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곳에는 아낌없이 쓰지만, 원치 않는 곳에는 한 푼도 내어주지 않는다. 이들의 양면적인 소비의 세계. 

띠링! ‘Amex(0872) 이*윤님, 일시불 승인, 1,530,000원, farfetch’. 결제 버튼을 누르자마자 메시지 알림이 매섭게 울린다. 1년간 고생한 내게 주는 연말 선물로 한동안 갖고 싶던 가방을 택했다. 백화점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직구’를 하는 편이 더 저렴해 온갖 플랫폼을 뒤져 최저가를 찾았다. 50만원은 더 아꼈으니 스마트 컨슈머가 된 것 같아 뿌듯했지만, 이내 생활비 걱정이 시작됐다. 10만원으로 일주일 살기를 실천 중이었기 때문이다. 한 달로 치면 40만원이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면 일주일에 5만원으로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먹고 마시고 생활하는 데는 한 달 급여의 4분의 1도 채 쓰지 않으면서 선물이라는 핑계로 물건 하나에 100만원이 훌쩍 넘는 돈을 써버린 나. 혹시 나도 앰비슈머일까? 

‘앰비슈머(Ambisumer)’는 ‘양면적 소비자(Ambiguous Consumer)’의 줄임말이다. 평소에는 가성비를 꼼꼼히 따지지만, 본인에게 중요한 가치를 제공하는 상품에는 소득 수준이나 제품 가격에 상관없이 지갑을 여는 이들을 말한다. 소비자 한 사람에게서 고가품과 저가품의 상반된 소비 행태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값비싼 오마카세나 파인 다이닝은 기꺼이 소비하면서 생활용품은 중고 거래 플랫폼을 통해 할인에 할인을 받아 구매하는 식이다. 가방, 의류, 운동화 등은 고가의 럭셔리 브랜드를 선택하면서 식비 부담을 덜려고 편의점 도시락을 애용한다. 회계법인 삼정 KPMP가 2022년 발간한 보고서 ‘럭셔리 시장을 이끄는 뉴럭셔리 비즈니스 트렌드’에 따르면, 백화점 럭셔리 제품 구매자의 약 50%가 2030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양극화 소비는 MZ세대 사이에서 두드러지는데, MZ세대를 표현하는 트렌드 중 하나인 ‘자본주의 키즈’와 경제 불황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트렌드 코리아 2022>에 따르면, 자본주의 키즈는 자본주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돈과 소비에 편견이 없으며, 욕망에 솔직하고 소비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보이는 대표적 현상으로는 ‘소소한 재테크’와 ‘플렉스 소비’가 있다. 아르바이트로 푼돈을 벌던 대학생 시절에 화장품은 꼭 명품을 쓰던 내가 대표적이다. 

이런 과감한 소비력을 지닌 MZ세대도 경제 불황에는 속수무책이다. 2022년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5.1%에 달했고,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고용난이 지속되고 있다. ‘취준생’ 시절을 지나 ‘직딩’이 되어도 큰 변화가 없는 것. 이에 MZ세대 사이에서는 극단적 절약을 목표로 하는 다양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서로의 소비 방식을 평가하고 절약 요령을 공유하는 익명 채팅방 ‘거지방’, 치솟는 물가에 생활비를 줄이기 위한 ‘무지출 챌린지’, 냉장고에 있는 재료만 사용해 직접 요리하며 지출을 줄이는 ‘냉장고 파먹기’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얻은 포인트를 현금처럼 사용하는 ‘앱테크’까지.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 알뜰하게 생활하려는 이른바 ‘짠테크’를 한다. 결국 양면적 소비는 경제 불황 속, 개성과 선호도를 중시하는 이들에게서 나타난다. 돌이켜보면 강남에서 점심 한 끼를 먹기 위해 2만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내 생활비 긴축의 시작점이었다. 한정된 금액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갖고 싶은 걸 포기하거나 생활비를 줄여야 했다. 한편, 인하대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백승국 교수는 앰비슈머에 대한 칼럼에서 “일부 언론에서 MZ세대의 소비를 SNS에 보여주기 위한 ‘허영의 과소비’라고 평가절하한다”고 말했다. ‘허영의 과소비’는 가성비를 챙기는 실용적 소비가 아닌 자기 분수에 넘치고 실속 없는 무분별한 소비를 뜻한다. 하지만 백 교수는 “MZ세대의 소비를 과소비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들의 소비는 비싼 가격의 제품과 서비스에 과감하게 지출하는 소비의 양극화를 보여주는 상징 소비일 뿐이다”라고 했다. 앰비슈머가 곧 흥청망청 돈을 쓰는 이들이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거다. 

양면적 소비는 팬데믹으로 인한 소비 고급화와도 관련 있다. 코로나19로 국내 및 해외여행이 멈추자 지출 예산 쏠림 현상이 심화됐고, 2030세대 사이에 번진 골프 유행과 고급 유통 채널인 백화점의 성장, 오픈런 원정도 소비 고급화에 한몫했다. 코로나 블루로 인한 보복 소비 경향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여러 원인이 소비자로 하여금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하게 만들고 있다. 모든 곳에 많은 돈을 쓸 정도로 여유롭지 못한 사람은 자연스레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에 편중된 소비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보다 건강하고 나를 위한 소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의 거름망을 갖출 필요도 있다. SNS가 활발한 현대 사회에서는 자칫 인플루언서나 셀러브리티가 자신의 준거 집단이라 착각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미국 <포춘>은 20년 전인 2003년에 이미 연봉이 수억원인데도 늘 돈이 없어 쪼들리는 젊은이를 일컫는 용어인 ‘HENRY(High Earner Not Rich Yet)’를 소개한 바 있다. 소비 수준이 높은 한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돈을 벌고 모아야 하는 세태와 유사하다. 누군가는 사치품을 사는 것보다 여유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더 상위의 가치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 불황 속, 절약으로 인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내게 더 가치 있는 것을 좇는 것이 어쩌면 나를 위한 진짜 소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