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과 도착한 새 드라마와 윤계상, 그리고 고아성. 이들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비밀이 있다.

{ 고아성 }

2017년에 이렇게 마주한 적이 있죠. 그런 일이 많죠? 한 번 보고 말 것 같은데, 또 어디선가 만나고. 그런 일들요.
그러니까요. 저 이제 서른이에요.(웃음)

아까 윤계상 배우와 OTT 플랫폼 시리즈 얘기를 한참 했어요. 어떤 점이 다른 것 같나요?
일단 드라마는 영화보다 찍을 양이 현저히 많은데 저는 사전 제작 드라마도 처음이거든요. 드라마를 중간 정도 찍으면 늘 ‘온에어’를 했었어요. 중간 정도 만들고 방영하면 피드백을 얻어서 반영하며 드라마를 완성했던 게 일반적인 과정이었거든요. 이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든 다음에 공개한다는 점이 새로운 도전이에요.

<크라임 퍼즐> 촬영 끝난 지 2주 정도 되었는데, 바로 새 드라마를 촬영 중이라고요. 
이렇게 바쁜 게 거의 처음인데 좋아요. 세 작품을 연달아서 하는 건데 시대극을 했다가 현대극 두 개를 하게 되었는데 그것 또한 새롭고 재미있어요.

현대극과 시대극, 어느 쪽을 더 선호해요?
현대극이 아무래도 편하긴 해요. 시대극 같은 경우에는 말투도 설정해서 연기하거든요. 1930년대 배경의 <항거: 유관순 이야기>에서도 완전한 사극 시대에 맞게 충청도 사투리를 가미했고 <라이프 온 마스>나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1980~90년대 서울 사투리를 대사에 많이 녹였어요. 반면에 현대극은 평소의 제 말투로 연기하니까 애드리브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 편해요.

이번에도 또 흥미로운 작품으로 만났네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드라마를 보고 있어서 시청자로서도 늘 새 작품에 관심이 가거든요. 
최근 화제작들을 촬영하느라 못 봤어요. 그럼에도 얼마나 사람들이 드라마를 좋아하게 됐는지는 체감하고 있어요. 저도 틈 나면 바로 보려고요.

뭐부터 볼 계획인가요? 
<오징어 게임>을 제일 먼저 볼 거고요. <D.P.>도 못 봤어요. 이 와중에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매주 열심히 챙겨보고 있죠.

하하! 당신도 ‘스우파’에 빠져 있군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가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인데 그거 볼 때랑 비슷한 쾌감이었어요. 다양한 여자들이 나와서 에너지를 발산하는 게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느낌이에요.

<크라임 퍼즐>에서 프로파일러 유희를 맡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올 것이 왔다 싶었어요. 
최근에 연기했던 인물들은 정의롭고 이타적이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어요. 이 정도로 건조한 역할을 맡은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냉철하고 꿋꿋하고 상처가 많지만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 그런 역할이었어요. 바로 그 점이 캐릭터 유희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이에요.

유희와 당신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힘든 일이나 감당하기 힘든 일이 일어났을 때 차분하게 바라보는 점이 유희랑 저랑 비슷한 것 같고요. 다른 점은 그래도 저는 유희보다는 살가운 사람인 것 같아요.

원작인 웹툰도 봤어요? 
웹툰을 초반부에 조금 봤는데 저희 드라마에서 가장 큰 포인트가 사건을 미리 드러내고 시작하는 거였어요. ‘내가 죽였다’라고 범인이 미리 알려주고 시작하는 게 흥미로웠는데 웹툰은 구성이 좀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대본으로 연구했어요.

어떤 연구를 했어요?
이번에는 배우들이랑 같이 했어요. 계상 선배님이 처음부터 자주 모이자 하셔서 배우들끼리 모이는 시간이 정말 많았어요. 한 장면 한 장면 이런 걸 넣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서 함께 만들어갔어요. 실제로 반영도 많이 됐고요. 이렇게 사전 회의를 많이 한 적은 처음이에요.

블랙 패턴 셔츠, 재킷과 팬츠, 밴드링 모두 루이 비통(Louis Vuitton).

화보 촬영에서 ‘알 수 없는 텐션’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드라마와 잘 맞나요? 
계상 선배님이랑 저 사이에 알 수 없는 텐션이 있어요.(웃음) 뭐랄까, 멀리 동떨어진 캐릭터들인데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계속 대립하는 게 제가 생각하는 작품의 가장 큰 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라이프 온 마스>의 나영은 조력자이면서 은근한 긴장감을 조성했어요. 반면 이번엔 사건에서 유희는 중심에 위치하죠. 
유희는 주체적인 위치에서 사건을 풀어나가고 <라이프 온 마스>의 나영은 주위를 돌면서 힌트를 주는 편인데 저는 둘 다 재미있었어요. 같은 경찰이지만 정말 다르죠. 유희는 본인에게 일어난 사건을 내가 맡겠다고 선언한 거고 나영은 시대로 인해서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 점점 나아가게 되죠.

두 작품 사이에 40년이라는 시간이 있으니 여성의 역할도 바뀌었군요. 일상에서의 고아성은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쪽인가요?
그때그때 다른 것 같아요. 순간에 충실한 편이에요.

자기 자신과 대화를 잘하는 사람인가요? 
그런 편이죠. 일기도 쓰고 표현을 하는 건 그때그때 다르지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는 일일이 파악하려 하고 기록하는 것 같아요.

그 기록물이 아직도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다니…. 언제 보여줄 건가요? 
하하! 사실 2018, 9년에 책을 쓰려다가 포기했어요. 글 쓰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어요. 진짜 힘들었어요! 일기를 오래 썼음에도 불구하고 글은 내 일이 아니구나 했어요. 저는 글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글이나 문학에 도움을 준 적은 없지만, 문학에 정말 많이 빚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책에서 얻는 영감이 정말 많으니까요. 문학 작품을 읽는 감흥이 시나리오를 읽을 때나 연기할 때 적용되거든요. 제 직업 안에 문학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해보니 별개의 일이더라고요.

블랙 스퀘어넥 톱은 인스턴트 펑크. 와이드 팬츠는 모스키노. 골드 이어커프는 헤이. 이어커프는 포트레이트 리포트. 실버 네크리스는 넘버링.

 

재킷과 팬츠는 김서룡 옴므 (Kimseoryong Homme). 슈즈는 크로켓 앤 존스(Crockett&Jones).

{ 윤계상 }

<크라임 퍼즐>의 배우가 모였네요. 곧 드라마가 시작될 텐데,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올레 IP TV 가입자들은 볼 수 있고 ‘시즌(Seezn)’이라고 구독할 수 있는 유료 채널이 있어요.

이제 개국하는 디즈니플러스를 위한 드라마 <키스 식스 센스>도 촬영 중이죠. OTT 플랫폼은 배우한테 어떤 장점이 있어요?
해보니까 여러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방영 날짜에 쫓기지 않고 제작할 수 있다는 점, 대본과 시나리오가 미리 나오니 완성도가 높다는 점이 장점이죠. 단점은 시청자분들이 구독료를 내야 볼 수 있다는 점이죠. 돈을 내야 볼 수 있다는 점이요. 찾아봐야 하는 거니까, 공중파는 틀면 나오고 시간에 맞춰 기다리면 되는데 이건 구독료를 내야 하니까요.

대본이나 연출이 여론에 휘둘리지 않기도 하죠. 기획 의도대로 쭉 가요.
맞아요. 시작과 끝이 같죠. 아휴, 어찌 됐든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두 곳 다요.

어쩐지 책임이 막중한 느낌인데요?
주연의 자리가 그런 것 같아요. 작품에 대한 책임감과 주인의식이 있어야 하죠. 마냥 좋지만은 않아요. 부담감이 항상 있고 그 안에서 어떻게 하면 잘할까 늘 고민하죠.

어떤 종류의 ‘책임감’인가요? 
‘흥행’이죠. 사실 그건 처음부터 선택하는 요인이기도 하죠. 저는 대중 예술을 하는 사람이에요. 작가주의 드라마나 영화를 선택한다면 느낌이나 콘셉트가 확실한 작품을 선택하겠죠. 그런데 지금 저는 OTT 플랫폼의 드라마니까 그 목적은 사람들에게 더 널리 많이 알려지는 것이죠.

명확하네요. 대중 예술이란 게 사실 대중들과 떨어져 생각할 수는 없으니까요.
정말 중요하죠. KT에서 기대가 많은 작품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잘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많죠. 제 입으로 이렇게 이야기하기엔 제가 부족한 점이 많지만요. 이제는 잘 모르겠어요. 열심히 할 뿐입니다.

‘이제는 잘 모르겠다’라면, 반대로 이것은 ‘알 것 같다’라고 느끼는 것도 있어요? 
그럼요. 가보지 않았을 때였죠. 어떤 작품을 하고, 결국 사람들은 분석하기 좋아하니 그 분석 끝에 어떤 곳에 도달하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남자 배우는 이런 역할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죠. 연기는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기도 하고요. 지금은 달라요. 세상이 정말 다양하고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고요.

더욱 그런 세상이 되고 있죠. 모든 게 더 빨라졌어요. 
<오징어 게임>이라는 시리즈가 전세계에서 1등을 했잖아요. 아마 잘됐으면 하는 바람이었지, ‘세계 1등이 목표야!’라면서 그걸 노리고 있지는 않았을 거란 말이죠. 또, 10년 전 영화의 한 장면이 갑자기 화제가 되기도 하죠. 계속해서 이렇게 이상한 곳에서 빵빵 터지니까 잘 모르겠어요.

그 안에서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재미있는 걸 해요. 다만 저도 훈련이 되어 있으니 제 관점에서 이 시나리오가 재미있다고 하는 건데 시청자들이 과연 재미있어할지는 정말 모르겠다는 거죠. 나는 작품이 하고 싶은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어요. 계속 혼자 고민을 해봐야 하는 거죠.

요즘 받는 대본들은 어떤 얘기를 하나요? 
다양성이 있어요. 예전에는 가족 관계, 친구 관계, 연인, 사랑, 우정에 국한되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범죄,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로 넓혀졌죠. 그러다 초능력자가 등장하기도 하고요. 지금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타임리스물도 많고 심지어는 화성이 배경이 되기도 하죠. 제가 하는 디즈니플러스의 드라마도 멜로 드라마인데 초능력을 갖고 있거든요. 새로운 요소로 초능력이 붙은 거죠. 이 정도의 설정 자체가 기본값이 되는 세상이니까 연기하기에 다양한 느낌이고 너무 어려워요.

말은 그런데, 표정은 무척 신나 보여요.
하하! 항상 미션이 주어지면 그것에 대해서 해결하는 걸 재미있어하는 것 같긴 해요.

코트는 보라미 비귀에 바이 아데쿠베 (Boramy Viguier by Adekuver).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오래전 작품 얘기해도 되나요? 2004년에 <발레교습소>를 영화관에서 본 적이 있거든요.
오! 그 13만 명 중에 한 분이셨구나!

지금은 어디에서도 스트리밍이 되지 않아 기억에만 남아 있는 작품이 되었죠. 오늘 인터뷰 전에 어쩐지 다시 보고 싶었거든요. 배우 윤계상의 시작이었잖아요? 
그래요? 볼 수 없나요…? 잘된 일이네요.(웃음) 정말 처음 알았어요. 당연히 있을 줄 알았는데.

그때는 배우 윤계상을 ‘가능성’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베테랑 배우가 됐어요. 
아휴, 그건 아닙니다. 절대 그럴 리가 없고 지금도 그때랑…아, 그때보단 조금 나을 수도 있는데,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있다면 저는 그 과정 속에 있는 것 같아요. 잘하고 싶어 하는 거죠. 저는 재능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너무요. 매번 나의 한계를 느끼는 게 정말 고통스러워요. 또 제가 오래 쉬었잖아요. 전 작품이 <초콜릿>인데 2019년도 11월에 촬영이 마무리됐으니까 1년 6개월 정도 쉬다가 연기를 하려니. 뭐든지 멈춰 있다 다시 시작하는 건 어려운 것 같아요. 결국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죠. 아예 멈추고 다시 움직이려니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1년 반이라는 시간은 쉼으로 적당했나요? 
너무 길죠. 누구든지 그 시간 뒤에 복귀하는 게 힘들 것 같아요. 감을 찾는 부분에서요. 지금 시대는 정말 급변하고 있고, 연기라는 건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니까요. 슬픔이면 슬픈 감정의 공감대를 형성할수록 시청자들에게 설득이 되죠. 그게 직업이니까요. ‘감’이라는 건 분명 존재해요.

복귀하니 뭐가 가장 어색했어요? 
멈춰 있으면 모든 것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거든요. 카메라나 붐대가 의식이 안 되어야 하고 상대 캐릭터를 배우 누군가가 아닌 상대 역할로 봐야 하는데 모든 것에 신경이 거슬리는 거죠. 깨끗해지지 못하는 것 같아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내 연기로 상대 배우와 소통할 수 있을까?’ 하나부터 열까지 의심되고 신경 쓰여요. 연기를 계속하면 그런 걱정이 줄어들거든요. 그래서 사전미팅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어렵더라고요. 앞으로 안 쉴 겁니다.(웃음) 저는 좀 더 풀려야 할 것 같아요. 지금도 솔직히 말하면 좀 쫄아 있어요.

오랜 시간 연기했는데, 스스로 믿어줄 때도 되지 않았나요? 
그런 경지는 송강호 선배님이나 김혜수 선배님 정도 아닐까요? 저는 절대 아니에요. 그래도 절대 후회는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만큼 절대 다시 할 수 없어요. 하고 싶지도 않고요.

<크라임 퍼즐>도 마찬가지겠네요. 왜 이 작품을 선택했어요? 
대본이 재미있었어요. 간단하고 쫓아가기 쉬운 느낌이었죠. 대본이 재미있으면 화면도 보이기 쉬운 것 같아요. 만약 대본이 잘 읽히지 않아서 다시 전 장을 봐야 이해가 되는 느낌이면 찍어도 어려운 것 같아요. 단숨에 읽히지 않는 건 안 하는 것 같습니다.

스릴러 장르를 원래도 좋아하는 편인가요? 
요즘 제 취향은 명확합니다. <반지의 제왕>, <어벤져스>처럼 만화 같은 작품들만 봐요. 생각을 비우고 볼 수 있으니까요. 어느 시절에는 작가주의 영화를 많이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걸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지금은 좀 편한 걸 보는 것 같아요. <크라임 퍼즐>은 제 취향에 맞는 스릴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편한 작품이에요.

어떤 작품인지보다 ‘윤계상 삭발’로 먼저 이슈가 되었죠. 난생처음 해본 머리죠?
너무 불편합니다! 가발을 써야 하는 상황이 몇 번 있었거든요. 삭발이 정말 어려운 것이더라고요. 가발을 쓰면 덥기도 하지만 가발이 머리를 조여서 3시간 지나면 머리가 아파요.

삭발하는 아이디어를 직접 냈다고요? 
과거와 현재가 왔다 갔다 하거든요. 드라마를 보면 아시겠지만. 제가 맡은 한승민은 여자친구의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자백하고 교도소에 들어가는 거거든요. 이 사람이 왜 그럴까 추적하는 것이 드라마의 큰 줄거리예요. ‘한승민’이 왜 교도소에 들어가는지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교도소에 들어갈 정도로 마음을 먹었다면 그 모습이 화면에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머리를 밀면 범죄자 같기도 하고 흉악해 보이는 남자처럼 보일 거라 생각했어요. 적어도 연약해 보이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지금은 살이 빠졌는데 덩치가 커 보이도록 몸도 많이 만들었어요.

진짜 전 여자친구의 아버지를 죽였나요?
정말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가 없네요.(웃음)

윤계상이 입은 재킷은 김서룡 옴므. 고아성이 입은 블랙 풀오버 이너, 화이트 셔츠, 블랙 컷팅 니트는 모두 발렌티노(Valentino).

* 전체 인터뷰와 화보는 <얼루어 코리아> 11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