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팔고 사는 명품? 이제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한 다리만 건너도 온라인으로 물건을 되팔아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위드 코로나, 세상을 혼돈케 한 팬데믹이 시작되고 안착하는 동안 최대 수혜를 본 곳 중 하나는 온라인 플랫폼인 게 분명하다. 세상 모든 일에는 득과 실이 존재하니까.

지난 몇 년 사이 소비 문화의 많은 것이 달라졌다. 소비의 세대가 달라지고 온라인 상거래는 마켓의 대부분을 장악했다. 그리고 이 마켓은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판매하는 리세일로도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다. 물론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MZ 세대가 있다. 실용적인 소비 습관이나 과소비를 지양하는 지속 가능한 패션이 각광받는 것도 그 이유가 될 수 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비칠 수 있는 SNS도 무시할 수 없다. 영국 3대 카드 회사 중 하나인 바클리 카드는 “약 200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10명 중 1명이 소셜 미디어를 위해 옷을 구매하고 반품했다”고 분석했고 영국 친환경 비영리재단 The Hubbub Foundation에서는 17% 이상이 소셜 미디어에 업로드한 옷을 다시 입지 않는다는 흥미로운 결과를 발표했다. 넘쳐나는 옷과 소비, 지속 가능한 패션을 외면할 수 없는 필환경 시대. 이러한 이유를 빌미 삼아 리세일은 사회 전반에 깊게 뿌리내렸고 더는 새것에만 열광하지 않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지난 8월,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에서 세컨드핸드 패션 아이템을 소개하는 팝업 스토어가 열렸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명품 패션을 상징하는 강남의 중심,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에서 세컨드핸드 판매라니.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파격적인 팝업 스토어를 선보인 건 하이엔드 패션을 다루는 서스테이너블 플랫폼 어플릭시(APPLIXY)다. 약 3주간 열린 어플릭시의 팝업 스토어는 온라인상에서도 크게 이슈가 되었는데, 유명 유튜버의 영상 콘텐츠를 통해 루이 비통×슈프림 컬래버레이션 컬렉션을 판매 중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 지난 2017년 선보인 루이 비통과 슈프림의 협업 컬렉션은 전 세계 마니아들을 열광케 했고 발매가 이뤄진 첫날, 전 세계 루이 비통 매장 앞에 긴 대기 행렬이 이어질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와 동시에 이 컬렉션은 엄청난 리세일 가격을 기록했고 그 열기는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중이다. 이렇게 전설이 된 일명 ‘슈비통’이 어플릭시에 입고되었다는 사실이 소개되며 루이 비통×슈프림 카드 지갑을 구입하겠다는 DM 문의가 수십 건에 달했다는 후문이다.

해외 마켓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개개인의 중고 거래나 리세일이 점차 전문화되는 점이 흥미로운데, 그중에서도 네타포르테의 행보가 인상적이다. 네타포르테는 지난 10월, 브랜드 최초의 럭셔리 리테일 서비스 네타포르테(Net-A-Porter)×리플런트(Reflaunt)를 론칭했다. 온라인 명품 리테일 그룹 육스 네타포르테와 리세일 기술 업체 리플런트와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기획되었고 네타포르테가 소속된 YNAP 그룹의 미스터 포터, 더 아웃넷 역시 2022년까지 이 서비스를 도입할 예정이다. 서비스의 방향성은 확고하다. 고객이 구입한 제품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순환시킴으로써 수익을 창출하고 기존보다 지속 가능한 패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네타포르테 리세일 서비스는 현재 영국에서만 제한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올해 말까지 미국, 내년 초 독일, 홍콩에서의 출시를 앞두고 있다.

사실 네타포르테는 리세일 플랫폼 중에서도 후발 주자에 가깝다. 이미 국내에서도 입지가 탄탄한 베스티에르 콜렉티브 같은 플랫폼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을 대표하는 베스티에르 콜렉티브는 2009년 처음 설립되었고 이후 전 세계 80개국에 진출, 1천여명이 넘는 가입자 수를 보유하고 있다. 매달 50만 건에 달하는 신제품이 등록되고 있으며 전년 대비 100% 제품 등록 성장률을 기록했다. 베스티에르 콜렉티브를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제품 가격을 원(Won)으로 표기, 한국어 지원, 카카오톡을 이용한 간편 회원 가입 서비스 등 공식 국내 론칭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베스티에르 콜렉티브는 알렉산더 맥퀸과 브랜드 승인(Brand Approved) 프로젝트를 실시하며 지속 가능한 문화 주도에 앞장서고 있다. 브랜드 승인 프로그램은 오래되거나 더는 입지 않는 브랜드의 아카이브 컬렉션을 매입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겠다는 취지로 기획되었으며 알렉산더 맥퀸의 알렉산더 맥퀸 팀에 의해 재작업을 거치게 된다.

그런가 하면 플랫폼 차원에서 전문적인 리세일을 제공할 뿐 아니라 각각의 패션 하우스에서 자체적으로 운영 중인 서비스도 늘어나는 추세다. 빈티지 리바이스 청바지를 업사이클링하는 리던은 고객 간의 중고 거래를 돕는 리셀(re/sell) 서비스를 선보였다. 고객 간 직거래 방식을 도입했고 판매 금액의 80%를 크레딧으로 지불하고 나머지 수익금은 비영리 기관 셜터슈트에 기부한다. 나이키 역시 리퍼비시드 프로그램을 통해 리세일을 권장하고 있다. 60일 환불 규정을 가지고 있는 미국 나이키에 반품된 중고 운동화를 세탁해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 A와 중고, 외관상 결함, 총 3가지 등급으로 나눠 리세일 중이고 이를 통해 불필요한 재고를 줄이고 소비자에게 할인된 가격으로 운동화를 제공하는 이점이 있다. 룰루레몬 또한 올해 5월부터 더는 입지 않는 룰루레몬의 옷을 5~25달러에 매입, 다른 중고로 교환해주거나 매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프트 카드를 증정하고 있다(아쉽게도 이 서비스는 국내에서 제공되지 않는다).

2021년도를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N차 신상’이었다. 신상은 신상이지만 처음 사용되는 것은 아닌 신상, 이 아이러니한 단어가 요즘 시대를 대변하는 명확한 트렌드. 사람들은 더 이상 새것에만 열광하지 않는다. 희소 가치만 높다면 그에 걸맞은 높은 금액을 지불하고, 여러 가지 필요와 상황에 의해 점점 리세일에 가까워져 간다. 이렇게 우리는 또 한 번 새로워진다.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