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원, 블랙에 빠지다
몸을 감싸는 블랙 드레스, 검은 면사포를 드리운 채 하지원은 슬픔에 잠겨 있다. 하지만 잔뜩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젖은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다가도, 한 컷의 촬영이 끝날 때면 그녀는 웃었다. 지난 18년간 우리가 봐왔던 예의 그 친숙한 미소였다.
<기황후> 종영 이후 첫 잡지 촬영이에요. 메이크업은 마음에 들어요?
뷰티 화보 촬영은 늘 재미있어요. 평소에는 피부톤을 건강하게 보이게 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이런 메이크업은 낯설거든요. 립 메이크업도 자연스러워 보이는 정도로만 하는 편이고요.
<기황후>에서의 메이크업도 인상적이었어요.
눈썹과 립 컬러로 캐릭터를 표현하려고 했어요. 권력을 거머쥐고, 신분이 상승할수록 눈썹을 길게 그리는 거죠! 립 컬러는 의상에 맞추되, 어둡고 강하기보다는 화사하고 우아한 이미지를 살렸고요.
그래서 눈썹이 그렇게 길었군요!
눈썹만 길게 그렸는데도 하이힐을 신었을 때처럼 자신감이 솟구치는 기분이 들었어요. 강한 표정을 짓지 않아도 카리스마가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영화 <허삼관 매혈기>의 촬영을 앞두고 있죠?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나요?
<기황후>가 51부작이었잖아요. 그동안 못한 광고 촬영도 하고, LA에도 잠시 다녀오고, 영화 촬영 들어가기 전 리딩도 하고 있죠. 그러고 보니 계속 일을 하고 있네요.
6월 말에 일본에서 팬미팅도 할 예정이라면서요?
맞아요. 대만 프로모션도 있어서 일본어 배우랴, 중국어 배우랴 수험생처럼 살고 있어요. 그래도 팬미팅은 잘하고 싶어요. 일본인 팬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직접 만날 기회는 드물었거든요. 장기 자랑하듯 보여주는 행사가 아니라 인간 하지원을 느낄 수 있도록 팬들과 교감하는 팬미팅을 해보려고요.
당신이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에세이집 <지금 이 순간>을 읽고, ‘하지원은 정말 이런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보통 스타들의 에세이집은 ‘이렇게 보이고 싶다’는 열망이 더 느껴져서 화보집을 본 기분인데 말이죠.
고마워요. 책을 낼 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그래도 당신도 ‘이런 사람처럼 보이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겠죠?
잘 웃는다는 말을 들으면 좋아요. 그래서 자주 웃다 보니 에너지 넘치고 웃음이 많은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 같아요. 촬영장에서 선배님들이 “넌 밤을 새웠는데도 웃음이 나오니?”라고 하실 정도예요. 웃으면 스스로도 힘이 나지만, 다른 사람까지 즐겁워 지잖아요. 힘들어도 웃으면 분위기가 좋아지기도 하고요.
그런 말을 듣는 게 기쁘기도 하고요?
그럼요. 건강해 보인다, 에너지 넘친다는 말을 듣는 건 좋죠. 그렇게 사는 것을 추구하기도 하고요. 원래 아예 안 하면 안 했지 하기로 한 이상은 열심히, 즐겁게 하려고 해요. 대신 미리 준비하고, 회의하는 시간을 가져요.
당신의 그런 면 때문에 <허삼관 매혈기>를 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원작 소설이 유명하긴 하지만, 감독으로서 하정우는 아직 낯설잖아요.
시나리오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이야기와 ‘허옥란’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도 있었고요.
당신은 멜로, 스포츠, 액션 등 어느 장르를 하더라도 ‘국민 영화’가 될 가능성이 있는 작품을 선택해왔죠. 그에 비하면 가난해서 피를 팔아야 하는 남자가 주인공인 <허삼관 매혈기>는 의외의 선택이에요.
예전에는 소속사에서 미리 검토한 시나리오 중에서 작품을 선택했거든요. 아무래도 회사다 보니 흥행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던 거죠. <허삼관 매혈기>는 마침 지난해 1인 기획사를 시작하면서 다른 방향의 영화를 해보고 싶었던 차에 만나게 된 작품이고요. 그동안의 행보와 달리 보인다면 그 때문일거예요.
1인 기획사를 설립한 이후 첫 번째 작품이 <기황후>였던 거죠?
그런 셈이죠. 작품이 잘되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처음에는 우려의 시선도 많았거든요. 역사 왜곡 논란에, 액션에, 심지어 50회가 넘으니 왜 그렇게 힘든 선택을 하냐는 말을 주변에서 종종 들었어요. 그런데 전 기승냥이 강해서 더 좋았어요. 아예 강하면 이걸 이겨버려야겠다, 정복해야겠다 하는 마음이 들거든요.
연기를 할 때나, 작품을 택할 때나 도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지금은 가장 대중적이고 친근한 배우지만, 사실 데뷔 초기 당신은 한국 호러 영화의 퀸이었죠.
그래서 드라마보다 영화에 갈증이 있는 것 같아요. 드라마에서는 비교적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고, 시청자들로부터 실시간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영화에서는 조금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허삼관 매혈기>의 허옥란은 허삼관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엄마죠. 아름다운 여자지만 퍽퍽한 현실을 살아내야 해요.
허옥란이야말로 제게 도전이죠.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리딩할 때 다들 저랑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고요. 배경도 6. 25전쟁 직후라 “강냉이 사세요, 강냉이 사세요” 하면서 등장하는 장면이었는데 말이에요.
<시크릿 가든>의 엔딩에서 아이들이 살짝 나오긴 하지만, 엄마 역할은 처음 아닌가요?
아이를 돌보는 희생적인 엄마라기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친구 같은 엄마의 모습을 담고 싶어요. 실제로도 그런 엄마가 되고 싶고요.
원작인 위화의 소설은 생생한 욕과 묘사로도 유명하죠. 이건 못하겠다 싶었던 장면도 있을 것 같아요.
대본을 보면서 정말 ‘뜨악’했던 욕들이 있어요. 욕이 입에 잘 붙지 않아서 옥란에게 어울리는 욕을 찾고 있죠. 아, 그리고 몸싸움도요. 여자들끼리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데, 제가 무술이랑 액션, 와이어 연기는 했어도 이런 식의 싸움은 처음이라 어렵더라고요.
욕과 머리채 싸움이 키워드군요!
그럴지도 몰라요. 욕을 잘하게 되는 게 지금의 목표니까요. 이번에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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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뷰티 에디터 / 이민아, 피처 에디터 / 이마루
- 포토그래퍼
- 최용빈
- 스탭
- 헤어/김주희(뮤제 네프),메이크업/김활란(뮤제 네프),매니큐어 / 홍리타,스타일리스트/이보람
- 기타
- 어시스턴트 / 유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