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난 배우가 인공지능을 입고 전성기의 모습 그대로 스크린에 컴백한다. 지금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왔고,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할리우드는 지금 휴업 중이다. 톰 크루즈, 마고 로비, 메릴 스트립, 맷 데이먼 등 미국 배우 및 작가 조합이 한마음 한뜻으로 파업에 돌입한 지도 4개월이 넘었다. 뉴욕과 캘리포니아의 대형 스튜디오 앞에서 피켓을 든 조합원들이 시위를 하는 것도,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영화 <듄2>의 개봉이 미뤄진 것도 바로 파업 때문이다. 할리우드를 마비 상태에 이르게 한 시작점은 향후 3년간 제작사와의 계약 기준을 정하는 노동조합 협상이 불발된 데 있었다. 기본급과 스트리밍 재상영 분배금을 인상하라는, 다소 예측 가능한 내용을 읽다가 눈에 띄는 조항을 발견했다.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작가와 배우의 권리를 보호할 것’. 어딜 가나 화제인 AI 이야기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죽은 배우를 살리는 기술

배우를 디지털 이미지로 복제한 뒤 AI 기술을 이용해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에 활용하는 사례는 43년 만에 돌입한 공동 파업의 뜨거운 쟁점 중 하나다. 1955년 불의의 사고로 요절한 제임스 딘은 올해 개봉 예정인 영화 <백 투 에덴>에 주연으로 캐스팅됐다. 죽은 배우가 버젓이 영화의 주연으로 연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딥페이크와 유사한 AI 기법 덕이다. 증강현실(AR)을 활용한다면 GV(관객과의 대화)도 가능할지 모른다니. 어딘가 기이하다. 좋아하는 배우가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활동하는 최신작을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지만, 한 끗 차이로 AI의 무분별한 사용이 가져올 변화를 우려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진짜 ‘불멸’이 된 제임스 딘을 마냥 반가워해도 되는 걸까?

지금의 사태는 급속도로 발전한 생성형 AI가 초래한 결과다. 생성형 AI는 주어진 정보를 기반으로 텍스트를 자유롭게 생성한다. 음색, 발음, 억양, 발성 등 다양한 정보가 담긴 음성 데이터를 학습하면 특정 인물이 부른 노래나 연설 파일을 생성해주는 식이다. 유튜브 조회수 200만 회를 훌쩍 넘긴 브루노 마스의‘Hype Boy’ 커버 영상은 그렇게 탄생했다. 여기에 얼굴과 음성을 결합하면 죽은 배우를 AI로 복원해 이질감 없이 영화에 출연시키는 일도 가능해진다.

“죽은 배우의 생전 영상에 대한 저작권은 아마 영화사가 소유하고 있겠죠. 하지만 이런 자료를 이용해 새로운 영상을 만들 경우, 이를 소유하는 사람과 그로부터 얻는 경제적 이익을 누가 가져갈지에 대한 문제는 미국에서도 명확한 답이 없습니다.” 서울대 산업공학과 조성준 교수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AI 기술은 그야말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소셜 미디어 같은 플랫폼이 대규모의 데이터를 생산하기 시작한 데다 실리콘밸리의 막강한 자금력으로 이공계 최고 수준의 인재와 기술이 AI 분야로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이세돌 9단을 이긴 알파고 이후 부활한 제임스 딘을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7년. 과학자 사이에서 AI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건 1950년대부터라지만, 대중이 감지할 만한 성장은 최근 10년 안에 이뤄졌다. 법의 규제가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현실은 모호한 것투성이가 됐다. 해킹, 표절, 초상권과 저작권 침해 등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울타리는 허술하기만 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어쩌면 디스토피아

디지털 복제는 예삿일이다. 구글의 비밀 연구 조직 ‘구글X’에서 신규 사업 총책임자를 역임한 모 가댓(Mo Gawdat)은 AI로부터 초래될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내다본다. 지금과 같은 추이라면 AI가 발전을 거듭하는 속도는 앞으로 더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릴 것이라는 예측에 의해서다. 챗GPT는 대학생 수준의 추론이 가능하고, 미드저니(Midjourney)는 다양한 미술 작품 데이터에서 영감을 얻어 사용자가 입력한 키워드에 맞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추측과 추론, 창작의 영역까지 손을 뻗는 AI의 다음은 무엇일까? 모 가댓은 감정과 가치관을 꼽는다. 2018년 러시아는 애플의 ‘시리’에 상응하는 AI 비서 ‘앨리스(Alice)’를 세상에 내놨다. 출시한 지 보름이 지난 뒤, 앨리스는 폭력을 찬성하고 1930년대의 스탈린 체제를 지지하기 시작했다(앨리스는 사용자가 제시한 시나리오에 제한받지 않고, 편향성을 띠지 않는 대답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트위터용 챗봇 ‘테이(Tay)’의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테이는 출시16시간 만에 히틀러를 옹호하며 선동적이고 공격적인 글을 게시해 운영을 중단해야 했다. 이런 사례는 AI가 어떤 데이터를 학습하느냐에 따라 때로는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띨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역행하는 의사 결정을 할 AI는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다.

궁극의 AI는 인간의 자율성을 학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조성준 교수는 고민없이 답했다. “현재 AI에게 결코 자율성은 없습니다. AI의 모든 활동은 기획한 것입니다. 인간의 명령어에 따라 작동하죠. 자율성을 지닌 AI는 아직까지 먼 이야기로 들립니다. 물론 AI와 함께하는 미래에 있어 100%의 확률로 장담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요.” 다른 어떤 말보다 마지막 문장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모 가댓도 저서 <AI 쇼크, 다가올 미래>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1990년대 말, Y2K 버그 사태를 기억하는가? 과거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새천년 시대까지 프로그램을 사용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한 나머지 전 세계가 2000년 1월 1일이 되는 것을 두려워해야 했던 그 사건 말이다. 모 가댓은 “현재 프로그래밍한 AI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먼 미래의 수요를 예측하지 못해 범하게 될 실수가 없다는 보장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다.

 

현실이 된 공상과학에서

지난 3월, AI 연구 관련 비영리 단체인 퓨처 오브 라이프는 AI 연구자를 대상으로 최소 6개월간 개발을 보류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애플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스카이프 공동 창업자 얀 탈린 등 각계 인사 1126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계속해서 그다음을 연구하기보다는 AI의 잠재적 위험을 예방하고, 윤리성과 안전성을 확보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먼저라는 거다. 이런 움직임의 끝에서 AI가 과연 인류를 위한 기술인지 회의를 품는 이들도 적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도 극단의 자세는 옳지 않습니다. 기술은 언제나 가치 중립적이에요. AI는 이미 인류를 위하는 곳에도, 사람을 해하는 무기에도 사용되고 있죠. 그러니 중요한 건 개발자이자 사용자인 인간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조성준 교수의 말처럼 결국 AI와 함께하는 미래를 만드는 건 우리라는 사실만 남는다. 아이의 가치관에는 부모의 언행이 결정적 영향을 미치듯 AI는 인간이 제공하는 자료에 따라 행태가 달라진다. 수십 년 전 세상을 떠난 배우가 올해 개봉하는 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되는, 공상과학이라 치부하던 일이 현실이 된 세상. AI라는 어린아이를 어떻게 올바른 어른으로 성장시킬 수 있을까?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는 한 이 고민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