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페스티벌, 어디까지 가봤니?

여름 여행에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휴양지에서의 느긋한 선탠이나 작정하고 견문을 넓히는 배낭여행. 하지만 이제 록 페스티벌 여행이 추가되어야 할 것 같다. 6월부터 8월까지 세계 곳곳에서는 록 페스티벌이 끊이지 않는다.

‘여름은 노출의 계절’로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여름은 페스티벌의 계절이다. 7월부터 8월까지, 주말마다 크고 작은 페스티벌이 열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선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밴드들이 한국을 찾아 환호와 감동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선뜻 가기는 힘들어도, 한 번 가면 다시 가게 된다는 페스티벌이 한국에서도 여름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원조나 더 큰 페스티벌을 찾아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생겼다. 나도 그중 하나다. 2008년, 서머소닉 페스티벌에 가기 위해 일본행 비행기 티켓을 끊은 걸 시작으로 6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유럽의 페스티벌 라인업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곤 한다. 그렇게 다녔던 페스티벌들 중 결코 잊을 수 없는 게 있다면 2009년의 글래스톤베리일 것이다. 1969년 열린 우드스탁이 대형 록 페스티벌의 효시였다면, 1970년부터 지금까지 역사를 쌓아온 글래스톤베리는 모든 음악 페스티벌이 지향하는 귀착점이다.

페스티벌의 시작과 끝, 글래스톤베리
런던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 반 정도 걸리는 서머싯 주 글래스톤베리 마을에서 열리는 이 페스티벌에는 매년 15만 명의 인파가 몰린다. 우리나라에도 동명의 다큐멘터리가 소개되어 잘 알려진 글래스톤베리는 흔히 록 페스티벌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록 페스티벌은 글래스톤베리의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축제의 공식 명칭은 ‘글래스톤베리 컨템퍼러리 퍼포밍 아츠 페스티벌(Glastonbury Contemporary Performing Arts Festival). 즉, 공연이란 형태로 존재하는 모든 예술이 3일간 펼쳐지는 셈이다. 공식 스테이지만 15개 이상이고 비공식 스테이지까지 합치면, 거의 50여 개의 무대에서 음악은 물론이고 서커스, 코미디, 연극, 마임, 행위예술, 전시, 설치미술 등 다채로운 문화가 이 거대한 농장에 존재한다. 심지어 각종 정당의 강연회와 여러 인문학자의 포럼까지 열린다.

글래스톤베리의 재미는 프로그램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이 페스티벌을 찾았을 때, 가장 놀라웠던 것은 화려한 라인업이 아니었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진 사람들이 더욱 놀라웠다.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아이부터 노인까지, 멀쩡한 사람부터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까지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거기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꾸밈새와 표정은 나를 감동시켰다. 런던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각양각색의 의상과 분장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도시에서는 만날 수 없는 설렘과 흥분이 가득했다. 어떤 사람들은 히피, 어떤 사람들은 인디언, 어떤 사람들은 슈퍼히어로…. 각자의 콘셉트로 페스티벌을 즐겼다. 이런 의상과 분장에 필요한 것들은 집에서 준비해서 가져오는 건 물론 아니다. 글래스톤베리의 또 하나의 명물, 거대한 페스티벌 마켓에서 살 수 있는 것들이다. 무대와 무대 사이마다 온갖 것을 다 파는 마켓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런던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관객은 5분 안에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갖출 수 있다. 나의 경우를 말하자면, 처음에는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갔다가 다른 사람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지갑을 열자마자 자메이카 레게 스타일로 변신할 수 있었다. 그제야 내가 이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그래서다. 사람들이 글래스톤 베리에서 공연 관람에만 목숨을 걸지 않는 이유는.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부대 행사만 찾아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 심지어 아무것도 안 하고 잔디밭에서 일광욕만 하다 가는 사람들도 있다. 중요한 건, 내가 글래스톤베리에 있다는 사실이지 여기서 뭘 하고 있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리는 글래스톤베리는 결코 쾌적한 공간은 아니다. 근처에는 숙박 시설이 전혀 없기에 15만의 인파가 모두 캠핑을 하며 생활한다. 페스티벌 기간을 제외하고는 소 떼가 노니는 곳이니 간이 화장실을 아무리 많이 설치해도 오후가 되면 본능을 해결함에 있어 참으로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무리 해가 쨍쨍 내리쬐어도 장화는 필수다. 언제 갑자기 비가 쏟아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번 비가 내리면 푸르던 잔디밭은 순식간에 진흙탕이 된다. 심할 때는 페스티벌 기간 내내 한 점의 햇볕을 볼 수 없을 때도 있다. 일교차가 커서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다. 그래도 사람들은 글래스톤베리를 찾는다.

시작은 미미했다. 농장의 주인이자 페스티벌의 주최자인 마이클 이비스가 1970년 자신의 농장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밴드들의 공연을 열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무료 공연이 글래스톤베리의 첫 발걸음이었다. 1960년대는 히피 문화가 영국에서 득세하던 시절이었다. 수천 명의 히피가 몰려든 첫 번째 글래스톤베리는 마이클 이비스에게 엄청난 경제적 손해를 끼쳤다. 때문에 한 번으로 그칠 뻔했던 페스티벌은 이듬해 윈스턴 처칠의 손녀가 공동 기획자로 참가하면서 한 번 더 열렸다. 그리고 몇 년 후, 반핵시민단체가 가세하면서 정례화됐다. 해를 거듭할수록 관객이 늘어났고 출연진은 화려해졌으며 행사의 규모는 점점 커졌다. 그 와중에 수없이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것은 영국의 정치, 사회, 문화의 단면이 함의된 사건이기도 했다. 히피 문화에서 시작된 탓에 정치적으로도 진보적 자세를 견지해온 글래스톤베리는 대처 정권 시절에는 탄압의 대상이었다. 당국은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이 페스티벌을 멈추려는 시도를 했다. 행사장 입구에서 경찰관이 참가자의 짐을 수색하기도 했고, 히피들에게 곤봉을 휘두르기도 했다. 어떻게든 담장을 넘어 공짜로 페스티벌에 참가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안전사고가 나기도 했다. 그런 역사를 거치면서, 글래스톤베리는 올해로 41년의 나이를 먹어왔다. 그렇게 세계 최고의 축제가 됐다. 런던 올림픽과 재정비를 위해 내년에는 한 해 쉰다고 한다. 대신 올해의 라인업은 혀가 돌아가고 눈이 뒤집히는 수준이다. 메인 스테이지의 헤드라이너는 U2, 콜드플레이, 비욘세다. BB킹, 모리시, 폴 사이먼, 플랜B, 시로 그린 등등 웬만한 페스티벌 헤드라이너급들이 중간 보스로 등장한다. 과연 끝판왕 페스티벌답다.

1, 7 글래스톤베리에서 열광하는 관객들. 2 에드벌룬으로 무대 장치를 한 팔로마 페이스(Paloma Faith). 3 서로의 얼굴에 페이스 페인팅 아트를 하는 클래스톤베리의 두 여자. 4 코첼라의 열띤 분위기. 5 글래스톤 베리에 놀러 온 관객의 독특한 코스프레. 6 글레스톤 베리에서 공연하는 슬래시(Slash).

미국 페스티벌의 새로운 대세, 코첼라
한 해 동안 펼쳐질 세계 페스티벌 라인업의 윤곽을 엿볼 수 있는 건 매년 4월 캘리포니아 주 인디오에서 열리는 코첼라 페스티벌이다. 수익을 아메리카 인디언 보호 단체에 기부하는 이 자선 페스티벌은 우드스톡으로 시작해 룰라팔루자로 정점을 찍었던 미국 록 페스티벌의 계보를 잇고 있다. 여름의 유럽, 아시아로 이어지는 페스티벌 시즌의 서막이기에 코첼라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밴드들은 그 자리에서 다른 페스티벌 출연 계약을 맺기도 한다. 또한 부동의 세계 1위 음악시장을 가진 미국 페스티벌이다 보니 유럽 페스티벌에서는 보기 힘든 빅 이벤트를 만날 수 있는데, 2006년의 경우 마돈나가 무대에 섰으며 이듬해에는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이 재결성 공연을 갖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페이브먼트가 재결성의 신호탄을 코첼라를 통해 쐈으며 2011 그래미 상에서 앨범 오브 더 이어를 수상, 바야흐로 현 시대 록의 왕좌에 올라선 아케이드 파이어가 당연하게도 올해의 헤드라이너였다.

특히 올해의 코첼라는 페스티벌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순간을 만들어냈다. 유튜브를 통해 모든 공연을 생중계했기 때문이다. 즉, 캘리포니아에 가지 않고도 안방에서 코첼라를 실시간으로 감상하는 경험을 만들어냈다는 거다. 이는 SNS와 결합해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페스티벌이 열린 4월 15일부터 17일까지, 트위터의 실시간 이슈는 코첼라로 뒤덮이다시피 했다. 전 세계에서 페스티벌 생중계를 본 네티즌들이 현장 중계를 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코첼라라는, 비교적 뒤늦게 태어난 페스티벌의 지명도를 확산시키는 효과를 발휘했고, 내년 코첼라의 티켓을 구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무엇보다 공연이라는, 복제 불가능한 시간과 공간의 예술이 온라인으로 중계되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효과적 만남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향후 음악 페스티벌의 역사에서 올해의 코첼라는 비중 있는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라인업으로 승부한다, 록 베르히터

매년 7월 초 벨기에에서 열리는 록 베르히터는 최근 몇 년간 음악 팬들에게 많은 관심을 얻게 된 페스티벌이다. 글래스톤베리가 부럽지 않은 엄청난 라인업 덕분이다. 2009년에는 라디오헤드, 시규어 로스, 벡 등이, 지난해에는 메탈리카, 그린데이, 뱀파이어 위크엔드 등이 공연에 나서면서 유럽행 항공권을 지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서울보다 적은 인구에, 딱히 자국 출신의 스타급 뮤지션도 없는 벨기에에서 이런 페스티벌이 가능한 이유는 벨기에가 유럽 대륙에서 교통의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여러 페스티벌에 복수로 출연하는 뮤지션들이 이 페스티벌에서 저 페스티벌 사이의 기간 동안 벨기에는 이동에 효율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또한 벨기에 정부에서 지원하기에 개런티를 확보하는 데도 유리하다. 하지만 분위기는 다른 페스티벌에 비해 많이 가라앉아 있는 편이다. 가족 단위로 오는 관객이 많고, 또한 벨기에의 음악 시장과 페스티벌 문화가 그리 발달하지 않았기에 어떤 페스티벌보다 얌전하다는 평을 듣는 게 록 베르히터 스타일이다. 음악에 집중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무반응이라는 뜻이다. 오죽하면 그린데이가 공연 도중 객석을 향해 “너희들 왜 이리 얌전하냐” 타박을 했을까. 게다가 다른 페스티벌에 비하면 부대 행사나 파생 문화가 거의 없어서 공연 이외에는 즐길거리가 없다는 것도 록 베르히터의 약점이다.

1 코첼라 무대에 선 카니예 웨스트. 2 글래스톤베리를 즐기는 팔로마 페이스. 3 코첼라 무대에 선 지미 이트(Jimmy Eat)의 짐에드킨스(JimAdkins). 4, 5 글래스톤베리에 열광하는 록 마니아 들. 6, 8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이 열리는 지산리조트 잔디밭을 가득 채운 한국 관객들. 7 2010년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였던펫 샵보이즈.

스코틀랜드의 자존심, 티 인 더 파크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지역 감정은 유명하다. 오죽하면 월드컵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가 나눠서 출전하겠는가. 글래스톤베리가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페스티벌이라면, 그 대항마격으로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티 인 더 파크는 스코틀랜드인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페스티벌이다. 일반적인 페스티벌이라면 마지막 날 헤드라이너의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은 뿔뿔이 흩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티 인 더 파크는 하나의 순서가 더 남아 있다. 무대에서 스코틀랜드 국가가 흘러나오고, 모든 관객이 이를 합창한다. 이 페스티벌이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스코틀랜드 주민을 위한 행사라는 걸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탓에 관객 문화도 상당히 유니크한 편이다. 객석에서 세계 각국 및 단체들의 깃발이 휘날린다는 건 글래스톤베리와 동일하지만 그 위를 날아다니는 물체가 있다. 바로 맥주. 공연을 보다가 흥에 겨운 관객들이 일제히 앞을 향해 마시던 맥주잔을 집어 던지는 것이다. 일상에서 이런 일을 겪는다면 누구나 화를 낼 만도 하지만 여기는 페스티벌. 맥주를 뒤집어쓰고 오히려 좋아라 하며 환호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또한 외국인 관객들에게 가장 호의적이고 친절한 분위기도 티 인 더 파크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페스티벌을 통해 세계를 보려면 글래스톤베리에 가고, 지역의 문화를 보려면 티 인 더 파크에 가라고.

한국 록 페스티벌의 모델, 후지 록 페스티벌
매년 7월 마지막 주에 열리는 후지 록 페스티벌은 1997년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약 15만 명의 관객이 참가하는, 명실상부한 아시아 최대의 페스티벌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 규모답게 라인업뿐만 아니라 관객 문화도 가장 발달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관객들이 공연보다는 행사 그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야 캠핑형 페스티벌의 공통점이지만 후지 록 페스티벌은 그런 문화의 총집합이라 할 수 있다. 행사장 구석구석마다 기타를 치고, 야광봉을 돌리고, 비보잉을 하는 이들로 가득 차 있는데, 심지어 무대가 전혀 보이지 않는 숲 속에서도 자기들이 준비한 공연을 펼치는 이들도 있다.

또한 먹을거리, 마실거리가 가장 풍부한 페스티벌로 유명하다. 각국의 음식과 술이 곳곳에서 판매된다. 그러다 보니 무대에서 누가 공연을 하거나 말거나, 먹고 마시고 비공식 이벤트를 즐기는 이들도 많다. 아직까지 해외 뮤지션들의 공연에 굶주려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게 후지 록 페스티벌이다. 펜타포트, 그리고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의 모태가 된 페스티벌이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 시작한 펜타포트와 제휴 관계에 있다가 2009년에는 지산과 제휴 관계를 맺기 시작,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런 이유로 후지 록 페스티벌의 라인업이 발표되면 국내 음악 팬들의 관심이 쏠리게 된다. 올해 국내 페스티벌의 라인업을 점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래는 서구 뮤지션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으나, 갈수록 일본 뮤지션들이 헤드라이너급으로 서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페스티벌이라기보다는 음악박람회, 서머소닉
가장 많은 국내 음악팬이 찾는 페스티벌이다. 처음에는 도쿄에서만 열리다가 현재는 오사카와 도쿄에서 동시에 개최된다. 서머소닉의 가장 큰 특징은 페스티벌이라기보다는 공연박람회라 할 만한 독특한 진행 방식이다. 도쿄의 경우 치바현의 마린 스타디움에 메인 스테이지가 설치되며 인근의 마쿠하마리 메세(코엑스를 생각하면 된다)에 파티션을 치고, 몇 개의 무대가 더 설치된다. 두 번째로 큰 마운틴 스테이지가 메인 스테이지의 서브 개념으로 운영되며, 다른 스테이지는 모두 각각의 콘셉트를 갖고 있다. 댄스 스테이지의 경우 말 그대로 댄스, 일렉트로니카 아티스트들이 무대에 오르고 소닉 스테이지는 슈게이징, 노이즈, 프로그레시브적 요소를 갖고 있는 뮤지션들의 무대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메인 스테이지와 마운틴 스테이지에는 포괄적인 음악 팬이 몰리고, 다른 스테이지는 해당 장르의 팬으로 가득 메워지곤 한다.

이름에 록 페스티벌이 들어가 있지 않다 보니, 점점 록 밴드뿐만 아니라 일반 팝 뮤지션들이 헤드라이너를 장식하는 것도 하나의 경향이다. 지난해에는 비욘세와 스티비 원더가, 올해에는 제이 지가 마린 스테이지의 헤드라이너로 결정됐다. 록, 일렉트로니카에 이어 팝 뮤지션들까지 아우르며 보다 많은 관객을 유치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지난해 빅 뱅이 출연해서, 상대적으로 좋은 시간에 마린 스테이지에 서기도 했다.

한국 록 페스티벌계의 블록버스터,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
올해로 3회째를 맞는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은 바야흐로 한국 페스티벌의 블록버스터화를 주도하고 있다. 후지록페스티벌과 같은 기간인 7월 마지막 주 금, 토, 일요일에 열리며 후지 록의 금요일 출연팀이 일요일에, 일요일 출연팀이 금요일에 서는 방식으로 라인업을 공유한다. 지산 리조트에서 열리기 때문에 2009년 첫해에 지산에 도착한 관객들은 눈앞에 펼쳐진 잔디밭과 포장도로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후문이 전해질 정도로, 환경은 세계 어느 페스티벌에 비해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쾌적한 편이다(사실, 쾌적한 환경의 페스티벌이 거의 없긴 하다. 유럽 페스티벌은 대부분 농장에서 열려서 무척 불편하기 때문이다).

첫해에는 오아시스, 위저, 베이스먼트 잭스가 헤드라이너로 섰고, 지난해에는 매시브 어택, 펫 샵 보이스, 그리고 뮤즈가 헤드라이너를 장식했다. 지산의 성장세는 그야말로 괄목할 만한데, 첫해에 비해 지난해의 관객수는 말 그대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페스티벌이 여름의 상징이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스마트폰과 트위터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지산의 현장 분위기가 전해지면서 현장판매 티켓을 구입하는 사람이 그만큼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여, 지난해 지산의 현장 중계 카메라는 한국 공연장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그림을 잡을 수 있었다. 깨알 같은 관객의 바다가 넘실넘실대는 그림을 말이다. 작년의 성장세를 타고 올해도 만만찮은 라인업이 발표됐다. 케미컬 브라더스,악틱 몽키스, 더 뮤직, 스웨이드 등이 두 번에 걸쳐 발표된 라인업에 포함되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추가될 전망이다. 작년의 폭발적인 관객수에 힘입어, 올해는 지산 리조트 외부에도 별도의 무대 및 이벤트 시설을 확충한다. 단, 인근 숙박 업소들의 바가지를 근절하지 않으면 관객들의 원성도 폭발할 것이다. 페스티벌의 초기 관객들은 마니아지만 시장이 커지면 소비자들이 늘어나는 법, 이미 지산은 그 단계에 접어들었다. 향후 대형 여름 페스티벌의 주도권을 독점할 게 분명한 상황에서 라인업만큼이나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운영이다. 그것이 해결된다면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이 더욱 즐거워질 것이다.

    에디터
    글 /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박훈희
    포토그래퍼
    Photography |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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