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일, 40시간 이상을 사무실에서 보내는 직장인은 지속가능한 회사 생활을 하고 있을까? 직장 생활을 건강하게 영위하기 위해 태세 전환하는 요즘 분위기.

100세 시대에 직업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하나의 직업으로는 부족해 퇴근 후 부업을 하거나 투잡을 뛰는 ‘N잡러’도 여럿 있다. 자영업자나 프리랜서가 아닌 이상 내키지 않아도 주 5일, 최소 40시간은 일해야 한다. 어릴 때 학교나 학원에 가기 싫으면 꾀병을 부리던 수법도 통하지 않는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길 수밖에. MBC 예능 프로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김대호 아나운서는 여가 시간 보장을 위해 퇴근 시간이 되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땅만 쳐다보며 빠르게 회사를 빠져나온다는데, 즐겁고 건강한 회사 생활을 하는 방법은 여전히 나 스스로 찾아야 하는 걸까? 

직장인의 건강 상태에 관한 통계에 따르면, 국내 직장인 10명 중 7명은 입사 후 안구 질환과 만성 피로, 체력 저하 등의 건강 이상을 경험하고 있으며, 연차가 높아짐에 따라 정도가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건강 이상이 발생하는 이유로 운동량 부족, 사무실 근무 환경, 업무 강도와 실적 압박 등을 꼽았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기업은 인센티브 지급, 연봉 인상, 간식비와 식사비 지원 등 ‘물질적 보상’을 복지로 내세웠다. 하지만 기업 웰니스 플랫폼 ‘달램’의 김성현 운영이사는 “최근 기업이 물질적 보상에서 벗어나 구성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관점을 바꾸고 있다”고 했다.

실제 기업을 대상으로 스트레칭과 명상 프로그램 ‘달램핏’, 심리 상담 프로그램 ‘마음달램’, 여러 지역과 연계된 ‘웰니스 워케이션’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달램의 고객사는 그 수가 작년 대비 약 4배 증가했다. 삼성, 포스코, GS 등 300여 기업이 평균 2.7년 이상 달램을 이용 중이다. 이 외에 한화생명은 지난 1월부터 직원 전용 체력 단련 공간과 책 10만여 권을 갖춘 직원용 도서관을 조성했다. 삼성화재는 임직원과 가족을 대상으로 요가와 독서를 즐기는 웰니스 프로그램 ‘힐링 북스테이’를 진행했다. 주 4.5일제를 도입했던 CJ ENM은 월 2회 금요일마다 전일 외부 활동을 하는 ‘비아이플러스 데이’로 기존 제도를 개편했다. 실제로 며칠 전 CJ ENM에 재직 중인 친구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는 꺼진 모니터 사진과 함께 ‘퇴근 시간 맞춰 꺼지는 컴퓨터. 너무 좋아’라는 글이 올라왔다.

김성현 운영이사는 기업의 웰니스 프로그램 도입 증가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개인의 웰니스를 놓치면 이는 곧 기업 생산성과 효율성을 저해할 뿐 아니라 기업의 인재 밀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 구성원이 입사 후 1년 이내 퇴사하면 그 사람에게 지출된 비용보다 기업이 평균 2~3배의 손해를 본다고 해요. 기업이 임직원의 건강 문제 해결을 더 이상 비용 지출이 아닌 리스크 감소와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적 투자의 일환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거죠.” 통계청에서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청년층의 첫 직장 근속 기간은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청년층 10명 중 7명이 입사 1년여 만에 퇴사한다. 기업은 MZ세대의 퇴사율을 낮추고 운영 효율을 높이고자 회사 생활을 즐겁게 영위할 수 있는 독특한 사내 복지와 웰니스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직원 평균 연령이 만 29세인 뷰티테크 기업 에이피알은 휴가 셀프 승인 제도를 통해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미리 예약만 한다면 근무 시간 안에 30분간 사내 헬스키퍼에게 마사지를 받을 수도 있다. 비혼을 지향하는 직원을 위한 복지도 있다. LGU+는 ‘비혼지원금’을 신설해 결혼하지 않기로 선언한 직원에게 기본급 100%에 달하는 축하금과 유급 휴가 5일을 제공한다. 이는 기존 결혼 축하금 제도와 똑같은 혜택이다. 지난 1월, 40대 남성 직원이 처음으로 비혼을 선언하며 첫 번째 지원금을 수령했다. 모바일 금융 서비스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직장인 사이에서 최상급 복지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사내 커뮤니티 팀에 소속된 커뮤니티 매니저(CM)와 커뮤니티 파트너(CP)는 직원이 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여행 계획을 대신 짜주거나, 소개팅 장소를 정해주거나, 병원을 찾아주거나 선물을 포장해주는 등 생활 전반을 서포트한다.

건강에 대한 깊은 인식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한 미국 웰니스 시장에서 영감을 받은 김성현 운영이사와 신재욱 대표는 미국의 시장 규모, 시장 성숙도 등을 이렇게 분석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구글, MS, 메타,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의 복지를 살펴보면 자체적으로 웰니스 센터를 구축하고 담당 전문가가 상주하고 있습니다. 웰니스에 대한 인식도 달랐어요. 의료 시스템이 잘 갖춰진 한국은 질병 치료에 집중하는 반면 외국은 복잡하고 비싼 의료 체계 탓에 사전 예방과 사후 관리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더라고요.” 연세대학교 윤용진 교수팀이 <한국체육과학회지>에 게재한 논문에는 “직장인의 운동 참여는 긍정적인 자아 존중감을 형성해 개인의 삶에 대한 웰빙 지수를 높일 뿐 아니라 건강한 조직을 만들어갈 원동력으로 작용해 건강한 사회 형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실려 있다.

지속가능한 조직과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개인의 노력은 물론 기업이나 사회의 제도적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돈과 시간을 들여 퇴근 후 취미 활동을 하고 주말마다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지만, 삶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의 근무 시간이 즐겁고 편안하다면 근무 시간이 그저 노동 그 자체에 머무르지는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