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사람들조차 번아웃 증후군을 경험합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증상을 악화시키지 않으려면 필독하시길.

거의 20년에 걸친 장거리 비행, 이른 아침 업무 전화, 12시간 동안 이어지는 세트장 근무를 견뎌내온 헤어 스타일리스트 네이트 로젠크란츠는 벼랑 끝에 몰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머리를 만지는 일 자체는 아직도 사랑했지만 그 외 수반되는 여러 가지 상황과 업무에 지쳐버리면서 자신의 커리어 자체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 것이죠. 즉 쉽게 말해 번아웃이 온 것입니다. 하지만 로젠크란츠가 경험한 번아웃은 흔히 영화에서 묘사되는 양상과는 달랐습니다. 로스쿨 학생이 수일간 지속된 밤샘으로 쓰러지거나 과로한 CEO가 드디어 폭발해 그 자리에서 사표를 던져버리는 모습과 자신의 모습에는 괴리감이 있었기 때문이죠.

“번아웃은 사람을 서서히 지치게 합니다”

하지만 심리학자이자 곧 <더 번아웃 챌린지>의 출간을 앞두고 있는 마이클 라이터 박사에 따르면 번아웃은 영화에서 묘사된 것과는 달리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정신을 잠식합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번아웃과 탈진은 완전히 동일한 개념은 아닙니다. “번아웃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죠”라는 박사의 말처럼 번아웃은 쉽게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한 개념이라 세계보건기구(WHO)도 2019년이 되어서야 번아웃을 일종의 증후군으로 분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 번아웃을 경험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

세계보건기구가 정의한 번아웃 증후군의 개념을 살펴보면 번아웃은 ‘직업적 현상’으로 ‘직장 내 발생한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 했을 때’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연구를 통해 동일한 정의를 도출해낸 라이터 박사는 번아웃이 우울증 등 정신 질환을 유발할 수 있으나 번아웃 자체는 질병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라이터 박사는 번아웃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크게 3가지 증상을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세 가지는 탈진, 직업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 직장 내 능률 감소입니다.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작업에 열정을 불사르는데 그런 이유로 타 직종 종사자들보다 번아웃 증후군이 올 확률이 높습니다.

워싱턴 대학교에서 번아웃을 연구하는 키라 샤브람 박사는 10년 이상 동물 보호소에서 일해온 직원들을 대상으로(동물 보호소는 높은 퇴직률로 악명 높습니다) 한 연구 결과를 설명했습니다. 연구의 목표는 직원들이 장기간 일해올 수 있었던 동기를 찾는 것이었죠. 열정과 동물에 대한 사명감이 동기였을 것이라는 게 그녀가 세운 가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그녀의 가설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샤브람 박사는 “자신이 하는 일을 소중히 여기지만, 그 열정이 과하면 금세 사그라드는 경향이 있어요. 다른 취미 활동도 즐기고 6시 정각에 퇴근하는 사람들이 이직률이 적다는 거죠.”라고 얘기했습니다. 일이 신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직업이 삶의 전부라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커리어에 대한 열정이 서서히 식어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달 개인적인 휴가로 메일 확인이 어렵습니다. 메시지는 추후에 읽도록 하겠습니다”

심리학 박사이자 번아웃에 관해서는 세계 최고의 전문가로 알려진 크리스티나 마슬락 또한 일이 삶의 전부가 되면 안 된다는 교훈을 긴 말없이 몸소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기사 작성을 위해 전화 인터뷰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내자 위와 같은 자동 회신이 왔습니다. 언제 복귀할 예정인지, 어디로 연락하면 되는지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습니다. 일상과 업무의 경계를 확실히 지키겠다는 대외적인 선언 같았죠.

2) 셀프케어로도 번아웃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메일 수신함을 무시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럼 이쯤에서 아침 명상, 퇴근 후 느긋한 목욕 같은 뻔한 얘기를 해결 방안으로 제시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면 실망스럽겠지만 맞습니다. 하지만 뻔한 해결책으로 치부하며 눈알을 굴리기 전에 샤브람 박사의 연구 결과 또한 정신 수양의 놀라운 효과를 보여줬다는 사실을 고려해 주시길. “정서적 탈진으로 고생하고 있다면 우리가 우습게 생각하는 셀프케어, 예를 들어 마스크 하기, 젤 네일 받기 등이 실제로 번아웃 증후군을 완화하는 데 효과가 있습니다”라고 샤브람 박사가 얘기했습니다.

캠페인 촬영, 레드 카펫 행사의 연속으로 3개월간 집에 들어갈 수 없었던 셀러브리티 헤어 스타일리스트 아드르 아버젤에게 호텔방 욕조는 필수입니다. “목욕이 저에게는 셀프케어에요”라고 아버젤이 얘기했습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다니엘 마틴은 일주일에 최소 2회 필라테스는 꼭 하고 있다며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원격 필라테스 세션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업무에 대한 열정은 나 스스로를 돌볼 수 있을 때 계속 유지할 수 있죠”라며 “나 자신도 돌보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을 성심성의껏 돌보는 일은 불가능해요”라고 마틴은 얘기했습니다. 당장 3주 요가 세션에 등록해야 하는 건 아니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샤브람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타인을 배려하는 사소한 행동만으로도 번아웃으로 인한 냉소적인 태도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요. 봉사활동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거나 동료에게 커피를 사는 사소한 행동 모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3) 업무에 대한 책임은 회사에 두고 오시길

동기 결여로 인한 능률 감소는 번아웃 증상의 세 번째 증상인데 앞선 다른 두 증상보다 다루기 까다롭습니다. 하지만 목표를 작은 단위로 쪼개서 실천 가능한 과제들로 만든다면 차근차근 하나씩 이룰 때마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샤브람 박사는 조언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번아웃을 완화하고 예방하는 방법을 설명하는데 긴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하지만 번아웃은 직업적 증후군(즉 직업으로 유발된 현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박사는 셀프케어, 휴가, 근무 시간 외 업무 연락 회피 등 개인이 번아웃을 위해 회사 밖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은 2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추산했습니다. 나머지 80%는 근무 환경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죠.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판단하려면(우선 그 부분이 정리되면 나의 가치관과 맞는 업무 환경을 찾아갈 수 있으니까요) 업무를 하면서 하루 동안 좋았던 부분,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좋지 않았던 부분을 노트에 꼼꼼하게 정리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라이터 박사는 조언했습니다. “몇 주간 노트를 정리하면서 눈에 띄는 패턴을 찾아보세요”라며 “업무 환경에서 누구와 있었을 때 그리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을 때 변화가 있었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동안 집단적으로 근무하던 기존 환경에도 급격한 변화가 생겼으니 3년 전과 비교했을 때 삶의 우선순위 또한 크게 바뀌었을 수 있습니다. “의미 있는 일을 추구하겠다는 사고방식은 유럽의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1/3이 사망한 이후에 생긴 것이죠”라고 슈브람 박사는 설명했습니다. “페스트 후 사람들은 처음으로 자신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일을 꼭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죠. 내가 관심 있는 일을 추구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게 지금 우리의 모습이죠. 큰 시련이나 사건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며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다시 재고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