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열광하는 상반된 두 가지. 디테일과 애티튜드까지 고급스러운 올드 머니 룩 vs 1990년대와 Y2K를 관통하는 그런지 코어 룩. 

OLD MONEY LOOK

한동안 코로나 여파로 모든 디자이너가 담합이라도 한 듯 볼드한 로고 플레이를 봇물처럼 쏟아냈다. 하지만 최근에는 로고도 디테일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야무지게 만들어 고요한 울림을 주는 ‘콰이어트 럭셔리’가 대세로 떠올랐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노골적으로 과시하고 화려하게 치장하기보다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고 스타일에 투자하는 ‘올드 머니 룩’이 젠지 세대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올드 머니는 이른바,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처럼 대대로 부유한 가문에서 영감을 받은 패션 스타일이다. 기본적으로는 클래식한 범주에 속하지만, 그중에서도 핏하지 않고 낙낙하면서도 단정한 실루엣, 고급스러운 소재와 질감, 모노톤의 컬러 팔레트, 상류사회의 전유물인 스포츠 문화에서 영향을 받아 테니스, 승마, 스키 룩의 터치가 담겨 있다.
다이애나 비와 케네디 가문의 두 스타일 아이콘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캐롤린 베셋-케네디 등이 즐기던 스타일이다. 그중 캐롤린 베셋-케네디는 올드 머니 룩의 대명사이자 1990년대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스타일 아이콘으로, 현존하는 많은 스타일 아이콘의 롤 모델이었다. 요즘 젠지 스타 중에는 팝 스타 라이오넬 리치의 딸이자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소피아 리치가 대표적 올드 머니 룩 스타로 알려졌고, 최근에는 켄달 제너와 카일리 제너 역시 스타일에 변화를 준 모습으로 공식 석상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올드 머니 룩을 추구하는 브랜드는 로고를 드러내기보다는 탁월한 품질과 완성도 높은 마무리로 로고보다 더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로로피아나와 에르메스, 브루넬로 쿠치넬리, 랄프 로렌, 질 샌더, 더 로우 등이 대표 브랜드. 이 같은 브랜드의 의상을 착용할 때는 다른 무엇보다 화려한 주얼리나 기타 액세서리를 더하기보다는 의상 자체가 지닌 테일러링이나 촉감, 분위기를 오롯이 느끼기를 권한다. 그래야 옷과 하나 된 주인공으로서의 기품이 온전하게 드러날 수 있을 테니. 꼭 필요하다면 캐롤린 베셋-케네디부터 이어 내려온 블랙 헤어밴드와 프레임이 너무 크지 않은 블랙 선글라스면 충분하다.

GRUNGE CORE LOOK

그런지 코어는 올드 머니 룩과 정반대에 있는 키워드지만, 몇 시즌째 수그러들지 않고 간택받는 젠지적 자유 사고의 상징이다. 그런지 룩은 1980년대 그런지 뮤직에서 출발했다. 그 당시 엘리트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이 확산되고 도회적 보헤미아니즘이 발발하며 함께 태동한 것. 그런지 뮤직은 펑키 록과 헤비메탈 등을 믹스해 산만하고 어수선한 모습을 표현해 이름 붙였다. 1990년대와 Y2K가 나란히 인기를 얻으며 당시 유행하던 그런지 룩도 자연스럽게 주목받았다. 가죽 재킷, 격자무늬 셔츠, 슬로건이 적힌 티셔츠 또는 크롭트 티셔츠, 슬리브리스 톱, 밑위 길이가 긴 데님 팬츠, 찢어진 데님 팬츠, 컴뱃 부츠, 그물 스타킹 등을 레이어드해서 ‘막’ 입는 것이 포인트다. 낡아서 해진 듯한 의상으로 편안한과 자유스러움을 추구하는 패션 스타일은 빈티지 스타일과도 맥을 같이한다.
특히 2023 가을/겨울 그런지 룩은 젠지 세대의 취향을 고스란히 담아 더욱 빈티지하고 레트로한 무드가 공존하며, 한편으로는 고스의 무드도 더해져 다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대표 브랜드로는 디젤, 블루마린, 디스퀘어드2 등을 꼽을 수 있다. 그중 2023년식 최고의 그런지를 완성한 브랜드는 디젤이다. 쇼장을 콘돔 20만 개로 채우고 “성공한 삶은 긍정적인 성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남긴 디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글렌 마틴스는 데님을 그저 찢기보다는 그물 레이스로 패널을 만들어 청바지, 스커트, 재킷 등에 덧대어 한층 수준 높은 그런지 룩을 완성했다. 블루마린의 니콜라 브로그나노는 1990년대 어린 밀라 요보비치를 떠올리며 잔 다르크와 같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언밸런스한 페더 스커트를 톱 없이 매치하는 식). 그 밖에 디스퀘어드2, 디온 리, Y/프로젝트 등도 그런지 코어를 완성한 브랜드다. 이번 시즌 그런지 룩은 보다 자유롭고 자신감 있게 접근할 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길이가 다른 티셔츠와 아우터 여러 개를 레이어드해도 좋고, 패턴과 컬러가 부딪쳐 일으키는 예측 불가능한 조합의 미학도 기대할만하다. 우리가 그런지 코어에 바라는 건 올드 머니 룩의 그것과는 확실히 다른 신선함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