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건강은 증상을 호전시키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병증을 예방하고 무병의 균형 잡힌 몸 상태를 유지하는 건 환자 각자의 몫이다.

“이유가 뭐예요?” 병원에서 진단을 받을 때면 언제나 묻는다. 하지만 되돌아오는 답은 늘 같다. ”글쎄요. 생활 습관이 문제거나, 유전적 원인일 수도 있고요.” 가벼운 감기부터 악성의 갑상선암까지 의사의 대답은 변함없다. 자가면역질환 중 하나인 엄마의 혈관염 판정에도 가장 먼저 검색해본 건 ‘혈관염 원인’이었다. 원인을 알아야 병을 고칠 텐데, 두루뭉술한 설명뿐 어디에도 명확한 원인은 나와 있지 않았다. 결국 아플 때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증상 완화와 개선을 위해 처방받은 진통제, 항생제, 항히스타민제, 스테로이드 같은 약물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시술이나 수술을 행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원인도 모른 채 받은 갑상선 절제술은 내게 편두통을 남겼고, 혈관염 치료를 위해 처방받은 스테로이드는 엄마에게 띵띵 부은 문페이스(Moon Face)를 선사했다.
‘대체 인간은 왜 아플까?’ ‘왜 하나를 고치면 다른 데가 또 아플까?’ ‘아픈 걸 고칠 수는 있는 걸까?’ 너무 궁금하던 차에 한 책의 내용이 눈에 띄었다. “기능의학, 문제의 근본 원인과 메커니즘을 찾아 인체 스스로 본연의 치유력을 회복하는 생리적 균형을 이루도록 유도하는 의학.”(<환자혁명> 중에서) 질병의 원인인 환자의 나쁜 생활 습관과 오염된 환경을 찾아 없애 손상된 몸의 기능을 되찾는다는 기능의학에 관한 설명이다. 이거다, 내가 아픈 이유를 찾아낼 유일한 방법! 지난 5년간 대한기능의학회 회장으로 활발히 활동한 이재철 반에이치클리닉 원장에게 ‘기능의학’에 대해 물었다. 

 

‘근거’ 있는 진단 

“근거중심의학(Evidence Based Medicine)이라고 하죠. 근거를 중심으로 당신이 왜 병에 걸렸는지 원인을 규명해서 치료하는 학문, 그게 기능의학의 핵심이에요.” 이재철 원장의 말이다. 그는 기능의학이 정상적 상태와 병적 상태의 중간 지점인 ‘미병(未病)’ 상태를 돌볼 수 있게 한다고 덧붙였다. “몸의 여기저기가 아프고 불편해서 병원을 찾았지만, 검사 결과가 정상이라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돌아가는 환자가 많아요. 그렇게 몇 개월,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병증을 판정받죠. 여러 수치가 병에 걸렸음을 나타낼 때만 병이라 진단하고 치료하는 거예요.” 이렇듯 현대 의학은 검사를 통해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질병 유무를 따지는 것에 집중한다.
1년에 한 번 하는 건강검진으로 질병을 조기에 발견할 수는 있지만, 질병의 예방은 쉽지 않아 보인다. “기능의학 검사를 하면 미병 상태를 진단할 수 있어요. 미병 상태가 확인되면 환자가 질병에 노출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더 나아가 질병 발생을 차단할 수 있는 거죠.” 기능의학 검사가 무엇인지 생소해 어떤 항목을 어떻게 검사하는지 물었다. 가장 큰 특징은 질병의 근본 원인인 영양 불균형과 환경오염 축적 상태, 스트레스 호르몬 변화, 즉 ‘기능성 질환’을 진단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는 거다.

질병은 하나의 원인으로 발생하지 않기에 환자와 관련해 최대한 많은 것을 알아야 종합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따라서 문진과 혈액 검사가 기본이 된다. 이재철 원장은 “혈액 검사가 진료 초기 검사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고 했다. 주목할 점은 기존 혈액 검사와 판독 방법이 다르다는 것. “현대 의학에서는 ‘참고치’를 기준 삼아 그 수치에서 벗어났을 때 질병이 있다고 판단해요. 하지만 병리학적으로 질병이 없다고 해서 건강한 건 아니거든요. 기능의학에서는 참고치와 함께 ‘최적치’라는 기준을 활용해요. 최적치 안에 있으면 건강하다고 판단하고, 최적치는 벗어났지만 참고치 범위 내에 있으면 기능성 질환이 있다고 진단하는 거죠.” 혈액 검사를 통해 잡은 가이드를 바탕으로 소변 유기산 검사, 중금속 검사, 아미노산 대사 검사, 산화 스트레스 검사, 타액 호르몬 검사, 비타민 검사, 장 기능 검사 등 현대 의학에서는 하지 않는 전문 검사를 20가지 정도 진행한다. 

 

하나로 연결된 몸 

‘면역과 염증의 불균형’ ‘에너지 불균형과 미토콘드리아 병변’ ‘소화, 흡수, 미생물학적 불균형’ ‘호르몬 및 신경전달물질 불균형’. 검사를 통해 얻는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다. 내 몸이 이렇게 균형이 안 맞았나? “우리 몸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몸속 기능의 균형이 깨지면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건 ‘내적 치유력’이에요. 이게 약해지면 질병에 쉽게 노출돼요. 그때 불균형을 바로잡지 않고 증상에만 집중하다 보면 불균형은 심화하고, 내적 치유력은 더욱 약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돼요. 그래서 꼭 몸 전체를 보고 병에 걸릴 만한 이유가 뭔지, 어떤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해요. 어떤 증상이 나오는지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요.” 실제로 우리 몸은 하나지만, 눈이 아프면 안과에, 코가 아프면 이비인후과에 간다. 하지만 이것은 일시적 증상을 완화하는 것일 뿐. 몸의 건강을 찾아 유지하려면 통합적 관리가 절실하다. 통합적 관리를 위해 기능의학에서는 숲을 보는 ‘전인적 치료’를 한다. “간을 예로 들어볼게요. 간이 제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위와 장, 췌장, 혈관이 각각의 기능을 제대로 해야 해요. 그중 하나라도 기능을 못하면 간 기능 불균형이 생기는 거죠. 간에 문제가 일어났을 때 간만 집중적으로 살펴보면 안 되는 이유예요.” 그는 몸의 균형을 위해서 가장 쉬워 보이지만 어려운 식습관 형성과 운동, 영양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는 조언을 더했다. 

 

균형 잡기 

이재철 원장은 약 처방에 대한 질문에 “모든 약은 몸에 독”이라고 답했다. 논란을 야기할 수 있지만 기능의학적 관점에서는 그렇다. 기능의학적 관점에서 약물 치료는 체내 불균형을 일으키는 요인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스테로이드를 비롯한 면역억제제는 몸의 면역체계를 완전히 붕괴시켜 불균형을 심화한다.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환자에게는 어쩔 수 없이 진통제를 처방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타이레놀처럼 제일 약한 약을 처방해요. 마약성 진통제를 쓰면 통증이 바로 사라지겠지만, 그렇게 되면 환자 스스로 자신을 돌보지 않거든요. 어느 정도 통증을 느껴야 몸이 아프다는 걸 인식하고 쉬어요.” 보완 치료라고도 하는 기능의학의 치료는 ‘습관 개선’에 가깝다. 필요한 영양분을 음식으로 섭취하거나 물을 많이 마시는 건 기본이고, 철분이 많은 경우에는 헌혈을 하기도 한다. 많이 웃고 명상을 하고 복식호흡을 하라는 진단이 내려질 때도 있다. 이 모든 건 의사의 치료 플랜에 따른 조치다.
“사람마다 플랜이 달라요. 본인이 노력해야 할 것, 2차 검사해야 할 것, 섭취해야 할 보조 식품까지 전부 알려줘요. 정맥주사로 필요한 영양분을 고용량 투여하기도 하고요. 사람마다 병증을 일으키는 내적 요인이 다르기 때문에 개별 맞춤 치료를 할 수밖에 없어요.” 몸의 주인인 환자는 어떤 자세로 치료에 임해야 할까? “이인삼각 경기에 임한다고 생각해야죠. 결국 병을 만든 건 환자 자신이거든요. 본인이 노력해야 해요. 의사는 기술자일 뿐이에요. 의사가 모든 걸 고쳐줄 수는 없죠. 의사는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는 거예요. 계속해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자신을 다스리고,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환자의 몫이에요.” 이재철 원장이 병원을 찾은 환자에게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있다. “인간이 밥을 왜 먹을까요?” 답은 ‘내 몸이 살기 위해서’다. 음식을 먹는 이유는 내가 아니라 내 몸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대부분은 내가 좋아하는 걸 먹어요. 몸이 좋아하는 걸 먹어야 하는데. 한발 물러나서 보세요. 몸이 살아야 내가 살거든요.” 정크푸드를 습관처럼 먹고 물 대신 콜라를 마시며 정작 몸이 아플 때마다 병원에 가서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무수히 많은 약을 처방받는 게 옳은 일이라 여겨온 과거를 되돌아본다. 어쩌면 건강해지는 방법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일단 올해는 종합건강검진보다 기능의학 검사를 먼저 할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