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리스(Green Lease)’를 통해 모두가 ‘윈윈’하는 아름다운 부티크를 건설하는 패션 하우스들. 

생 로랑은 아틀리에, 오피스, 매장에서 소비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에서 생산한다. 전 세계 매장 중 29곳이 리드 플래티넘 등급을 획득했다.

올해 약 300개 매장이 친환경 건축물 인증제인 리드를 획득하겠다고 약속한 프라다. 매장마다 배치된 FGB(Future Green Building) 스튜디오 모니터를 통해 에너지, 물, 폐기물을 관리하고 추적한다.

보테가 베네타 본사가 들어설 이탈리아 밀란의 팔라초 산 페델레 건물.

그린 리스란? 

세컨핸드 패션을 즐겨 찾는 것이야말로 의류 산업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줄일 최선의 방법이라 입을 모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직접 매장에 방문해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새 옷을 가장 먼저 품에 안는, 신상 쇼핑 타임을 절대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 대신 지구를 생각한 소재로 만들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공정거래를 거쳐, 오래도록 곁에 둘 제품인지 골똘히 고민하는 습관을 탑재하기로 했다. ‘그린 리스(Green Lease)’도 봄맞이 기분 전환용 쇼핑 아이템을 고르기 위해 이것저것 살피다 처음 마주하게 된 개념. 말 그대로 ESG를 기반으로 한 부동산 거래다. 즉 건물주와 건물 이용자가 표준 임대차 약관이나 조항 외에 지속가능한 운용을 독려해 자연환경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거다.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40%가 부동산에서 기인한다니 부동산 소유자와 점유자가 기후변화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이는 방법을 찾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인지도 모른다. 알고 보면 그린 리스는 10여 년 전부터 의식 있는 기업과 단체에선 아주 중요하게 연구하던 조항 중 하나로 꼽힌다. 쾌적하고 널찍한 공간에서 예술 작품처럼 디스플레이된 패션 아이템을 고르는, 내가 아주 소중히 여기는, 그 순간도 그린 리스 절차를 밟았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안심이 된달까. 

 

지속가능한 패션 스토어 

온라인 쇼핑이 예전보다 간편해지고 총알 배송까지 제공하는 요즘이지만, 많은 하우스가 여전히 멋스러운 플래그십 스토어, 매장 인테리어를 고집한다. 방대한 헤리티지와 확고한 정체성을 가질수록 더욱이 그렇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패션업계도 2050년까지 실질적인 탄소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넷제로(Net-Zero)’를 목표로 삼은 시점에 플래그십 스토어와 매장, 오피스 그리고 공장까지 건물주와 협력해 결실을 맺는 그린 리스는 매우 필요하다. 최근에는 일반적인 임대 조건과 함께 ‘서스테이너블 체크리스트’가 더해지는 추세. 첫 삽부터 건물 운영의 효율성, 재생에너지 사용, 재활용 및 폐기물 처리, 실내 환경 품질, 물 관리 같은 환경 관련 사항을 임대 계약에 반영해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LVMH는 2016년에 ‘라이프인스토어(Life in Stores)’ 프로그램을 창설하고 임대 개발, 리노베이션, 운영 그리고 행사 진행에 걸친 서스테이너블 가이드라인을 확립했다. 또 건축가, 비주얼 머천다이저, 소싱 관리자가 에너지 절약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전문 지식을 스스로 습득하도록 무료 온라인 교육을 제공하며, ‘와우’ 포인트가 있는 창의적인 시도를 한 이들에겐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어워드를 통해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게 돕는다.

여기서 더 나아가 2022년 하반기부터는 각국의 부동산 기업과 직접적인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시작은 ‘지속가능성’과 ‘기후 행동’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 최초의 파트너십이라 평가받는 항룽 프로퍼티스(Hang Lung Properties)와의 협약. 중화권의 가장 큰 부동산 개발업체이자 상해 플라자66 같은 대규모 쇼핑몰을 여럿 보유한 곳으로, 2025년까지 에너지 소비를 18% 줄이고 전체 소싱 규모의 70%를 반경 500km 이내에서 조달하며, 직원과 고객의 건강까지 생각해 모든 매장에 공기 품질 센서 설치를 약속했다. 1년간의 결과가 유효했던 것일까. 지난 연말에는 아랍에미리트 상위 5개 지역의 부동산 개발업체와 마이애미 디자인 디스트릭트(MDD) 쇼핑몰과의 파트너십을 추가로 맺었다. 이 혁신적 제휴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공동의 약속을 중심으로 단결되어 있음을 잘 보여준다. 

 

1 자체 기후 전략 프로그램 ‘샤넬 미션 1.5°’ 프로젝트에 따라 건설 및 리모델링할 때마다 리드 등급 인증을 추구하는 샤넬 하우스.
2 이탈리아 펜디 팩토리는 2023년 리드 플래티넘 등급을 획득한 최초의 가죽 제품 공장이다. 7헥타르(약 7만 m²)의 녹지로 둘러싸인 이곳은 장인과 지구를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설계했다.
3 밀란에 위치한 페라가모의 팔라초 카르카솔라 그란디 매장은 유럽에 오픈한 다른 부티크와 마찬가지로 재생 가능한 에너지만 사용한다. 또한 제품의 생산 현장에서 회수한 자투리 가죽으로 만든 디스플레이 가구도 배치해 주목된다.
4 구찌는 낮은 에너지 소비를 보장하고 오래 지속되는 LED 조명으로 교체를 추진하고 있으며, 현재 전체 매장의 약 90%가 LED 조명을 사용 중이다.

그린 리스의 시너지 효과

2023년 이탈리아 밀란 부동산에 대한 투자는 20억 유로(약 2조8800억원)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전년 대비 60% 감소했다. 그럼에도 1872년에 지은 팔라초 산 페델레(Palazzo San Fedele)는 작업 공간을 현대화하고 지속가능성 자격 증명을 향상시키는 리모델링을 거친 후 밀란 역대 최대 거래를 달성했다. 2022년 3월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의 데뷔 쇼를 진행한 바로 그곳이다. 보테가 베네타는 팔라초 산 페델레를 12년 임대 계약으로 건물 9층 전체에 걸쳐 글로벌 본사로 사용할 예정. 브랜드의 ‘새로운 시작’을 미래의 본거지로 삼기 위해 리노베이션하던 건물에서 진행함으로써 당시 보테가 베네타가 ‘공사 중’이라는 아이디어를 명확하게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 세계적으로 최악의 공실률을 기록하고 있는 시기에 에너지, 자원 효율성, 내부 환경 품질 측면에서 우수한 성과를 보이는 건물에 부여하는 ‘리드(LEED) 골드’ ‘와이어드 스코어 플래티넘’ 인증을 앞둔 역사적 건물이 경제적으로 높이 환산되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거래에 결정적 역할을 한 부동산 투자 업체 코이마(Coima)의 최고 책임자 가브리엘 본피글리올리는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서스테이너블 개조 공사를 마친 역사적 오피스 매각은 미래 보장형 건물에 대한 임차인과 투자자의 지속적인 수요를 확인시켜줍니다. 이번 인수로 투자자는 18% 이상의 IRR 수익률을 달성했습니다.” 건축 설계사 아스티 아키테티가 주도하는 팔라초 산 페델레 재건축은 건물 본래의 아름다운 뼈대를 보존하면서 지속가능한 모범 사례를 적용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잡았다. 건설 관리에서도 자재와 자원을 책임감 있게 사용하고, 에너지는 태양열 패널과 지열로 현장에서 생산한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을 통해 얻는다.

 

친환경 슬로건을 넘어서

동시대 패션 브랜드는 그동안 차근차근 정립해온 지속가능한 DNA를 다방면으로 실현하기 위해 애쓴다. 건물주가 이러한 니즈에 필요한 인프라나 정책을 갖추지 않는다면 LVMH와 케어링을 비롯한 많은 패션 부티크의 계약을 결코 성사시키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린 리스의 도입은 말처럼 쉽지는 않다. 조항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고 빌딩 에너지 효율 개선에 대한 비용 분담 문제도 간단치 않다. 그럼에도 지속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 그린 리스가 그저 친환경적 슬로건이 아닌 선순환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은 분명하다. 모두가 고성능 건물의 혜택을 누리도록 노력하는 비영리 단체 IMT(Institute of Market Transformation)에 따르면, 그린 리스를 통해 빌딩의 공공 요금을 평방피트당 약 22%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운영비 절감으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것. 친환경적이지 못하게 설계했거나, 낙후한 환경에 놓인 노후한 건물은 건물 자체의 가격이나 임대료 등에서 적잖은 손실을 볼 ‘브라운 디스카운트(Brown Discount)’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친환경 건물에 웃돈이 붙는 ‘그린 프리미엄(Green Premium)’은 자산의 효율뿐 아니라 부티크를 찾는 고객과 임직원의 근무 만족도를 최상으로 이끌 수 있기에 주목된다. 새로움에 대한 갈망, 빛나는 아이디어가 깃든 창조가 없다면 앞으로의 발전도 없다.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명목으로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삶의 만족도를 저하시키고 싶지는 않다. 그 대신 환경에 주는 영향을 상쇄하는 노력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실천한다면 아름다운 내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예쁜 구두 한 켤레를 사는 황홀한 순간에도 알게 모르게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더 많아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