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는 부드러운 살 냄새로, 누구에게는 차가운 쇠 냄새로 발향되는 향수의 비밀은 이소 이 슈퍼(Iso E Super)향료 분자에 있다.

MY SKIN BUT BETTER

오감은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이라지만, 그중 가장 종잡을 수 없는 ‘취향의 끝’은 후각이 아닐까? 누구나 설레는 마음으로 베스트셀러 향수를 시향했다가 실망만 하고 돌아온 경험이 있고, 같은 환경에서 같은 향을 맡아도 제각기 다른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다반사다. 톡 쏘는 향을 좋아하는 시트러스파가 있다면 묵직함을 애정하는 우디파가 있을 거고, 그 옆엔 따스함을 좇는 머스크파가 있으니까. 이런 차이는 명확히 개인적인 것이니 맞고 틀림의 설전이 일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좀 다르다. 향수 마니아 사이에서 떠도는 ‘간택받은 자의 향’ 말이다. 간택받은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향? 언뜻 신비하고 오묘하게 들리지만 향수를 좋아한다면 익숙할지도 모른다. ‘따스하고 포근한 살냄새’로 유명한 향수 중 몇몇이 누군가에게는 ‘차갑고 시린 쇠 냄새’로 느껴져 생긴 별칭이다. 대표적으로 르 라보의 ‘어나더 13 EDP’, 디에스앤더가의 ‘아이 돈 노우 왓 EDP’ 등이 있다. 이들은 각 브랜드에서 베스트셀러로 꼽히며 본연의 살냄새처럼 은은하고 부드럽다는 평이 주를 이루는데, 간혹 코가 얼얼할 만큼 날카로운 향이라는 상반된 후기도 눈에 띈다. 그만큼 사람의 살성에 따라 다르게 발향되기에 구매 전 꼭 착향을 권하기도 한다. 똑같은 향수가 이토록 극단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뭘까?

간택받은 자의 향수에는 공통으로 존재하는 낯선 향료가 있다. 바로 ‘이소 이 슈퍼(Iso E Super)’. ‘어나더 13 EDP’의 베이스 노트, ‘아이 돈 노우 왓 EDP’의 미들 노트에서 이 이름이 보인다. 이소 이 슈퍼는 1970년대 중반 향료 기업인 IFF가 개발한 합성향료 분자로, 향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발견이라는 평을 받으며 지금까지도 조향사가 애정하고 있다. 다른 향료 성분을 강화하고 증폭시키는 능력이 있어 향수 산업에서 널리 사용됐는데, 그 시작은 1988년 디올이 출시한 향수 ‘파렌하이트(Fahrenheit)’가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으면서부터다. 해당 향수에는 이소 이 슈퍼가 25%의 고농도로 함유되어 있었고, 수많은 이들이 이 매혹적인 분자에 빠져들었다. 특히 사용한 사람의 피부에 따라 독특하고 개인화된 향기를 남기는 것으로 주목받았다. 이소 이 슈퍼를 처음 세상에 내놓은 IFF는 “삼나무를 함유해 추상적으로 보송보송한 벨벳 느낌을 내는 방향 물질입니다. 단독으로는 별다른 향을 낼 수 없지만 타 향료와 만났을 때 향수에 충만함과 미묘한 힘을 부여해요. 또 향 성분이 피부에서 발산되도록 도와줍니다”라고 설명한다. 이소 이 슈퍼의 분자 사이즈가 크기 때문에 단독으로 냄새를 맡을 때는 감지하기 어려우나 다른 향료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 이것이 피부에 밀착되면 독특한 화학반응을 일으킨다는 것. 자연스럽게 사용자의 살성과 결합하면서 고유의 향기가 만들어진다.

미국 <얼루어>에서는 이소 이 슈퍼에 대해 ‘아무것도 아니지만 피부 본연의 향기에 적응하고 조화를 이루는 따뜻한 냄새’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소 이 슈퍼만을 100% 담은 단일 분자 향수인 이센트릭 몰리큘스의 ‘뮬리큘 01’도 인기를 얻었는데, 에르메스의 조향사 장 끌로드 엘레나가 이 향수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졌다. “현재 제가 가장 좋아하는 향기인 ‘뮬리큘 01’은 물질 자체만으로 이루어진 미니멀리스트의 걸작이에요. 시향지에 뿌렸을 때는 바로 알코올 냄새가 올라오지만 피부에 닿는 순간 크리미하고 따뜻하면서 섹시하죠.” 결론적으로 이 독특한 물질인 이소 이 슈퍼에게 간택받았다면 르 라보, 디에스앤더가 등의 향수가 본래의 향기인 살냄새로 느껴지겠지만, 피부와의 화학반응에 따라 쇠 냄새, 소독약 냄새로 발향될 수도 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우리 피부 상태가 매일 달라지므로 한 번 간택받았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종종 피부 컨디션에 따라 간택받았다가 차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 이소 이 슈퍼를 함유한 향수에서만큼은 나 자신이 또 다른 향료인 셈이다. 단 한 방울로 다른 향기를 내는 환상적인 힘이 내 피부에 달렸다. 

 

ISO E SUPER PERFUME

르 라보의 어나더 13 EDP 강렬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중독적인 향이다. 100ml 44만원.

에테르의 수퍼 EDP 화학 소재와 천연 향료가 유니크한 조화를 이룬다. 75ml 17만원대.

디에스앤더가의 아이 돈 노우 왓 EDP 살냄새가 떠오르는 따스한 잔향이 돋보인다. 100ml 32만9천원.

옛새의 미드데이쇼크 EDP 살성에 따라 다른 반전의 미학을 보여준다. 50ml 8만8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