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고 깨지고 산산조각 난 그릇도 환생이 가능할까? 속상한 마음을 안고 킨츠기 공방의 문을 두드렸다. 

소비자가 스스로 수리할 권리를 뜻하는 단어 ‘수리권(Right to Repair)’이 삶에 안착한 후 쇼핑의 기준이 변했다. 소모성 부품을 교체할 수 있는지, 어떤 소재를 사용했는지를 따지며 기왕 탄생한 물건이 쉽게 폐기되지 않도록 살핀다. 설계와 생산, 구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발자국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나름의 실천이다. 과정이 다소 번거롭지만 환경을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매체에서 일하며 체득한 정보는 내게 크고 작은 변화를 몰고 왔다. 집 안을 채우는 물건 대부분은 수리의 방법이 보였지만,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는 물건이 있다. 바로 꽃병, 그릇 등 유리와 도자기로 만든 것들이다. 이들은 찰나의 순간 속절없이 생을 마감하고 만다. 

깨지고, 부러지고, 파편이 흩어지는 절망의 순간도 구원의 여지가 있다. 도자기를 수리하는 개념에서 탄생한 공예법 킨츠기가 있는 덕이다. 킨츠기는 일본에서 시작된 공예법 중 하나로 옻을 활용한다. 이 공예는 아시아권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진화했는데, 우리나라는 나전칠기, 중국은 조칠칠기, 일본은 마키에 기법이 대표적이다. 옻은 천연 물감으로 알려졌지만 접착력 역시 위대하다. 

“깨진 도자기는 뭐든 가능합니다.” 킨츠기 공방 ‘금여성’을 운영하는 김슬기 대표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후 문화재수리기능자 칠공 자격을 획득한 그는 옻의 매력에 빠져 킨츠기를 공부하기에 이르렀다. “킨츠기는 재료에 따라 혼킨츠기와 칸이킨츠기로 나뉘어요. 옻, 밀가루, 숯 같은 천연 재료만 사용한 혼킨츠기는 몇 주부터 길게는 몇 년이 소요되고, 에폭시 같은 합성 재료를 사용하는 칸이킨츠기는 불과 몇 시간, 며칠 만에 작업을 끝낼 수 있죠.” 우리는 혼킨츠기를 옻칠공예의 열경화 기법을 활용, 최대한 시간을 단축해 작업하기로 했다. 공방에 도착해 먼저 깨진 그릇을 조심스럽게 풀었다. 날카로운 면에 베일까, ‘어쩌다 이렇게 됐어?’라는 질문을 받을까 꼭꼭 숨겨온 조각이다. 킨츠기 작업은 그릇의 조각을 요리조리 맞추며 가조립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만약 조각을 잃어버렸을 때는 다른 도자기 파편으로 메우는 것도 가능하다. 이후 옻을 이용해 접착하는 과정을 거친다. 밀가루나 찹쌀가루로 만든 풀과 옻을 1:1로 섞어 만든 천연 접착제는 점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이게 붙을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읽었는지 김슬기 대표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시간을 믿어보세요. 수리해서 사용해도 강도와 튼튼함은 변함없어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옻칠로 이어 붙인 그릇을 테이프로 고정한 후 건조 과정에 들어갔다. 며칠간 실온에서 건조해야 하지만 시간 단축을 위해 180~200℃ 고온에서 경화하는 방법도 있다. 몇 시간 뒤 깨진 조각은 원래 형태대로 찰싹 붙어 있었다. 이후 황토와 옻을 섞어 토회를 만들었다. 토회는 깨진 그릇의 새 살이 된다. 어긋난 틈에 새 살을 붙이는 건 오롯이 나의 취향이다. 겉면이 매끈하게 벌어진 틈만 채우거나 오동통하게 메워 입체적으로 만들어도 괜찮다. 토회를 촘촘히 바르고 나면 건조를 위해 또다시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된다. 그동안 김슬기 대표는 자신의 킨츠기 컬렉션을 보여준다.

“요즘 킨츠기는 수리의 영역을 넘어 하나의 작품으로도 인정받아요. 개인의 개성을 반영해 다양한 재료를 활용할 수 있거든요. 옻은 가공되지 않은 물성이라 다루기 까다롭고, 칠하고 마르는 과정이 인내와 기다림의 연속이지만, 그렇게 쌓인 시간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을 완성하죠.” 김슬기 대표는 천 조각, 레진, 실 등을 이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다채로운 킨츠기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토회가 마른 뒤 사포질로 이음새를 꼼꼼히 다듬었다. 이후 옻 접착제로 메운 이음새를 따라 붉은 안료, 검은 안료를 번갈아 칠한다. 이음새를 매끄럽게 하고 금가루나 은가루를 바르는 ‘마키에’의 색을 더 선명하게 하기 위함이다. 바르는 과정 틈틈이 안료를 건조하는 시간이 또 흐른다. 긴긴 시간이 지나고 비로소 완성된 킨츠기는 전보다 더 반짝이고 멋진 그릇이 됐다. 

킨츠기는 일련의 과정 자체가 명상과도 같다. 산산조각 난 상처로 휘몰아친 마음을 차곡차곡 정리한 뒤 오롯이 내 힘으로 이어 붙인다. 상심과 상념을 마주하고 내 손으로 더 멋진 작품을 완성한다. 일련의 과정은 깨지고 다친 상처를 숨기는 게 아니라 드러낼 수 있다는 용기, 실수해도 괜찮다는 위로로 다가온다. 환경을 위한 작은 실천이 이토록 깊은 극복의 여정에 닿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금칠을 입어 멋을 더한 그릇은 현재 식기보다 꽃을 담는 화병으로 사용하고 있다. 용도는 달라졌지만 언제까지나 내 곁에 함께할 것이다. 눈길이 닿을 때면 시끄러운 마음도 분명 괜찮아질 거라는 든든한 응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