건 무엇인지 궁금하다.
거리 분위기뿐 아니라 전광판, 폰트, 광고 비주얼 같은 시각적 요소를 유심히 살펴본다. 그래픽디자인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그런 요소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특히 한글이 인상적이었다. 직관적이면서도 독특한 리듬과 아름다움을 지닌 문자라고 생각한다.
A 서울 사람들은 유행에 민감한 동시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스타일을 선호한다.
어느 정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이곳 사람들은 각자의 라이프스타일과 활동에 따라 스타일을 다르게 표현하고 있었고, 과감한 컬러나 그래픽을 활용하면서도 디테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다. 그런 부분은 배리가 추구하는 방향성과도 잘 맞는다.
A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파리 스타일의 매력은 무엇인가? 또 스코틀랜드와는 어떻게 다른가?
파리는 세련되고 정제된 도시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옷을 일종의 보호막처럼 사용한다는 점이다. 반면, 스코틀랜드는 보다 솔직하고 현실적이다. 배리 역시 그런 스코틀랜드 특유의 스타일을 기반으로 한다. 덜 꾸민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입고 싶은 옷을 선택하는 애티튜드. 그런 진정성이 매우 매력적이다.
A 배리는 스코틀랜드의 헤리티지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동시에 파리에서 디자인이 이뤄진다.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협업하나?
사실상 하나의 스튜디오처럼 움직인다고 보면 된다. 파리에서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스코틀랜드 팀이 그것을 실제 제품으로 구현한다.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하며 서로만의 디자인 언어도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물론 가끔은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는데, 나는 그런 순간을 종종 ‘마법 같다’고 표현한다.
A 그 ‘마법 같은 순간’에 대한 사례가 있다면?
데님이나 스웨이드처럼 보이는 캐시미어 니트가 좋은 예다. 처음에는 ‘정말 가능할까?’라는 의문도 있었다. 그런데 스코틀랜드 팀은 그것을 생각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구현했다. 멀리서 보면 실제 데님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서야 캐시미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는 파리에서 시작되지만,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결국 스코틀랜드 장인의 경험과 노하우다.
A 그런 결과물을 가능하게 하는 스코틀랜드 공방의 기술 중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무엇인가?
모든 과정이 인상적이지만, 특히 워싱과 프로그래밍을 중요하게 여긴다. 많은 사람이 완성된 니트만 보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과정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상상한 아이디어를 실제 구조로 옮기고, 그것을 어떤 짜임으로 구현할지 결정하는 첫 단계. 결국 디자인은 그 순간부터 현실이 된다.
A 오랜 시간 장인들과 함께 일하며 기술 외적으로 인상 깊었던 점도 있었나?
모두가 직접 옷을 입어본다는 것이다. 디자인 팀뿐 아니라 공방에 있는 사람들 역시 실제로 제품을 착용한다. 결국 중요한 건 옷이 실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존재하는 방식이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늘 그 관점에서 옷을 바라본다. 현실적이고, 동시에 매우 ‘리얼’하다.
A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 속에서, 이런 장인정신이 담긴 캐시미어는 어떤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하나?
캐시미어는 오래 남아야 하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한 시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계속 입을 수 있어야 하고, 가능하다면 다음 세대에게도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잘 만들어진 캐시미어는 오래 입을수록 더 좋아지고, 기억과 경험을 함께 담아낸다.
A 당신이 말한 ‘오래도록 입히는 옷’은 결국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할 것 같다.
나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늘 함께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디자인할 때도 하나의 방향으로만 접근하지 않는다. 결국 내가 추구하는 것은 여성적이거나 남성적인 하나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요소가 균형을 이루며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상태다.
A 디자인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에서 얻나?
주변 사람에게서 영감을 받는다.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동경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특정한 사람이 이 옷을 입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하는 것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A 지금 가장 흥미롭게 바라보는 것은?
여전히 컬러와 텍스처다. 계절은 반복되지만, 색과 소재가 만들어내는 가능성은 끝이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캐시미어는 생각보다 표현력이 훨씬 풍부한 소재다. 아직 시도하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다.
A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배리를 어떤 브랜드로 기억하기를 바라나?
멀리서 보았을 때 시선을 끌고, 가까이 다가갔을 때 새로운 디테일을 발견할 수 있는 브랜드였으면 한다. 그것은 컬러일 수도, 텍스처일 수도, 기술일 수도 있다. 나는 늘 그런 발견의 순간을 만들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