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재무상담으로 금융감독원의 금융자문서비스를 받았다.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이라는 자조적 농담을 멈출 수 있을까?

 

새는 돈 막기, 초보를 위한 주식투자, 주택 청약… 돈과 투자에 대한 기사를 나름 꾸준히 써왔다. 그러나 취재를 하며 얻은 지식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진 못했다. 나는 여전히 돈을 다루는 것이 어색하고, 잔고와의 불화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심지어 최근 몇 달 사이 목돈이 필요한 일이 생기니, 사정은 더 난처해졌다. 주식은 하락장이 계속되어 자금을 뺄 수 없었고 그나마 들어놨던 적금을 깨고 났더니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현금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월세날과 카드 납일일을 불안하게 꼽아보던 중 금융감독원에서 무료로 재무상담을 해준다는 정보를 얻었다. 내게도 도움이 될까?

문전성시

재무상담의 정확한 이름은 ‘금융자문서비스’다. 금융감독원에서 서민의 안정적인 금융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제공하는 일대일 맞춤형 서비스로 국제공인재무설계사 자격을 갖춘 금융 전문가로부터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대면 상담과 유선 상담, 온라인 상담으로 나뉘는데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상담은 일시 중단된 상태다. 온라인 상담은 게시글을 남기면 답글이 달리는 형태이며 유선 상담은 금융소비자 정보 포털 파인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하거나 금융감독원 콜센터로 문의하면 된다. 홈페이지에 희망하는 상담 일자와 연락처를 기재하면 당일 연락을 되받고 최종적으로 확정할 수 있다. 단, 유선 상담은 길게는 한 달 정도 기다려야 할 만큼 일정이 차 있을 때가 많아 여유를 두고 신청하는 것이 좋다. 상담시간은 평균 1시간 정도가 소요되며 상황에 따라 조금 더 걸릴 때도 많다고 한다. 상담에 앞서 따로 준비할 것은 없을까? 제한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확실히 준비가 필요해 보였다. “현재 고민인 부분과 재무상담의 목표를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표가 정해져야 어떤 것이 문제이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지 방향성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또한 내담자의 재무상태를 상세히 알아야 하기에 상담 전까지 스스로 진단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금융전문가의 설명이다.

준비운동부터

자신의 재무상태를 진단하는 것조차 막연한 사람을 위해 금융감독원은 개인금융진단서비스인 ‘참 쉬운 재무진단’을 제공하고 있다. 간편진단과 정밀진단의 두 가지 유형으로 간편진단은 짧은 객관식 문항을 통해 5분 만에 대략적인 재무상태를 파악할 수 있으며, 정밀진단은 소득과 저축, 부채 등의 구체적인 재무현황을 입력해 재무비율지표를 진단받을 수 있다. 처음부터 문제가 어느 곳에서 발생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건너뛰어도 상관없지만,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모르겠다면 두 개의 진단 모두를 해보길 추천한다. 간편진단에서는 전반적으로 주의가 필요하며, 재무관리에 미흡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위험관리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드러났다. 저축을 꾸준히 하고 있더라도, 6개월 정도 수입이 없을 때 현재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비상자금이 없다면 재무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비상자금으로는 고정지출과 생활비를 더한 총지출의 4~6배 정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후 정밀진단에서는 저축액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나의 저축성향은 약 33.3%인데 20대의 적정 저축성향은 소득의 50% 정도라고 한다. 돈을 덜 써야 한다는 단순한 결과로 보이겠지만 진단 과정에서 자신의 정확한 소득과 지출, 저축 누적액, 투자 평가액을 점검할 수 있고 잊기 쉬운 세금과 연금, 보험까지도 돌아보게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D-DAY 재무상담

예약을 잡은 목요일, 오전 11시에 전화상담을 시작했다. 유동성 자금이 부족한 상태에서 저축과 투자의 비율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나의 말에 상담가는 자금이 필요한 순간에 대해 물었다. “돈을 모으는 것 자체가 재무목표가 될 수는 없어요. 이 돈을 모아 어디에 쓸 것인지, 어디에 필요하게 될 것인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후 나의 나이와 주거상태, 결혼계획 등을 물은 후에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더라도 5년 안에 전세자금대출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결국 대출로 연결될 수 있는 종잣돈을 모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내 딴에는 종잣돈을 위해 주식투자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혼란스러워졌다. 최소 5년 정도를 염두에 둔다면 미미한 예적금 이율보다 주식투자로 돈을 불리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아닌가? 그러나 상담가는 사전진단에서 나왔던 위험 관리 능력 부족을 지적하며 저축의 방향을 제시했다. “지금은 원금 손실 없이 언제든 뺄 수 있는 유동성 자금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주식과 펀드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한다고 하면 최소 10년은 잡아야 하는데, 5년 내로 재무상태의 변화가 있을 확률이 높은 현재로서는 적합한 투자 방법이 아닙니다. 목돈이 필요할 때 투자액을 빼겠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지금처럼 타이밍이 안 맞을 때가 많을 테니까요. 적금 역시 만기가 짧은 상품을 반복하며 자금을 모으길 추천합니다.”

지출 관리와 저축에 대한 상담도 이어졌다. 매달 월세가 나가는 상황에서 20대의 적정 저축비율인 50%를 맞추는 것은 충분히 어려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최소 소득의 40%까지 저축비율을 높여 이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무조건 아껴 쓰겠다는 생각보다 상세한 지출관리가 필요합니다. 먼저 고정지출액에서 줄일 수 있는 부분부터 검토해보세요. 그 다음, 그 외의 생활비에서 큰 비율을 차지하는 부분을 살펴보시고요.” 지출 관리를 위해 나름대로 가계부 앱을 쓰며 한 달 예산을 조정하고 있다는 말에 상담가는 기존과 다른 예산 책정 방식을 제안했다. “더 세세한 단위로 쪼개 예산을 짜보세요. 한 달에 얼마까지 쓰겠다는 덩어리 계획보다 주마다, 날마다 얼마를 넘기지 않겠다는 식으로 제한하는 거죠. 가계부를 기록할 때도 단순히 하루의 지출을 합산하지 말고, 정해놓은 하루의 예산을 기준으로 +와 -를 표시하면 자신의 소비 성향을 더 용이하게 제어할 수 있을 거예요.” 끝으로 그럼 지금 매입해둔 주식은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하고 묻는 나의 간절한 질문에는 조금 냉정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건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자신의 선택이죠.” 재무상담은 구체적인 투자상품을 추천하거나 최종 결정을 내리는 대신, 전문가의 관점에서 적합한 우선순위에 따라 조언해줄 뿐이다. 전화를 끊은 나는 바빠졌다. 휴대폰 요금제를 바꾸고, 잘 보지 않는 콘텐츠 구독료를 정리하고, 당장 오늘부터 쓸 수 있는 예산을 정리했다. 일단 하루 식비 2만원에서 시작해본다. 주말에 더 맛있는 걸 먹기 위해서는 평일 동안 부지런해져야 할 것이다. 상담을 마친 12시, 평소라면 망설임 없이 켰을 배달 앱 대신 냉장고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