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말라고 하면 더 보고 싶은 법. 방구석에서 누군가의 퇴사, 이혼, 백수 라이프를 보는 심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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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 포르노Misery Porn

주로 극 중에서 캐릭터에게 일어나는 비극적인 요소를 억지로 부풀려 표현하는 서사를 의미하는 경멸의 단어가 바로 ‘불행 포르노’입니다. 다른 말로 ‘캐릭터 학대’라고도 하는데요. 동정심을 유발하다 못해 독자로 하여금 우울한 감정에 이르게 하죠. 마치 쾌락을 일시적으로 강하게 자극해 끝내 허무한 감정을 들게 만드는 포르노와 비슷한데요. 빈곤 포르노처럼 동정심을 억지로 유발해 자극적인 요소로 사용하기 때문에 분명 부정적인 단어임에는 확실합니다. 기부 모금을 한 인물이 돈을 빼돌려 호화로운 취미를 하는 등 부조리적인 행태들이 언론에 노출되기 시작하면서 빈곤 포르노, 불행 포르노와 같은 단어가 퍼지기 시작했죠.

일상 속 불행 포르노

하지만 이러한 불행 포르노는 거창한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작게 녹아들어 있습니다. 급성장한 유튜브 중 이혼하고 아이 키우는 싱글맘의 일상, 중소기업 다니다 퇴사하고 백수로 살아가는 청춘의 브이로그 등의 조회수가 높은 이유 역시 불행 포르노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죠. 타인의 일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클릭이었지만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만이 구독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닐 수 있습니다. 나와 다른 이들의 일상을 바라보는 것에는 일종의 ‘자기 위안’이 들어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마음 속에는 ‘이런 삶도 있네’, ‘사는 것 다 비슷하구나’, ‘그래도 이 사람보단 내가 낫지’, ‘힘들겠다’라는 다양한 감정들이 공존하고 있을 거예요.

불행 포르노 계속 봐도 될까?

유튜브의 장점은 전 세계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아도 현실적으로 체험할 수 있고 나의 삶 역시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불행 포르노를 소비하는 입장에서는 인간의 작은 호기심과 같은 무의식의 심리를 미처 인지하지 못할 수 있어요. 또한 현실보다 더 불행하고 빈곤하게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들 역시 점점 더 자극적이고 인위적으로 콘텐츠를 만들게 되는 경향도 무시할 수 없죠. 계속해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구독자들은 끊임없이 쾌락적인 콘텐츠를 찾게 되면서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이는 포르노를 소비하는 이들의 심리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 만약 나와 다른 이들의 삶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 콘텐츠를 소비하거나, 이를 소비할 때 우울감, 불행, 분노, 회의감 등 부정적인 감정들이 들지 않는 선이라면 적당히 소비해도 건강한 내면을 유지할 수 있어요. 보고 나서 왠지 모를 찝찝함이나 윤리적인 자책감이 드는 경우라면 자제하는 게 좋습니다. 우리의 뇌는 알게 모르게 보고, 듣는 다양한 콘텐츠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초반의 ‘불행 포르노’라는 단어가 생겼을 때처럼 경멸 섞인 의미가 이제는 많이 퇴색되었다는 것도 짚어볼 만한 주제입니다. 문화는 언어에 지배를 받기 때문이죠. 우리 인생에 녹아있는 작은 불행 요소들을 부풀려 자극적인 콘텐츠로 만들고 이에 노출된 소비자들이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역시 그에 담긴 의미가 바뀌기 마련입니다. 소소한 불행 포르노가 많아졌다는 뜻은 그러한 콘텐츠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더욱 많아졌다는 뜻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