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 콜, 그녀가 사는 법
릴리 콜은 그냥 예쁘장한 소녀로 머물 생각이 없다. 어제는 런웨이를 장악하고, 오늘은 인터넷 세상에서 꿈을 선물한다. 사회적 기업‘ 임파서블’을 시작한 그녀가 사는 법.
릴리 콜은 손대는 것마다 황금으로 바꿀 수 있는 그리스 신화 속 미더스 왕의 여왕 버전인 것 같다. 영국 출신의 우아하고,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카락과 삶에 대한 열정을 가진 그녀는 14세 때 햄버거를 먹다 발탁되어 모델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8년 뒤, 프랑스판 <보그>는 그녀를 새로운 밀레니엄의 톱모델 30명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2009년에는 히스 레저의 마지막 작품인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The Imaginarium of Doctor Parnassus)>에서 주인공을 맡기도 했다. 수많은 사진작가와 영화 감독들이 그녀에게 매혹되었지만 그녀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예술학부에 진학하기로 결심했고, 케임브리지를 최우수 학점으로 졸업했다. 자신의 열망을 모두 성취한 그녀는,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헌신하기 시작했다. 항상 꿈꿔온 소셜 미디어 기업인 임파서블을 설립한 것이다. 임파서블은 이렇다. 회원은 사소한 것부터 진지한 생각까지 자유롭게 적는다. “오늘은 너무나 끔찍한 하루였다. 누가 나 웃게 해줄 사람 있니? ”라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조언이 필요하다” 등 질문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에 대한 의견과 감정을 나누는 식이다. 이 서비스는 모두 무료다. 점점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릴리 콜과 나눈 이야기.
부모님의 이혼 후 작가인 어머니와 함께 지냈죠. 예술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것이 임파서블을 기획하는 데 영향을 끼쳤나요?
예술가는 현실에 도전하는 사람이에요. 20세기의 많은 창작물은 소비 사회를 비판했는데, 이런 접근이 저를 움직이게 한 것 같아요. 지난 몇 년간 시각적인 감각을 발달시켜왔는데, 삶을 살면서 시각적 영향은 매우 중요하죠. 곧 임파서블의 두 번째 버전이 공개될 예정인데, 더 추가되는 요소들이 있을 거예요.
어떤 것들이 바뀌죠?
사진이 더 중요해질 거예요. 사용법은 최대한 단순하게, 사용자들의 공간에 큰 비중을 둘 예정이에요. 임파서블을 진행하며 사람들의 좋은 작업들에 감탄하고 있어요.
임파서블은 사람들의 선한 마음에 기반하죠. 여전히 그런 회사는 드물어요.
매우 적죠! 우리는 누구나 다 고귀한 존재로 태어났어요. 하지만 자본주의의 치열한 경쟁이 우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이타주의를 잠들게 했어요. 저는 임파서블이 아주 약간이라도 우리 안의 선한 마음을 일깨우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요.
스스로는 고귀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임파서블로 인해 더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오늘 내가 기부나 좋은 가치를 교환했는가?” 매일 스스로 물으며 저를 점검하곤 하죠.
모델 활동 이후 한동안 연기에 전념했는데, 임파서블이 연기에 방해 되지는 않을까요?
두려운 마음도 있지만, 지금은 두 가지 일 모두 균형을 잡고 있어요. 영화 작업은 1년에 한 편만 하기로 마음을 정했어요. 미래의 제 모습이 어떨지 저도 모르겠지만 여러분이 잘 지켜봐주었으면 해요.
아버지와의 관계는 요즘 어때요?
매우 친하게 지내요.
먼저 손을 내민 건 누구였어요?
부모님의 이혼 후 아버지와는 떨어져 지냈지만, 제가 좀 커서 아버지를 찾아갔어요. 이혼한 부모님의 경우, 그들을 다시 만나게 하는 건 자식들의 몫인 거 같아요. 두려움이나 죄책감 때문에 부모님끼리는 서로 연락하는 걸 꺼리시죠. 제 경우에는, 제가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다시 손을 잡았을 때, 우리는 모두 기뻤죠.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어요?
연기자를 꿈꿨어요. 소녀 시절에는 한 치수 큰 브래지어를 원했고요. 하하. 제 가슴은 모델 일에만 전념하는 걸 그만두었을 때 커졌어요!
모델 활동 시절 너무 마른 건 아니었나요?
아프게 보일 만큼 수척하지는 않았지만 좀 마르긴 했죠. 누군가 제게 다이어트를 하라고 조언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모델로 활동할 때에는 더 마른 것이 더 낫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당시는 0 대1 였죠. 몸매에 대한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 나이죠.
당신 같은 미녀도 사춘기 때 고민이 있었어요?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붉은 머리를 놀리곤 했어요.
오, 그럴 땐 어떻게 반응했죠?
그냥 구석의 제 자리에 머물러 있었어요. 하지만 그 붉은 머리로 인해 패션계에서 쉽게 눈에 띌 수 있었죠. 그렇긴 하지만 모델 활동을 줄이고 공부에 전념하던 대학생 시절, 그 유명세는 오히려 별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제 유명세 때문에 가까이하거나 반대로 멀리했으니까요. 어느 쪽이든 제겐 불편한 상황이죠.
케임브리지 생활 말이군요. 그래서 어떻게 대처했어요?
평범하게 생활하려고 노력했고, 공부에 집중하게 되었죠.
과에서 수석을 차지했다는 소식도 들었어요. 모든 것에 뛰어난 건 축복일까요, 아니면 형벌일까요?
완벽하지 않을 때 스스로를 괴롭히는 타입이에요. 하지만 이제는 좀 제 자신에게 유연해지려 해요.
인생에서 실패를 겪어보긴 했어요?
운전면허 시험에 두 번 떨어졌어요!
다시 도전할 건가요?
그럼요! 불가능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꿈을 이루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그 꿈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놔두는 것이에요.
2015년, 당신이 희망하는 세 가지를 알려줘요.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 임파서블의 순항. 안정적인 연기 경력을 바라고 싶어요.
사랑 이야기가 없네요.
첫 희망에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잘 살아가는 것이 포함되죠. 하하.
- 에디터
- 샤샤 라일릭. 니나 베르델리(Nina Verdelli).
- 헤어
- 페데리코 게치(Federico Ghezzi)
- 메이크업
- 마리 그린웰(Mary Greenwell)
- 매니큐어
- 미셸 험프리(Michelle Humphr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