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위로는 실로 대단하다. 올 한 해 수고한 나를 위해 어엿한 혼밥의 위로를 곁들인 에디터 4명이 이야기하는 혼밥의 품격. 

TEPPAN 

‘테판’ 하면 떠오르는 분명한 기억이 몇 가지 있다. 화려한 불 쇼, 아름다운 뷰, 기념일을 맞은 이들의 사랑스러운 대화. 3~4년 만에 다시 찾은 테판은 기억 속의 인상과 사뭇 달랐다. 보다 젠틀하고 우아해진 느낌이랄까. 테판에서 런치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벤트와 기념일을 보내는 이들이 많은 디너에 비해 런치는 프라이빗한 분위기에 여유로운 식사와 만남을 즐기는 이가 많았다. 이 점이 분위기가 달라졌다 느끼는 데 일조했지 싶다. 이례적인 혼밥에 운 좋게도 창을 마주 보는 자리를 안내받아 늦가을 맑은 하늘과 울긋불긋 물든 단풍을 바라보며 런치를 즐겼다. 겨울에 눈이 와도 멋질 것 같았다. 메뉴 구성에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분기별로 메뉴가 업데이트돼요.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대표 음식을 재해석한 요리를 선보이죠. 오늘은 가을과 겨울에 제철 재료를 활용한 메뉴를 즐길 수 있죠.“
강원도에서 올라온 실한 대게 살을 정성스레 발라 빵 위에 올린 핑거 푸드와 테판의 시그너처 소스인 들기름 간장에 성게알을 더한 카펠리니는 원고를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맛이 생생하게 느껴질 만큼 인상적이었지만, 서로의 맛을 침범하지 않을 정도로 조화로웠다. 여러 장아찌를 올려 맛에 재미를 더한 랍스터부터 연포탕을 연상시키는 낙지 파피요트, 관자와 이베리코 항정살에 어향 소스를 곁들인 삼합까지. 모두 처음 맛보는 메뉴였지만 한식을 베이스로 해 이질감 없이 맛의 환희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메인 메뉴인 골드 캐비아를 곁들인 금태 요리는 입에 넣자마자 이후 일정에 대한 걱정을 접고 와인을 한 잔 추가할 만큼 황홀하기까지 했다. 훌륭한 요리를 맛보며 원재료가 조리되고 플레이팅되는 과정을 모두 눈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 궁금할 때쯤 센스 있게 치고 들어오는 셰프의 설명까지 곁들여지니 전국을 돌며 미식 여행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대접받는 기분이 이렇게 근사한 일이었던가. 한 해의 고단함과 남은 목표치에 대한 부담이 잠시 잊히는 오롯한 휴식을 만끽했다. 테판에 대한 새롭고 기분 좋은 기억이 하나 더 얹어졌다. 아무래도 다음 예약도 런치로, 응원과 다정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소중한 사람과 함께일 듯하다. – 디지털 에디터 황선미 

ADD 서울 용산구 소월로 322  INSTA @grandhyattseoul 

SPATULA 

매년 돌아오는 연말이지만 올해는 왜 그리 마음이 헛헛한지. 그런 스스로에게 근사한 한 끼를 대접하기로 했다. 알다시피 연말 레스토랑 예약은 번거롭기 짝이 없어 혼자가 편했다. 고려할 사항은 ‘장소’와 ‘메뉴’뿐이었다. 마침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의 식음료 R&D 센터 ‘스패출러 바이 해비치’에서 이탈리아 특산물을 활용한 요리를 선보인다는 소식을 듣고 단번에 행선지를 정했다. 긴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니 거대한 레스토랑이 등장했다. 드넓은 공간, 높은 층고,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클래식 음악, 그리고 오직 나! 기분이 참 묘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급한 김에 혼자 식사를 해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호사스러운 곳에서 그리고 계획적으로 혼밥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두려움과 설렘이 동시에 느껴졌다. 무려 10코스로 촘촘히 구성된 스페셜 메뉴 카드가 테이블에 놓여 있었고, 비트와 자몽을 활용한 아페르티보(식전주)가 제공되었다. 음료를 홀짝이며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봤다. 사색에 잠긴 것도 잠시, 염장한 햄으로 구성한 전채 요리를 시작으로 수프, 해산물 카르파초, 얇은 도우의 로마식 피자, 생면 파스타가 순서대로 서빙되었다.
메인으로 등장한 건 20년 된 발사믹 소스를 얹은 티본스테이크. 칼질 시늉에도 고기가 썰릴 정도로 부드럽다고 표현하면 거짓말일까? 식당엔 접시와 커트러리가 부딪치는 소리, 조용한 발소리 외에는 어떤 소음도 없이 고요했다. 음식을 먹는 순간이 이렇게 경건할 수 있을까? 어지럽던 속세의 복잡한 감정을 잠시 잊고 내면의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다시금 돌이켜보니 고급 레스토랑을 찾은 나는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였다. 값비싼 식사는 누군가와 추억을 쌓고 나누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렴 식사 자체보다는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더 기울였을 수밖에. 메뉴에 대한 담소를 나누며 음식이 입가에 묻지는 않았는지, 먹는 모습이 별로이지는 않을지, 상대방의 기분은 편안한지…. 뭐 그런 것들에 대해 분명 더 마음이 쓰였을 거다. 하지만 혼자만의 식사는 내 감정과 상태에만 집중하게 되더라. 온몸의 감각을 동원해 음식을 맛보고, 섬세하게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누가 뭐래도 이 순간의 주인공은 나였다. – 뷰티 에디터 김민지

ADD 서울 강남구 언주로164길 15-8  INSTA @haevichidining

EATANIC GARDEN 

생일이 있는 11월에는 스스로에게 멋진 식사를 사주고는 한다. 친구, 동료와 함께하는 시끌벅적한 파티도 좋지만, 조용히 나와 미뤄둔 대화를 하기에는 ‘혼밥’만 한 게 없다. 몇 년간 스시 오마카세를 즐겼는데, 특유의 ‘단골 문화’ 때문에 불편하기도 하던 터라 이번엔 조선팰리스의 이노베이티브 퀴진 레스토랑 ‘이타닉 가든’을 찾았다. 특별한 날을 위해 ‘미쉐린 1스타’인 이곳을 아껴두었더랬다. 도착하자마자 펼쳐지는 서울의 야경과 이타닉 가든의 인테리어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 말고도 혼자인 여성이 있었다는 것도 덤! “혼자 오는 손님이 많은 편입니다. 미식을 즐기는 분이라 여기고, 저희도 좀 더 신경을 쓰게 되죠.” 이타닉 가든과 라망시크레를 모두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으로 만든 주역 손종원 셰프의 말이다. ‘셰프 테이블’로 불리는 바 좌석은 여느 좌석보다 규모가 넓어 셰프와 다른 손님이 서로에게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한다. 오늘의 메뉴는 ‘가을’. 다음 달부터는 ‘겨울’이 펼쳐질 거다. 계절의 진수가 담긴 코스 12가지를 즐길 때는 소믈리에의 손길이 필수다.

소믈리에가 추천하는 주류 페어링은 와인과 전통주를 넘나드는데, 어느 잔이나 흔하지 않은 것으로 음식과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음식이 나올 때마다 테이블에 작은 일러스트 카드가 장식되며 ‘티저’의 역할을 한다. 처음으로 등장한 ‘햇밤’ 카드 뒤에 햇밤으로 만든 미음이 나오고, ‘주전부리’ 카드 후에는 와인과 곁들이기 좋은 한입 전채 3가지가 나오는 식이다. 음식은 단아한 가운데 패기가 넘친다. 촉촉하게 조리된 능성어에는 송이를 곁들여 가을의 맛이 물씬 나면서도 동서양의 맛이 조화롭다. 곁들임으로 치부되던 보김치가 위풍당당하게 코스의 일부가 되고, 술을 만들고 남은 술지게미로 만든 아이스크림은 고급스러운 단맛을 남기며 혀끝에서 사라진다. 보통 ‘혼밥’ 하면, 어색함을 잊기 위해 스마트폰을 보기 마련이지만, 이타닉 가든에서는 오직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서만 폰을 들었다. 음식과 술을 만끽하고, 저작하는 것만으로도 오감이 채워지는 식사는 오랜만이었다. 잘 만든 음식과 멋진 분위기 속이라면, 다른 요소가 전혀 필요하지 않음을 새삼 느꼈고, 다른 계절이 못 견디게 궁금해졌다. – 피처 디렉터 허윤선 

ADD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231 조선팰리스 36층  INSTA @eatanicgarden 

LEGUME 

예약 시간을 3분쯤 앞두고 아슬아슬하게 ‘레귬’에 도착했다. 평소라면 간단히 때우고 마는 점심이지만, 연말에 몰려오는 조급함은 새로운 모험을 가능하게 한다. 식당에서 혼밥을 할 바에는 포장 후 집에서 안락하게 즐기는 일상을 택해온 내가 레스토랑을 직접 예약하고 혼자 식사를 하는 건 인생 최초의 경험이다. 막상 예약 후에는 혼밥 걱정보다 비건 파인 다이닝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대한 설렘이 가득했다. “어머니께서 채식을 하시는데 늘 외식 장소가 마땅치 않았어요. 완벽한 요리를 위해 버려지는 재료가 많다는 점도 늘 아쉬웠죠.”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스와니예 헤드 셰프 출신인 성시우는 아들로서의 갈증과 셰프로서의 고민을 접시 위에 찬란히 풀어냈다. 문을 연 지 6개월이 좀 넘은 레귬은 100% 비건 요리와 함께 윤리적 소비,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며 순항 중이다. 조리 과정부터 크고 작은 기물까지 친환경적이다. 코스의 시작인 호박씨 요리는 탈곡한 곡식의 껍질로 만든 그릇에 담겨 나왔다. 얇게 썬 무를 나이테 형태로 만든 후 채소 17~18종과 허브를 올린 샐러드는 작은 정원을 연상시켰다.
이 요리에는 비건 캐비아를 별도로 추가할 수 있는데, 식감은 캐비아와 비슷하지만 사실 나무의 씨앗을 활용해 만든 재료다.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콜리플라워로 만든 스테이크. 동물성 기름을 단 한 방울도 넣지 않았는데, 이렇게 리치하고 풍만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채소와 과일 껍질을 모아 오븐에 굽고 농축해 만든 소스, 나물의 잎을 소금과 함께 코쇼로 만드는 등 제로웨이스트를 위한 실천이 아름답고 맛있게 구현됐다. 혼자 먹는 식사는 음식의 집중도를 높였다. 채소의 다채로운 식감, 육즙만큼 맛있는 채즙의 풍미는 혀에 긴밀히 닿았다. 음식의 탄생 과정을 듣고, 보고, 맛보고 음미하는 일련의 과정은 몸과 정신이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히 올해의 경험이라 할 만큼 짜릿한 즐거움이 밀려왔다. 문득 식사라는 단순한 행동에 이토록 몰두해본 게 언제였던가? 더 건강하게, 더 착한 방향으로 향하는 여정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이 고갈된 에너지를 채웠다. 고작 한 끼였을 뿐이지만 열렬한 응원을 받은 듯 충만한 에너지로 다음 취재를 위해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 피처 에디터 김정현

ADD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 652 지상2층 207-2호  INSTA @legume.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