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믿어야 할 것을 믿지 않는 불신의 시대, 사랑은 어떻게든 우리를 휘젓는다. 두 번째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사랑에 관한 측은한 물음을 던진 박상영의 지금.

 

주로 아침에 글을 쓰고 심지어 택시에서도 쓴다던데 사실인가?
집에서 여기까지 택시로 40분 정도 걸렸는데 오는 동안에 좀 썼다. 목적지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꼭 데드라인처럼 느껴진다. 바쁜 상황에서 쫓기듯 쓸 때 나오는 맛이 있지 않나, 시간 대비 효율이 높아서 선택한 전략이다. 아침 일찍 쓰는 버릇은 회사 다니던 시절 얘기인데, 그땐 오전 5시쯤 일어나서 회사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고 9시 출근 전까지 썼다. 이성이 너무 승하면 글이 잘 안 나오기 마련이다. 이른 아침이나 잠들기 직전에 가장 잘 써진다. 사람들이 자꾸만 나를 성실의 화신으로 착즙하는데 그거랑은 거리가 멀다.(웃음)

9시 출근도, 출근 전 원고를 쓰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다. 성실의 화신이 맞는 것 같은데.
둘 다 잘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확실한 오버 페이스였다. 기본적인 생계 수단을 가진 상태에서 글을 쓰고 싶었다. 문학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작품 안에 빠져서 망가지거나, 금전적인 이유로 고장이 나 버리는 동료를 종종 봤다. 근데 회사 생활과 집필을 동시에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더라.

어떤 회사에 다녔길래?
여러 군데를 옮겨 다녔다. 첫 직장은 잡지사였는데, 어딘지는 비밀이다.(웃음) 광고 회사에서 기획자로도 일했고 컨설팅 회사도 다녔다. 보통 퇴근해서 밤 11시쯤 시켜 먹는 배달 음식이 첫 끼인 경우가 많았다. 그 한 끼에 하루 치 양을 먹어 치우고 바로 잠자리에 드는 패턴으로 살다 보니 금세 살이 찌더라. 내면도 망가져버렸고.

애써서 갈무리한 두 번째 책 <대도시의 사랑법>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있으니 고생한 보람이 있다. 2019년의 책을 꼽는 각종 리스트에 빠지는 법이 없더라. 지금까지 몇 쇄나 찍었나?
2월 기준 14쇄까지 찍었다. 나도 감이 없었는데 요즘 출판 시장을 생각하면 몹시 드문 케이스라고 하더라. 책을 내기 전엔 아무 기대감도 없었다. 내 목소리를 분명히 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좋았으니까. 널리 읽어준 독자에게 정말 고맙다. 꿈꾸던 일이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대도시의 사랑법>을 밤에 혼자 맥주를 홀짝이며 읽기 좋다고 하기도 하고, 여전히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전통적인 문학의 문법을 깨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충실히 재현하고 싶은 양가적인 입장을 가졌다. 그러다 보니 양쪽 모두가 만족하기 어려울 수 있다. 완전히 새롭고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을 기대한 독자는 우울해하고, 순문학적 가치를 찾고 싶었던 독자에게는 가볍게 느껴질 거다.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고 있지만, 그런 비평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방금 좀 지친 얼굴이 스쳤다. 독자의 반응에 주눅들 때도 있나?
글을 쓴다는 것, 그 글을 모르는 사람이 읽는다는 건 다수에게 나의 내면을 그대로 노출하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밑도 끝도 없는 비난은 차라리 낫다. 그건 웃어넘기면 그만이다. 내가 정말 상처받는 건 사정을 아는 이들의 비난이다. 뭘 알기 때문에 정확히 폐부를 찌른다. 기분이 아주 좋지 않은데 그 마음은 잘 사라지지도 않고 따라다닌다. 요즘 공공연하게 슬럼프를 겪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일부의 비난도 뒤로 넘겨버리면 된다. 오히려 당신을 향한 세간의 관심은 어지간한 아이돌에 가까워 보인다. 왜일까?
<대도시의 사랑법>에는 4개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전부 퀴어 소설이다.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퀴어 예술이 수면 위로 올라온 기분이다. 대중들은 더 이상 퀴어 예술을 불편해하거나 유난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퀴어 장르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견고한 층도 생겼다. 긴 시간 여러 방면에서 많은 사람이 노력한 결과가 이제 빛을 보는 것 같다. 그런 기조를 바탕으로 나도 용기 내서 쓸 수 있었고, 많은 이들의 응원을 받게 된 거라 생각한다.

당신의 소설은 단숨에 술술 읽힌다. 그와 별개로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두 애절하고 눈물겹더라. 
기본적으로 나는 비관적인 사람이다. 그게 소설에 드러나는 것 같다. 화자를 비롯한 그가 사랑하는 대상들과의 관계는 결국 실패로 끝난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노래 중에 ‘Thank U, Next’라고 있다.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감정이입하게 된다. 인생을 스쳐 간 중요했던 사람과의 관계를 훑으면서 실패한 경험을 담은 곡인데 아리아나 그란데가 마지막에 난 이제 강해졌다고 말하더라.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진짜 괜찮고, 진짜 강해졌다면 그렇게 선언하듯 말하지 않을 거다. 나 역시 20대 내내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했는데 돌아보니 모두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사람과의 관계뿐 아니라 세상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그 이해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 <대도시의 사랑법>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나 삶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라는 자조 어린 고백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랑에 관한 지금의 마음은 어디쯤인가?
여전히 갈구하면서 동시에 의심한다. 의존적일 만큼 사랑이라는 감정에 치중해 살았는데 지금은 먹고사는 일에 치여서 챙길 겨를이 없다. 그냥 문학과 결혼할까 싶다.(웃음) 글 쓰는 일이 참 이기적인 작업이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충분한 시간과 그보다 더 많은 감정을 요구해온다. 그걸 다 내어주고 나면 남은 감정이나 체력은 이미 바닥나고 없다. 내가 원했던 건 아니지만 작가로서 어떤 대표성 같은 게 생겨버렸다. 글을 통해 사회적인 증명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 당분간은 작품에 집중하고 싶다.

출판사 창비의 유튜브 채널에서 대낮의 이태원을 배회하는 영상을 봤다. 괜히 좀 웃음이 났는데 이내 애잔한 마음이 들더라.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이태원에서 미친 듯이 놀던 사람들, 저렇게 살다가 어찌 될까 염려되던 이들이 지금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괜히 위안되는 게 있다. 그땐 나도 정말 내일이 없어도 된다는 식으로 놀았거든, 진짜 내일이 없는 삶이기도 했고. 지금은 잃을 게 많아져서 노는 것도 재미없다.

한겨레 신문에서 딱 1년 전 연재를 시작한 에세이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를 엮어 세 번째 책을 낸다고 하던데.
비만의 패러다임이 바뀐 거 알고 있나? 원래 얼마나 먹느냐의 문제였다면 얼마나 자느냐가 비만을 결정한다고 하더라. 그 예가 딱 나다. 이래 보여도 나는 많이 먹는 사람이 아니다.(웃음) 밤에 먹고, 수면 시간도 부족해서 이렇게 된 거다. 다이어트가 요즘 내게 가장 중요한 문제라 그 주제로 에세이를 쓰면서 살도 빼고 건강도 찾으려는 소기의 목적이 있었다.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더라.(웃음) 아주 가볍게 시작해서 무겁게 마감을 마쳤다. 한 30대 비만인의 처절한 인생이 담겨 있다. 3월 중순에 나오니까 그 책에도 많은 관심을 좀.

요즘 응원하고 있는 작가가 있나?
누구 하나를 꼽기는 곤란하다.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점에서 든든하고 애잔한 동지애를 느낀다. 그들이 없으면 나도 없다. 작품은 혼자 쓰는 게 맞지만, 세상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 종종 다른 작가 소식을 공유하니 정 궁금하면 팔로우하던가.(웃음)

진작 했다. 얼마 전 그레타 거윅의 영화 <레이디 버드>를 좋아한다는 트윗을 남겼던데?
정말 좋아하는 영화다. 원래 청춘물을 좋아하는데 그 시기에만 나오는 무모함을 사랑한다. 레이디 버드의 행동 하나하나가 엄청 못된 짓이지 않나, 영화는 그걸 과장하지도 평면적으로 포지셔닝하지도 않는다. 현실의 온도를 잘 반영한 느낌이다. 엄마를 비롯한 가족의 모습도 그렇다. 우리 집이 딱 그렇거든, 서로 애정하지만 함께 있는 건 못 견뎌 하는 그런 거. 레이디 버드가 달리는 차 문을 열고 그냥 뛰어내리는데, 그 마음 나는 다 알지.(웃음)

그나저나 여기로 오는 택시에서는 뭘 썼나?
3월부터 문학동네에서 새로운 웹 플랫폼을 시작한다. <주간 문학 동네>라는 이름의 웹진인데 거기에 장편 소설을 연재하기로 했다. 독자의 존재를 몰랐을 때 내 세계에는 나와 모니터만 존재했다. 나 자신만 뛰어넘으면 쓸 수 있었는데 이제 작품에 이르기까지 이만큼의 간격이 있다는 걸 알아서 자꾸 생각이 많아진다. 덕분에 주저하게 된다. 쥐어짜내고 있다.

‘아무도 묻지 않겠지만 롤모델을 물어보면 머라이어 캐리의 이름을 대겠다’는 내용의 트윗을 썼더라. 꼭 물어봐달라는 모종의 메시지로 이해했다. 
1998년에 나온 <#1’s> 앨범을 진짜 좋아했다. 2005년에 나온 <We Belong Together> 이후 점점 망가지는데 또 거기 감정이입을 했지. 추락하듯 사라진 다음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서 1등을 하는 게 머라이어 캐리다. 남들이 뭐라고 떠들든 나는 내 갈 길 간다. 그 태도가 진짜 멋지고 존경스럽다. 바늘로 찔러서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완벽한 사람에게는 별로 마음이 가지 않는다. 비슷한 이유로 브리트니 스피어스도 정말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