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지가 달라졌다. 적게 마시고, 많이 쉬고, 삶의 밸런스에 집중하는 이들. 바야흐로 웰니스 세대의 출연이다.

기억을 되살려보면 나의 20대는 ‘잠들지 않는 도시, 서울’을 꼭 닮아 있었다. 밤 10시까지 원고를 쓰고 퇴근해도 어딘가에서 놀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어디나 불을 밝힌 가게가 즐비했다. 압구정과 가로수길, 이태원의 술집에는 어김없이 친구의 친구들이 있어서, 두 명이서 만나 열 몇 명이 되는 경우도 흔했다. 종착역은 노래방이거나 누군가의 집이 되곤 했고, 그들을 만나 하루의 피로를 왁자지껄하게 푼 뒤 심야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건 평일에도 마찬가지였다. 핼러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이면, 파티는 아침이 올 때까지 이어졌다. 지금은 사라진 더블유 호텔 서울에서 드레스업을 하고 파티를 즐기다가 신사동의 24시간 순댓국집에서 아침을 먹고 헤어지는 게 코스라면 코스였다. 그게 ‘쿨’하고 그게 ‘힙’하게 여겨진 시대였다. 후배들은 한 술 더 떴다. 어제 입은 옷을 그대로 입고 출근해서는, 공원에서 눈을 떴다고 하질 않나, ‘클럽 데이’라며 클럽 복장으로 출근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 모든 게 아주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생, 이른바 ‘젠지’는 다르다. 더 이상 밤을 새우고 놀거나, 취할 때까지 마시지 않는다. 올해 <얼루어> 피처팀에 합류한 막내 기자인 1997년생 이재윤은 수 년째 수련 중인 요가인으로 누구보다 웰니스 프로그램에 열심이다. 세상에 있는 줄도 몰랐던 웰니스 프로그램을 잘도 찾아낸다. 마감 후 서둘러 가방을 챙기는 그에게 술약속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지금 가면 8시에 하는 요가 수업을 들을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거다. 1999년생 어시스턴트 이화윤의 삶도 다르지 않다. 때로 술을 마시긴 하지만 10시면 헤어진다. “예전에는 새벽까지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마시는 친구들이 없어요. 저도 집에 빨리 가서 쉬고 싶고요.” 작년 연말 대리운전 기사도 같은 말을 했다. “요즘은 2차, 3차라는 개념이 사라졌어요. 술과 반주를 곁들여서 먹고는 헤어지죠. 요즘은 밤 10시에 한 번 영업을 뛰면 그걸로 끝이에요.” ‘사회적 거리두기’로 영업제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밤 10시면 이제 모든 도로가 한산하다. 작년 연말 <얼루어>의 송년회가 끝난 시각은 밤 9시 36분. 더 마셔야한다며, 이대로 갈 순 없다며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던 후배들은 다 어디 간 걸까? 좋긴 좋았는데, 어쩐지 어리둥절했던 나는 역시 밀레니얼 세대였다.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며 세계적인 현상으로 관찰된다. 더 이상 흥청망청 노는 것이 20대의 특권이자 청춘의 표상이 아니게 된 것이다. 만취 상태로 사고를 치는 것은 멋지지 않은 일이 됐다. 취하고 흐트러진, 일명 ‘꽐라’가 된 사진은 인스타그램 포스팅으로 적절하지 않다.

세계적 컨설팅 업체 매킨지앤컴퍼니가 중국, 영국, 미국 전역에서 소비자 5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Future of Wellness’ 연구에 따르면, 젠지 세대의 최고 관심은 ‘건강’이다. 예전 같으면 중년, 노년 세대의 최대 관심사였을 건강이 당당히 20대의 관심사 1위를 차지한 것이다. 건강에 집중하는 만큼 알코올 섭취는 크게 줄었고, 수면 시간은 늘었다. 미국 엠알아이 시몬스의 최근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Z세대는 미국에서 술을 가장 덜 마신다. 술을 마시는 횟수도 줄고, 양도 감소했다. 보드카, 위스키 같은 하드 리쿼보다 탄산수와 소다 등으로 희석한 저도수 알코올을 마신다. 하이볼의 유행 역시 이를 방증한다(나의 20대 시절에는 이런 술을 시키면 겁쟁이 취급을 받았고, 테킬라 샷으로 파도를 타는 게 멋진 거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젠지가 이전 세대보다 일찍 잠들고, 더 많이 자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럼 남은 시간에 이들은 무엇을 할까? 지나간 세대의 유물로 여겨지던 뜨개질, 독서 등이 다시 Z세대의 취미가 됐다. 인스타그램, 틱톡에서 뜨개질을 검색해보길. 여행도 마찬가지다. CNBC 뉴스는 Z세대를 두고 “소득이 가장 적음에도 여행을 가장 자주 떠난다”고 설명한다. 소득을 위해 휴가를 미루던 부모 세대와 달리, 여행을 즐기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기도 하며 실직을 했더라도 구직하는 대신 

이참에 여행부터 즐긴다는 거다. 미국 Z세대 중 1년에 3번 이상 여행을 떠난 비율은 52% 이상으로 41%를 차지한 X세대, 35%를 차지한 부모 세대보다 높았다. 최근 SNS에서 호응이 높은 퇴사 에세이, 퇴사 만화 등에도 여행은 빠지지 않는다. 소득이 많지 않은 Z세대가 여기에 가장 많은 비용을 쓰는 분야 역시 여행으로 나타났다. 여행에서도 각자의 웰니스를 잊지 않는다. 스카이스캐너가 한국인 20~39세 여행객 1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절반 이상(54%)이 여행 중에도 웰니스를 중요하게 여겼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등을 여행할 때도 퍼스널 트레이닝, 명상과 요가 수업을 예약하는 식이다. 2024년 워스 글로벌 스타일 네트워크는 인스타그램 트렌드 토크를 위해 ‘Z세대에게 중요한 주제, 이슈 및 트렌드’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영국, 인도, 한국 및 브라질 전역에서 5000명이 참여한 설문에서 Z세대는 “건강, 진로, 그리고 여행에 가장 관심이 많다”고 답했다. 신체와 정신의 건강, 일과 자유 시간의 밸런스, 취미와 여가 생활 역시 자신을 돌보고 계발하는 성찰의 기회로 삼고 있는 이들은, 라이프스타일 전반에서 웰니스의 의미를 재정립하고 확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웰니스에 대한 정의를 어려워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번에도 역시 Z세대의 말을 빌려오고 싶다. 웰니스란? ‘당신의 기분을 좋게 하는 모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