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마다 뭐 입을지 고민할 필요 없다. AI가 그날의 스타일링을 추천해주는 디지털 옷장 체험기.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발병하는 고질병이 있다. 일명 ‘입을 옷이 없어!’ 증후군. 틈나는 대로 쇼핑한 것 같은데 이렇게 고를 옷이 없다니! 사실 옷의 양이 부족한 게 아니다. 오히려 수납공간이 부족해 방 한편에 쌓아두기까지 했다. 옷장이 넘칠 만큼 충분한데도 왜 매일 아침 ‘오늘 뭐 입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그 이유는 내내 외면했던 정리되지 않은 옷장 때문이다. 옷 수백 벌 중 그날의 날씨와 외출 목적에 맞는 아이템을 찾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닐 터. 심지어 무슨 옷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못한 채 비슷한 옷을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으려면 하나의 옷을 오랫동안 다채롭게 입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옷장 속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이 최우선. 이런 스마트 패션 라이프를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디지털 옷장이다. 간단히 말하면 나의 옷장 속 아이템을 기록하고 패션 데이터로 만들어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

개념도 생소한 디지털 옷장은 과연 무엇이고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디지털 옷장은 ‘사용자의 실제 옷장에 보관된 옷을 디지털로 옮겨주는 플랫폼’을 말한다. 옷 사진을 등록하면 보관된 정보를 토대로 인공지능(AI) 기술이 종류별로 옷을 분류해 정리를 돕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울리는 스타일링을 제공한다. 디지털 옷장에 어떤 옷이 있는지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확인이 가능해 보관된 옷과 어울리는 아이템을 구매하거나 필요한 아이템이 있을 때 참고할 수도 있다. 중복 구매와 과소비를 방지하는 것이 가장 큰 장점.

이를 직접 경험하기 위해 올해 사용자 수 158만 명을 돌파한 국내 최대 규모의 디지털 옷장 서비스 ‘에이클로젯’을 사용해봤다. 산더미처럼 쌓인 옷을 보며 ‘이 많은 걸 대체 언제 다 등록하지?’라는 걱정과 함께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했지만, 디지털 옷장을 만드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옷의 사진을 찍으면 AI 기술이 카테고리, 색상, 소재, 패턴 등 상세 정보를 자동으로 인식한다. 하나씩 사진을 찍는 게 귀찮다면 인터넷 쇼핑몰 웹사이트나 내 스마트폰 앨범에서 제품 이미지를 찾아도 된다. 화면을 캡처하면 역시나 이미지 인식 기술이 알아서 분류해주기 때문. 배경을 제거해야 하는 번거로운 수작업 없이 단 3시간 만에 옷장 등록을 완료하고 각각의 브랜드와 구매한 사이트 주소, 제품의 가격을 기록했다. 정리된 데이터는 스타일 통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아이템 컬러 비율, 브랜드별 선호도, 옷장의 가치, 최근 한 달간 즐겨 입은 옷과 미착용 아이템 등 개인의 패션 사이클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등록한 옷으로 매일 데일리 룩 캘린더를 기록했다. 아이템이 카테고리별로 한눈에 들어오니 옷을 고르는 시야가 넓어졌다.

10년 전 샀던 카고 팬츠를 한번 꺼내볼까? 날씨가 더우니 스포츠 쇼츠를 입어야겠어! 마치 인형 옷 입히기 게임을 하듯 각각의 옷을 조합하며 매일 입은 코디를 기록한다. 직접 스타일링하기 귀찮은 날엔 AI 기반 코디 추천 기능을 활용했다. 이 기능은 상황별·날씨별·아이템별로 나누어 다양한 조합을 소개한다. 이를테면 기온이 27℃까지 오른 날에는 슬리브리스 톱에 데님 쇼츠를, 포멀한 룩으로 입어야 하는 날은 블레이저 재킷에 단정한 로퍼를 추천하는 식이다. 아침마다 옷장 앞에서 한참을 고민해도 결국은 자주 입는 옷을 집어 들고 말았는데, 디지털 옷장 덕에 매일 다른 옷을 입고도 출근 준비 시간을 확연히 줄일 수 있었다. 다양한 스타일링을 시도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여전히 입지 않는 옷이 수두룩했다.

이럴 때는 입지 않는 옷을 중고 거래 마켓에 올리는 것도 좋은 방법. 거래된 옷은 따로 등록할 필요 없이 내 옷장으로 바로 가져와 코디에 활용할 수 있다. 에디터는 몇 년째 옷장 안에 처박혀 있던 데님 미니스커트와 지금은 못 입는 크롭트 톱을 마켓에 올렸다. 아직 판매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누군가의 옷장에 등록되어 데일리 룩에 알차게 활용되는 날이 올 것이다. 내 얇은 지갑을 위해서도, 의류 폐기물로 고통받는 지구를 위해서도 입지 않는 옷에 새 생명을 부여하는 순환 패션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내 취향을 돌아보고 소비 습관을 고치려는 노력으로도 충분하다. 그 바탕에 디지털 옷장이 지속가능하고 스마트한 패션 라이프를 향한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1 SAVE YOUR WARDROBE

영국 기반의 ‘세이브 유어 워드로브’는 디지털 옷장 관리에 필요한 세탁, 수선, 업사이클링 서비스를 지역 커뮤니티와 연결해 활용할 수 있다.

2 WHERING

2020년 영국에서 시작한 ‘웨어링’은 디지털 옷장 서비스뿐 아니라 베스티에르 콜렉티브, 에센스 등과 협업해 다양한 브랜드의 중고 아이템을 판매한다.

3 INDYX

수많은 옷을 찍어 올리는 일이 부담스럽다면 ‘인딕스’의 방문 서비스를 이용할 것. 기록 담당자가 직접 방문해 모든 옷을 등록하고 관리하는 법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