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수포와 함께 낯선 통증이 나를 덮친다면 대상포진을 의심해봐야 한다. 감기처럼 지나가는 병일 수도 있지만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큰 병이 된다.

 

누군가가 대상포진에 걸렸다는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대상포진은 통계상으로도 흔한 병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 빅데이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상포진 환자 수는 2010년 약 48만 명에서 2016년 약 69만 명으로 5년 새 43%나 증가했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나는 대상포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고, 무지함으로 병을 키운 꼴이 됐다.

때는 몇 년 전 3월에서 4월. 특집호가 계속되고 있었고, 그 다음 특집을 위한 한 권짜리 별책 부록을 함께 만들며 동시에 4월 말 열리는 그린캠페인 준비까지 병행하고 있었다. 과장을 보태지 않고 한 달 내내 야근을 했다. 몸살감기 증상처럼 오한과 근육통이 있었지만 피곤해서 그렇다고 여겼다. 그러다 왼팔에 콕콕 쑤시는 통증이 시작되었는데 샤워를 하면서 보니 팔뚝 안쪽부터 팔꿈치까지 작고 붉은 딱지 여러 개가 나 있었다. 무심코 긁어 딱지가 생겼나? 가족에게 ‘이상한 따가움’을 호소했다. 대상포진 아니냐고 했던 건 남동생이었다. “그럴 리가. 난 수포가 생기지 않았는걸.” 대상포진에 대한 나의 상식은 엄청난 수포가 피부를 뒤덮는 증상이었다. 남동생이 말했다. “그래도 병원에 가봐. 내가 군대에서 보니까 수포 없는 대상포진도 있더라고.”

“대상포진이에요. 이런 지 얼마나 됐어요?” 내과병원의 의사는 무엇보다 시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상포진은 발병 후 72시간안에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해야 한다. 72시간이 지났는지 100시간이 지났는지 확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72시간이 넘지 않았길 바랐다. 의사는 약을 처방하면서 당부했다. “1주일은 푹 쉬어야 해요.”

매거진 에디터의 일은 갑작스러운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렵다. 이미 잡아놓은 인터뷰며, 화보, 취재 일정이 줄줄이 있었다. 그 다음에는 바로 마감을 해야 했다.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에디터도 아니고 디렉터이니까. 내가 빠지면 팀이 힘드니까. 딱 하루를 쉬고 업무에 복귀했다. 통증은 여전했지만 진통제를 먹으며 촬영을 하고 원고를 쓰면서, 마감이 끝나면 쉬어야지 했다. 그런데 마감이 끝나도 부록 마감이 이어졌고, 다시 그린캠페인을 마치고 더 약을 타기 위해 한 달 만에 다시 병원에 갔다. 할아버지 나이의 의사는 버럭 화를 냈다. “내가 쉬라고 했어, 안 했어? 이거 심각한 병 되는 거 몰라? 이제 큰 병원 가야 돼. 그렇게 평생 아플 수도 있어.” 의사는 처방전 대신 진료의뢰서를 휘갈겨 쓰고 있었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보인다는 거였다. 그렇게 만성 통증 환자가 됐다.

대상포진 후유증, 대상포진 후 신경통

창피한 과거를 줄줄이 적는 이유는, 그러니까 이 글을 읽는 사람 누구도 무지함 때문에 나와 같은 일을 겪지 말기 바라는 바람에서다. 초기에는 감기 증상과 비슷하다. 수포가 대표적인 증상이지만 나처럼 수포 없이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대상포진은 신경줄기를 타기 때문에 병변이 띠를 그리는 게 특징이다. 또 온몸에서 나타날 수 있다. 대상포진을 경험한 환자들은 서로 “(대상포진이) 어디로 왔어요?”라고 묻는다. 나의 경우는 왼팔이었는데 부위로 따지면 위험하지 않은 쪽이었고, 얼굴, 머리 등에 발병하면 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다. 대상포진은 무엇보다 빠른 진단, 빠른 치료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72시간 내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하며 절대 안정과 휴식을 취해야 한다. 본래 대상포진은 50대 이상이 주로 걸렸으나 ‘과로 사회’가 되면서 20~30대 발병률이 크게 늘어났다. 특히 여성 환자의 비율이 남성 환자보다 1.5배 높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걸릴까? 어릴적 수두를 앓았다면 누구나 걸릴 수 있다. 한국 성인 대부분은 잠복된 수두 대상포진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 바이러스는 신경에 일부 남아 있다가 과로와 스트레스로 면역 기능이 약해질 때 되살아나 ‘대상포진’이 된다.

대상포진은 겉으로는 피부병처럼 보이지만 피부병이 아닌 신경에 염증과 손상을 주는 질환이다. 초기에 제대로 된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신경통이 될 확률이 높다. 발진이 없어진 1개월 후에도 통증이 남아 있으면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진단한다. 대상포진의 가장 대표적인 후유증이다. 이 신경통은 사람에 따라 ‘분만통’만큼 심한 통증을 일으킨다. 그러니까 애초에 하루이틀 쉬는 걸로는 안 됐던 거다. 하지만 나도 내 주변의 사람들도 그냥 피곤하면 걸리는 몸살처럼 알고 있었다. 그 사이 병은 점점 심해졌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내가 진료의뢰서를 들고 찾아간 건 대학병원의 신경통증센터였다. 거기서 정지원 교수를 만났다. “이 상태로 그동안 출근을 했어요? 대상포진이 이제 나이 불문 흔한 병이 되었지만 젊은 분들이 여기까지 오는 경우는 드물어요.” 교수는 바로 진단서를 썼다. “회사는 휴직하세요. 당장 치료해야 해요.” 그 자리에서 울었던 것 같다. 이제 주치의가 된 분이 나를 위로했다. 잘 치료해보자면서. “그래도 환자분은 아직 젊으시잖아요. 젊은 분들은 예후가 좋아요.”

진단서를 회사에 제출하면서 ‘병가 중’ 상태가 됐다. 정말이지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회사에 나가는 대신 주 2회 병원에 가는 게 일상이 됐고, 할머니, 할아버지들 사이에서 진료를 기다렸다. 신경통증센터의 환자는 대부분이 노년층이다. 다른 젊은 여성 환자는 교사였다. “젊은데 대상포진 후유증으로 신경통증센터를 찾는 분들은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업이 많아요.”

대상포진 환자가 신경통으로 발전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꽤 높다. 영국 통계에 따르면 20% 정도 되며, 우리나라에서는 50%까지 보는 경우도 있다. 나이가 많을수록 그 확률이 높아진다. 통증 척도에 따르면 대상포진으로 인한 통증은 수술 후 통증보다 크다고 한다. 치료 역시 통증을 줄이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가능한 통증을 줄여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게 하는 것이 치료의 목표다. 병원을 다니며 약을 먹고, 물리치료를 받고, 신경차단요법을 받는 등으로 통증을 억제하려고 애썼다. 통증이 길게 계속될수록 통증이 고착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한달이 넘도록 아픈 상태였다.

대상포진은 위험하다

항상 통증에 시달리는 것. 그것은 삶의 질을 엄청나게 떨어트린다. 일을 하지 않으니 얼굴은 날로 좋아졌다. 겉으로는 너무나 멀쩡했지만 매 순간, 매일이 아픈 날들의 연속이라서 우울해지기 쉬웠다. 왜 제때 쉬지 못했나 나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통증은 사람을 예민하게 하고, 불행하게 한다. 그래서 항우울제 등을 함께 처방하는 경우도 있다. 좀 괜찮냐는 말에, 괜찮다고 답할 수가 없어서 한동안은 그 말을 듣기도 싫었다. 주치의는 치료와 함께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내가 즐거운 일을 하는 것, 행복해지는 것에 일상을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상포진은 화병과 비슷해요.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절대 안 돼요. 행복해야 나아요.”

대상포진, 이 진절머리 나는 병. 사람이 어떻게 늘 행복한가? 사람이 어떻게 늘 밝은 에너지를 유지하는가? 뼈가 부러지면 기다리면 붙지만, 이놈의 병은 까다롭기 그지없어서 몸도 조심조심 다루어야 하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멘탈 관리였다. 섭섭하고 슬픈 일이 생기면 거짓말처럼 팔이 더 아파왔다.

어느덧 초여름이었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이더라도 치료를 빨리할수록 치료 효과가 높다. 집중 치료 기간 동안 집 앞에 핀 장미넝쿨을 새삼 발견하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하루에 하나는 꼭 좋은 일을 했다. 병원에 다녀오면 장미 앞 벤치에 앉아서 월드콘을 먹었다. 만화책 20권을 한 번에 빌려 보기도 했고, 값비싼 잠옷 – 병원만 가니까 외출복이 필요 없어졌다 –을 직구로 주문했다. 하루 종일 넷플릭스만 보는 날도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병원 근처에서 점심을 먹으며 웃었다. 그러는 사이,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은 불에 덴 듯한 화끈거리는 통증으로 바뀌었고, 저리거나 시린 통증으로 다시 변화했다. 더디지만 나아지고 있었다. 병가 기간이 끝나며 퇴사를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의료진은 병으로 인해 일상을 완전히 바꾸는 걸 권하지 않는 입장이다. 워낙 활동적으로 일해온 사람이니까, 일하면서 활력을 얻는 것도 좋을 거라는 의견이었다. 나는 회사에 복귀했고, 업무와 치료를 병행했다. 주 1회 통원 치료로 바꾸었다가, 2주에 1회, 3주에 1회로 점점 간격을 벌리다 어느 순간 진료를 받지 않게 되었다.

최근 2년 동안은 진료를 받지 않았으니 이제 나았다고 볼 수 있다. 예후가 좋았다. 좋은 의료진을 만났고 석 달을 쉴 수 있었던 것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자의는 아니었으나 어느새 ‘대상포진 홍보대사’가 되어 있었다. 선배며 후배며 스태프들이 대상포진에 걸리면 ‘허윤선 사례’가 당장 언급되었다. 나처럼 고생하느니 지금 당장 쉬어야 하는 게 맞는 것이었다. 나 역시 누가 대상포진에 걸렸다고 하면 ‘무조건 1주일’을 강조했다. 재택 근무도, 전화 근무도 안 된다고. 또한 대상포진은 재발할 수 있는 병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잊으려고 노력한다. 과로를 하더라도 영양 공급은 챙기고, 고용량 비타민을 꾸준히 복용한다. 그러다가도 문득 몸 어딘가가 따갑다고 느껴진다면 그곳이 어디든 나는 당장 화장실에 가서 옷을 벗어 확인한다. 띠 모양의 발진이 생긴 건 아닐까? 지금도 아무것도 없는 피부를 확인하며 가슴을 쓸어 내리곤 한다. 겨울과 여름은 특히 대상포진에 걸리기 쉬운 계절이다. 기억해두길. 만약 당신이 대상포진에 걸린 것 같다면 당장 약을 먹어야 하고, 이후에는 삼시세끼를 챙겨 먹으며 가만히 쉬어야 한다. 당신이 손에 들 수 있는 건 오직 TV 리모컨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