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IND THE ‘BEEF’ / 이성진 감독

제75회 에미상 시상식 8관왕에 빛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은 감독 이성진의 작은 경험에서 비롯됐다. 이건 누구나 공감할 일상의 이야기다.

<성난 사람들>에서 대니 조 역을 맡은 배우 스티븐 연(왼쪽)과 감독 이성진(오른쪽).

<성난 사람들>의 감독 이성진.

Q <성난 사람들>이 에미상 시상식에서 8관왕을 거머쥐었어요. 예상했나요?
글쎄요.(웃음) 예술을 설명하는 벤다이어그램 혹시 아세요? 한쪽 동그라미는 항상 나를 괴롭히는 ‘자기 의심’이고 반대쪽 동그라미는 고삐 풀린 ‘나르시시즘’이에요. 둘의 교집합이 ‘예술’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양쪽을 오간 것 같아요. ‘사람들이 내 예술에 관심이나 있을까?’ 싶다가도 우리가 모든 상을 다 탈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성난 사람들>은 그 중간 어디쯤에 도달한 결과인 것 같습니다. 

Q 마침내 그 지점에 도달한 뒤, 달라진 건 뭐가 있나요?
되게 피곤해요.(웃음) 굉장히 겸허한 마음을 갖게 됐어요.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처음 영화 일을 시작했을 때 어땠는지, 그리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그 생각의 끝에 남은 건 감사함이에요. 찰나의 순간이지만 제게 영향을 준 제 삶 속 많은 사람을 떠올리면 참 감사하더라고요. 그래서 수상 소감을 할 때도 최대한 많은 분에게 감사를 표현하려고 노력해요. 

Q 기분은 어때요?
너무 좋죠. 제가 속한 공동체, 함께 일하는 동료, 존경하던 예술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에요. 

Q 힘든 시기는 어떻게 보냈나요?
뭔가를 창작하는 과정 속에 머물게 되면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이 너무 많다 보니 때로는 그 과정을 즐기는 방법을 잊더라고요. 저는 다행히도 주변에 좋은 동료가 많았어요. 스티븐 연이나 앨리 웡, 또 다른 여러 사람이 제가 발을 땅에 디디고 현재에 집중하도록 도와줬다고 생각해요. 

Q 그들과 함께 만든 <성난 사람들>은 어떤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제작 초반부터 스티븐 연과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솔직하면서도 사이키(Psyche) 속 깊이 감춰진 어둠을 조명하는 작품을 만들자고요. 내가 나를 볼 때는 잘 모르지만, 상대방의 어둠을 발견하면 그 발견이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이어지잖아요. 딱 집어서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해야겠다는 마음은 없었어요.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보는 사람에게 달린 것 같아요. 제가 원한 건 솔직한 캐릭터, 난폭 운전, 유대감. 이 세 가지뿐이에요. 대니와 에이미의 난폭 운전이 결국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고, 그 과정을 최대한 진실되게 그리는 것.

Q 난폭 운전이 본인의 경험에서 비롯했다고요.
사실 그 사건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많지 않아요. 상대방이 흰색 BMW X3를 타고 있었다는 것 정도? 그냥 그 운전자의 하루 일진이 안 좋았다고 생각해요. 되게 고맙고요. 그 사람이 그날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성난 사람들>도, 이 자리도 없었겠죠. 인생은 정말 희한해요.

Q 그 경험이 이민자의 이야기로 이어진 것도 희한하네요. 한국 문화가 많이 묻어 있달까요?
대화의 결과물이에요. 영상 매체 제작은 많은 협력을 필요로 하잖아요. 제작에 관여하는 배우, 작가, EP, 디렉터 모두의 경험이 아이디어 단계부터 담겼어요. 그 경험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작품에 녹아들기도 했고요. 한인교회에서 찬양팀으로 활동하며 부른 밴드 인큐버스(Incubus)의 ‘Drive’가 작품에 사용될 거라고 전혀 생각 못했거든요. 우리의 이야기가 하나의 거대한 ‘믹싱 포트(Mixing Pot)’를 이뤘다고 할 수 있죠.

Q 예상치 못한 행운도 있었나요?
저는 진짜 운이 좋아요. 넷플릭스 팀에 한국계 미국인이 두 분 계셨거든요. <성난 사람들>을 믿고 끌어줬어요. 이전 작품을 만들 때는 한인 문화에 대해 과하게 설명할 부분이 많았다면, 이번에는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저보다 더 많이 아시더라고요. ‘자제할 필요 없어’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줘’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고요.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이 작품이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Q 이제 뭘 하고 싶어요?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에 사는 것에 대해 늘 생각하면서 사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제 안에 굉장히 깊이, 제 존재 자체에 박혀 있는 주제인 건 맞죠. 제가 앞으로 선보일 작품에도 녹아 있을 거예요. 언젠가는 꼭 만들 영화에도요. 

에디터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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