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발칙하고 과감해진 그 시절 하의 실종 패션의 귀환.

10년 전 대학 신입생 시절, 새내기의 마음을 뒤흔든 패션 트렌드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하의 실종’이다. 상의에 가려질 정도로 짧은 하의를 입어서 그런 이름이 붙게 된 이 패션은 당시 핫한 키워드인 ‘몸짱’ 트렌드에 힘입어 활개를 쳤다. 덕분에 핫팬츠는 탄탄한 건강미를 자랑하는 젊음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손바닥 한 뼘 정도 되는 아메리칸어패럴의 쇼트 디스코 팬츠를 입고 캠퍼스를 거닐면 동경하던 ‘대학생’ 언니가 됐다는 자신감에 차올랐으니까. 이런 이유로 칼바람에 사지가 오들오들 떨리는 겨울에도 핫팬츠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다니려면 빤스(?)만 입고 다니지, 바지는 뭐 하러 입나!” 못마땅한 얼굴로 내뱉는 엄마의 잔소리도 개의치 않을 만큼.

그 시절 하의 실종 패션이 10년의 유행 주기를 거쳐 이번 시즌 파격적인 스타일로 돌아왔다. 이제 하의가 없는 팬츠리스(Pantsless)로, 해외에서는 일명 노 팬츠(No Pants) 트렌드라고 한다. 컴백한 핫팬츠는 마이크로 미니 사이즈인 데다 속옷과 유사한 극단적 실루엣이다. 아무리 패션은 자유라 한들 누군가는 혀를 끌끌 차며 ‘민망함은 남의 몫’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1960년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메리 퀀트와 미니스커트 추종자는 하의 길이가 이렇게까지 짧아질 거라고 예상이나 했을까? 노출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려는 여성들의 폭발적 지지가 혁명적 패션 아이템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훨씬 짧아진 팬츠리스 룩은 자신감 넘치고 자유로운 애티튜드를 수반한다.

2023 봄/여름 런웨이에서 생 로랑, 톰 포드, 로에베, 미우미우 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브랜드가 선보인 룩이 그 예다. 코페르니는 수영복만큼 짧은 하의에 오피스에서 입을 법한 테일러링 재킷과 드레스 셔츠를 매치했다. 마치 오피스 룩으로도 손색없다는 듯 품격 있게 연출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 맥시밀리언 데이비스의 첫 페라가모는 일몰을 담은 레드 시스루 드레스와 슬쩍 비치는 언더웨어를 선보였다. 길이가 긴 드레스와 컬러를 맞춘 덕에 보일 듯 말 듯 관능적인 매력을 선사했고, 보테가 베네타는 시어한 검정 타이츠 안에 같은 컬러의 속옷을 매치해 타이츠만 입은 듯한 룩으로 시선을 모았다.

해당 룩을 입고 거리에서 포착한 켄달 제너의 사진은 팬츠리스 찬반 논란으로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하지만 부정적 의견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여러 스타들이 팬츠리스 룩을 입고 나타났다. 줄리아 폭스는 컷아웃 드레스로 팬티를 시원하게 드러낸 채 레드 카펫에 당당히 섰고, 테사 톰슨은 속이 훤히 보이는 시퀸 드레스 안에 검정 브리프를 매치해 우아함을 더했다. 헤일리 비버는 꾸준하게 팬츠리스 룩을 즐겨 입은 대표적 셀러브리티다. 그의 스타일링에는 철칙이 하나 있다. 쇼트 팬츠는 꼭 오버사이즈 아우터와 매치할 것. 진정한 하의 실종으로 다리를 더욱 시원하게 드러내고 길어 보이는 효과를 더한다.
물론 리얼웨이에서 노 팬츠 룩을 실현하기에는 아직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몇 시즌에 걸쳐 짧아지는 하의가 방증하듯 팬츠리스 패션의 시대가 도래했음이 명백한 바, 한 번쯤 과감하게 해방감을 즐겨보자. 지금의 쇼트 팬츠와 여성의 자유를 위해 힘써온 옛 시절 패션 걸들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