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BLOOM / 한효주
한없이 자유롭고 따스한, 한효주의 봄. “즐기는 쪽에 가까워진 것 같아요. 일하는 게 되게 재미있어졌어요, 이제야.” 그가 말했다.
새로운 시즌을 시작하는 멋진 옷을 잔뜩 입었는데, 다시 스웨트 팬츠와 패딩 점퍼 차림이되었네요. 이것도 잘 어울려요.
안 그래도 ‘언니, 오늘도 똑같은 옷이네요’라는 말을 자주 들어요. 맨날 이렇게 입는다고, 예쁘게 좀 입으면 안 되냐고 주변의 스태프들도 꽤나 솔직하게 얘기해줘요.
그런 사람들을 옆에 두는 걸지도요. 효주 씨도 솔직한 쪽이죠?
저도 솔직한 편이고, 솔직한 게 좋아요. 너무 좋다고만 해주는 것보다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해주는 게 마음도 편하고 좋아요. 살다 보면 많은 일이 있으니까.
그걸 다 기억하는 거죠? 아까 스태프들이 그러더라고요. 효주 씨 기억력이 어마어마 하다고요.
하하. 잘 기억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어요.
설 연휴에 가족과 함께 <해적: 도깨비 깃발>을 봤어요. 가족과 함께 영화관이라니, 2년 만이더라고요.
저희 영화에 큰 힘을 주셨네요. 요즘 영화가 진짜 어려워서요. 야심 차게 개봉했는데 너무 어렵더라고요. 물론 100만도 큰 숫자이긴 하지만요. 영화관 자주 가세요?
작년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듄> 뿐이에요. 아무래도 조심스러우니 집에서 OTT나 IPTV로 더 많이 보죠. 하지만 큰 자본으로 다양한 배우가 참여해서 만드는 스케일에서 오는 영화적 재미가 분명히 있잖아요?
너무나요. <듄>은 정말 아이맥스로 봐야 되는 영화죠. 심장박동 같은 사운드도 그렇고요. 이제 어디서든 영화를 볼 수 있지만, <듄> 같은 영화도, <해적: 도깨비 깃발>도 특수효과가 엄청나게 들어간 영화고 시원시원하게 큰 스크린으로 보는 게 더 재미있을 수 있는 영화인데 많이 아쉬워요.
요즘 영화관만큼 사람이 적은 공간이 없다고 하죠. 영화관에 여전히 자주 가요?
영화 보는 걸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라 지금도 자주 가거든요. 혼자서도 가고요. 사람이 없어서 마음이 아파요. 왜, 영화를 즐긴다고 표현하잖아요. 스무 살 때부터 일을 쉬는 시간에도 무조건 영화관 가서 영화를 봤어요. 그런데 점점 더 영화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상황이 되니까요. 다양한 장르의 플랫폼이 늘어나고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생겨나긴 하지만 극장영화는 또 느낌이 다른 것 같거든요. 잘됐으면 좋겠죠. 다시 살아났으면 좋겠고, 다시 잘됐으면 좋겠고요.
간절한 마음이 느껴지네요. 저는 효주 씨 영화 중에 <감시자들>과 <해어화>를 좋아하는데, 흥행이 잘되든 안 되든 가슴에 남는 영화가 있는 것 같아요.
와, 명언이네요. 저도 진짜 어렸을 때 엄마 손잡고 <라이온 킹>을 극장에서 본 기억이 또렷해요. <타이타닉>도 엄마를 계속 졸라서 세 번 보러 갔거든요. 그게 15세 이상인가 그래서 부모님이랑 같이 입장해야 됐던 것 같아요. 그렇게 영화관에서 반복해서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그런 기억들이 계속 남아 있고, 추억이 돼요. 좋은 영화들은 또 오래 남고요.
또 어떤 영화가 남아있어요?
다른 영화도 많죠. <라비앙 로즈>의 마리옹 코티아르의 얼굴을 진짜 좋아해요. 너무 연기를 잘해서, 제 연기가 잘 안 풀릴 때 한 번씩 꺼내보는 작품이에요. 제가 여성이라 그런지 여배우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작품들을 찾아서 봐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블랙> 같은 영화들. 또 <포레스트 검프>나 <블라인드 사이드> 같은 따뜻한 휴머니즘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한동안 <해적>으로 무대인사를 다녔죠? 영화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랜만에 만났겠어요.
3주간 일정이었는데, 지난 주말이 마지막이었어요. 요즘은 팬분들을 만날 기회가 없어요. 자리도 없고 만날 기회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무대인사로 만났죠.
그 앞에 서면 관객 얼굴이 잘 보이나요?
엄청 잘 보여요. 손으로 플래카드 만들어서 계속 잘 보이게 들고 계시죠. 형광색으로 글자를 다 오려서요. 저거 만드시는 데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너무 고마워요. 오래된 팬들은 그렇게라도 보니까 너무 반갑더라고요. 다들 ‘살아 있군요’ 하고 생존 신고하는 느낌이었어요. 이번 무대인사를 하면서 좀 신기했어요. 되게 어린 친구들이 오더라고요. 중고등학생 친구들이 드라마 <해피니스>를 보고 팬이 됐대요. 너무 신기한 거예요.
어디가 그렇게 신기해요?
저도 일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니까, 어렸을 때 저를 좋아했던 친구들이 지금은 다들 30대가 되었는데요. 내가 대체 어디가 좋은 건가.(웃음) ‘내가 왜 좋은 거야? 어느 부분이 좋은 거야?’ 기회가 되면 물어보고 싶어요.
작년엔 ‘열심히 일했는데 시청자분들이 쉬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제는 그런 얘기 안 하죠? 드라마 한 편, 영화 한 편이 그사이 있었네요.
그때가 여름이었는데, 이제 조금 많이 보이죠. 더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저도 <해피니스>의 본방송을 기다리며 본 시청자였죠. 광인병과 아파트라는 설정이 팬데믹을 떠오르게 해요.
저도 재미있게 봤어요. 의외로 여운도 많이 남고요. 급박하게 찍은 드라마인데도 현장에서 배우들이 너무 다 좋아서 분위기가 ‘해피’했어요. 감독님도 너무 좋으시고요. 사실 지금 촬영하는 <무빙>이라는 작품을 결정한 후였거든요. <무빙>이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몇 개월이 비게 되었는데, 그때 한 작품이에요.
어떤 마음으로 선택했어요?
최근에는 제 나이에 딱 맞는 작품을 많이 못했더라고요. <트레드스톤>에서도 10살짜리 아들이 있는 인물이었고, <해적>도 저와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서 연기해야 하는 작품이었죠. <해피니스>는 제 나이대와 딱 떨어지는, 제 성격과도 맞는 캐릭터라 좋은 타이밍에 온 작품 같았어요. 그래서 꼭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인지 드라마에서 윤새봄의 모습이 지금 한효주와 꼭 닮았어요.
그냥 저였어요.(웃음) 원래도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니는데, 트레이닝복 입고 현장 도착해서 갈아입어도 트레이닝복이에요. 그냥 메이크업만 조금 하는 정도였죠.
거기서의 씩씩한 걸음걸이가 너무 좋더라고요. 그런 자연스러운 여성 역할이 별로 없는데, 연기하는 건 어땠어요?
그 걸음걸이도 그냥 원래 저예요. 윤새봄은 딱히 꾸민 게 없어요. <해피니스>는 친구들도 다 너 왜 연기 안 하냐고 하더라고요. 언제 연기하냐고요.(웃음) 내가 연기하지 않고, 꾸미지 않고 지금의 나를 제일 자연스럽게 작품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였으니 너무 좋죠. <무빙>에서도 제가 고3 아들이 있고, 20대와 40대를 왔다 갔다 하면서 연기를 하거든요.
<해피니스>는 배우로서도 해피엔딩이군요.
다들 행복하게 했고 저도 만족해요. <해피니스>라는 작품은 정말 하길 잘한 것 같아요. 참, 작년에 진짜 재미있게 본 드라마가 <술꾼도시여자들>이었는데요, 세 분이 너무 사랑스럽고 저도 꼭 한번 같이 술을 마시고 싶은 거예요.(웃음) 그래서 지민(한지민) 언니랑 저랑 같이 카메오로 나가고 싶다고 저희끼리 얘기 했어요.
하하. 어떤 역할로요?
옆 테이블에서 술 마시는 사람들?(웃음) 그러다가 같이 합석해서 술 마시다가 헤어지는 장면이면 어떨까? 저는 <술꾼도시여자들>에 진심이에요.
* 전체 인터뷰와 화보는 <얼루어 코리아> 2022년 3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본 기사에는 협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에디터
- 허윤선
- 포토그래퍼
- KIM YEONG JUN
- 스타일리스트
- 박만현, 김경선
- 헤어
- 백흥권(살롱하츠)
- 메이크업
- 서희영(제니하우스)
- 네일
- 조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