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퍼스널 추천까지 해주는 시대

차곡차곡 쌓은 과거의 기록을 발판으로 스타일을 완성하는 AI 퍼스널 쇼퍼의 오늘과 내일.

기분 좋은 상상이 필요할 때 오직 나만을 위한 공간에 펼쳐진 갖은 옷가지와 액세서리를 떠올린다. 내 핏에 꼭 맞고 평소 좋아하는 스타일과 그 연장선으로 시도할 법한 색다른 룩까지 하나하나 본인 취향으로만 가득한 곳에서 누리는 여유. 소수의 VIP에게만 주어지던 특권이 이제 손안의 모바일에서 이뤄지는 시대다. 쇼핑 플랫폼에 접속하는 순간, 미리 골라둔 장바구니처럼 눈을 초롱초롱하게 만드는 제품 리스트가 주르륵 펼쳐진다. 이전에 구입한 아이템, ‘좋아요’ 누른 제품을 기반으로 생성된 AI(인공지능) 로직임을 잘 알지만, 여전히 깜짝깜짝 놀라는 순간이 있지 않은가? 연예인 SNS 피드 속 옷이 예뻐 보여 캡처를 하고 포털사이트에 이미지 검색을 하면, 사진을 인식한 AI가 그와 같거나 비슷한 디자인의 상품 구매 링크를 즉시 제안한다.

트렌드는 급변하고 수많은 브랜드의 신제품이 쏟아지지만, 고도의 디지털 서비스 덕에 우리의 소중한 쇼핑 타임이 줄어들고 있다. 점차 많은 사람이 이 같은 환경에 적응하는 시점에서 럭셔리 브랜드는 최상층 고객을 부티크 내에서 독대하며 프라이빗하게 제공해온 퍼스널 쇼퍼 서비스를 확장해 AI와 접목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작년 상반기부터는 AI 기술을 활용한 럭셔리 서비스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생성형 AI의 한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2023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챗GPT’를 검색 엔진에 통합할 계획을 발표한 시점부터다. 

대표적 케이스는 구찌, 보테가 베네타, 생 로랑 등을 거느린 케어링 그룹 산하의 AI 기반 쇼핑 도우미 ‘매들린(/madeline)’. 암호화폐로 결제하고 독점 NFT를 구입할 수 있도록 설계된 패션 마켓 플레이스 KNXT를 통해 접속하는 챗봇 서비스다. 1년 전 ‘끝없는 스크롤에 작별 인사를 고하고, 매들린과 만나 완벽한 럭셔리 룩을 찾아보세요’라는 멘트와 함께 론칭된 쇼핑 서비스의 현황이 어떨지 궁금했다. 에디터가 사용해본 결과 아직은 미흡하다는 의견. “안녕 매들린! 올여름 동남아 여행지에서 입을 원피스를 추천해줘”라고 말을 걸었지만, 끝없는 버퍼링에 결국 답을 듣지 못했다. 다른 누군가는 어떤 질문을 해도 엉뚱한 발렌시아가 티셔츠만 고집하는 매들린에게 지쳐 채팅창을 끄고 말았다고. 이윽고 몇 주가 지난 뒤인 지금 매들린은 잠정적인 치료에 들어갔다. ‘귀하의 경험을 향상시키기 위해 유지 보수 중입니다. 양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멘트를 남긴 채.

아쉬움을 뒤로하고 또 다른 케이스인 ‘제냐 X’를 살폈다. 제냐 X는 작년 3월 대규모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갖춘 ‘마이크로소프트 애저’와 손잡고 제냐에서 공개한 AI 기반 쇼핑 솔루션이다. 1910년부터 장인의 섬세한 손길을 거친 최고급 원단으로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한 남성복을 구현하는 유서 깊은 브랜드가 AI의 어떤 도움을 받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제냐는 출시 전 2년간 개발과 테스트를 거듭했고, 밀라노 몬테나폴레오네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제냐 X의 론칭을 세상에 공개했다. 파일럿 기간이기에 레저 웨어와 슈즈에 국한된 예약제 프로그램으로만 만나볼 수 있었던 제냐 X는 AI 챗봇에게 일임한 케어링 그룹의 ‘매들린’과는 운영법이 다르다. 고객과 친밀도를 형성하는 전 세계 스타일 어드바이저의 역할은 그대로 둔 채, AI 기술을 접목한 3D 구성기를 맞춤 제작 서비스에만 추가한 것이다. 정확한 치수를 안다면 언제 어디서든 스타일 컨설턴트를 배정받아 약 490억 개의 잠재적인 의류와 스타일을 4주 이내 맞춤형 테일러링으로 만날 수 있다. 제냐 그룹의 최고 마케팅, 디지털과 지속가능성 책임자인 에도아르도 제냐에 따르면, 2년에 걸친 시험 기간에도 제냐 X 시스템은 이미 부티크 매출의 절반가량인 약 45%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부티크에서 1:1로 소통하는 고객은 제냐 X를 이용한 고객보다 75% 더 많은 비용을 지출했다고 밝혔다. 파일럿 기간이 끝난 올 하반기에는 제냐 웹사이트(zegna.com)를 통해 누구나 컬렉션의 모든 제품을 맞춤 설정할 수 있게 된다. 

제냐 X의 사례로 비춰보았을 때 AI 기술을 접목한 퍼스널 쇼퍼 서비스는 지속가능한 면에서도 매우 유리하다. 옷을 구성하는 재료를 부티크로 집합시키는 대신, 공방에서 제작해 매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배송하기에 공간과 자원의 낭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 장인의 노하우를 습득한 AI가 재단하는 과정에서 버려지는 자투리 직물을 최소화하고, 실 한 가닥까지 재사용할 방법으로도 확장할 수 있다. 그렇기에 브랜드를 포함한 많은 기업은 어떻게 하면 AI를 활용해 실존하는 스타일 어드바이저의 역할을 줄일지, 고객의 짧은 물음에도 구체적으로 답변할지, 어떤 종류의 이미지까지 반응할지에 대한 고민을 심도 있게 이어갈 것이다. 혹자는 AI가 인간을 대체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에 위협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감정의 힘을 대체할 기술은 있을 수 없기에, 사람의 섬세함과 AI의 판단력을 결합한다면 진보한 기술로 더 나은 쇼핑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비록 여전히 뚝딱이는 AI 퍼스널 쇼퍼지만 더 많은 데이터베이스가 쌓이고 기술이 증진된다면 재화의 낭비를 줄일 진화한 럭셔리 퍼스널 쇼퍼를 머지않아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에디터
최정윤
디자이너
이청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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