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기에 아픈 이들의 마음은 더 쉽게 지치고 깨지기 쉽다. 그 마음을 다독일 방법은 무엇일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요즘 예능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리는 유행어지만, 이런 마음을 지닌 사람은 결코 흔하지 않다. 자가면역질환 루푸스를 잘 이겨냈다고 자부하며 ‘괜찮아! 지병 하나쯤은!’이라는 기사도 쓴 나다. 그 원고의 마지막 문장은 “이 또한 이겨낼 수 있을 거다. 내 마음만 무너지지 않는다면”이었다. <얼루어> 독자와 스스로에게 하는 굳은 다짐이었지만, 그 후로 내 마음은 때로는 작게, 때로는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릴 만큼 크게 무너지곤 했다. 그리고 줄곧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다. 다시 마음을 바로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마인드랩공간의 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만나 이에 관해 물었다.

Q 스트레스와 질병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어떤 성격, 어떤 MBTI 유형의 사람이 질병에 가장 취약할까?
A
정신의학 중에서도 몸과 마음의 연관성을 연구하는 분야를 정신신체의학이라고 한다. 전통적으로 A형 성격 유형, 여기서의 A형 성격 유형은 혈액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눈치를 많이 보고 맞추려 애쓰고 강박적으로 긴장하는 성격을 일컫는다. 이런 사람은 실제로 심혈관계 질환 발생 위험도가 높다. MBTI를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게 따지고 보면 I에 J가 붙은 유형이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에 취약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성격 유형이 질병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건 기본적으로 우리 몸은 긴장하면 교감신경이 항진되고, 이 교감신경이 공황증상을 유발하기 쉽기 때문이다. 또 스트레스 호르몬이라 불리는 코르티솔(부신피질호르몬) 분비가 늘어난다. 코르티솔은 면역체계를 흔들 수 있어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거다. 

Q 대표적인 마음의 병, 우울증을 자각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 가 있을까?
A
우울장애와 불안장애가 대표적인 마음의 병이다. 또 공황과 강박이 대표적인 불안장애다. 정신과 영역에서 질병인지를 판단할 때 중요하게 보는 건 ‘인사이트’가 있는가다. ‘본인이 이 증상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 스스로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병원도 찾고 치료도 받게 된다. 우울증, 공황장애, 강박의 체크리스트는 각각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는 본인이 일상생활, 대인 관계, 직장 생활 등에 지장을 느끼느냐는 것이다. 일상에서 불편하지 않다면 조현병일지라도 치료받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주변인이 불편함을 느끼고 그 고통을 호소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자신뿐 아니라 외부의 인식도 깊이 성찰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Q 우울증이나 다른 정신 질환이 없는데도 상담하러 오는 분들이 있나?
A
가벼운 우울감, 연인과의 이별 같은 것들로 병원을 찾기도 한다. 예전에는 그런 사람을 쫓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의 정신과는 치료의 영역이 바뀌었다. 트렌드가 달라진 거다. 약물로 병을 치료하기도 하지만 상담도 한다. 상담을 중심으로 하는 병원이 오히려 많다. 조언을 구하고 정신 건강을 체크받는 거다.

Q 마음이 건강한 사람도 질병을 인지하는 동시에 무너지기도 한다. 질병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억울함’과 ‘두려움’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A 고전적인 영역에서의 질병, 트라우마 상황을 받아들이는 심리적인 반응이 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퀴블러로스가 이야기한 절망적인 상황을 받아들이는 5단계인데, 과거에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도 했다. 가장 먼저 ‘부인’이다. ‘아닐 거야’ ‘다시 큰 병원에 가봐야 해’ ‘내게 이런 일이 생길 수는 없어’ 등의 생각 말이다. 그다음은 ‘분노’다. 화가 나는 거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난 열심히 착하게 살았는데’ 등이다. 그 후엔 ‘협상’이다. ‘혹시 내가 지금부터 교회에 다니면 괜찮을까?’ ‘봉사를 하면 될까?’ 같은 생각. 그런 다음에는 ‘우울’이 온다. 그리고 그 우울이 지나면 ‘인정’, 그제야 받아들이게 되는 거다. 사람에 따라 이런 단계가 섞여서 나타나기도 하고, 후진하기도 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은 보통 암 환자다. 그들의 반응은 대체로 불안에 가깝다. 이 질병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기 때문. 치료가 성공적일지,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병원을 여러 군데 다니기도 하고, 병을 회피하기도 한다. 하지만 암을 받아들이고, 어느 정도 명확한 치료 계획을 세우면 불안은 줄고 우울로 넘어간다.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라는 반응은 우울보다는 불안에 가깝다. 또 환자의 특징이 있는데, 한 번쯤 꼭 병이 생긴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청소년기의 흡연이나 음주, 직장 스트레스, 배우자와의 관계를 탓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모든 질병은 그저 ‘랜덤’이라 말하고 싶다. 특정 유전자를 가진 경우가 아니라면, 암과 질병 대부분은 랜덤이다. 질병의 원인을 찾으려는 것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일 뿐 치료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대부분 질병 발생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우울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질병 자체의 생물학적 요인과 질병을 치료하는 약 때문에 우울이 생기기도 한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대표적 약물은 스테로이드다. 스테로이드는 감정 기복과 불안, 우울 등을 유발한다. 더불어 신체에 큰 고통을 주는 질병이라면 우울감과 무기력이 동반되는 건 당연하다. 

Q 통증이 심할 때는 정신과적 치료를 동반하는 것이 실제 질병 치료에도 더 효과적인가?
A 통증이 심하면 삶의 질이 떨어지고, 우울할 수밖에 없다. 통증의 원인을 모르는 경우엔 더 불안할 것이다. 또 다른 질병이 잠재되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정서가 불안정하면 신체 감각의 감수성이 커진다. 대표적 예가 공황 증상이다. 기본적으로 교감신경이 항진되면 심폐 기능이 항진되어 두근두근하고 호흡이 가빠지고, 근육도 굳으면서 통증을 유발한다. 또 신경계도 항진시킨다. 교감신경은 위기 상황에 우리 몸이 대처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청각과 시각, 신체의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만든다. 평소엔 무시하고 지나칠 수 있는 감각이 과하게 살아나는 거다.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는 작은 소리도 신경에 거슬리지 않나. 그렇게 통증에 대한 감각도 커지는 거다. 우울증 약을 복용했을 때 통증이 감소된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입증되었다.
우울증 약의 기전은 우리 몸에서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을 높인다. 세로토닌은 마음에 여유를 갖게 도와 동일한 스트레스나 통증에 대한 방어력을 키워준다. 반면 노르에피네프린은 척수신경에서 신경 감각을 감지할 때 작용하는 호르몬으로, 예민도를 떨어지게 한다. SNRI 계열의 항우울제가 이런 효과가 있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약물을 내과나 정형외과에서도 흔히 사용한다. 통증 감소 효과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Q 투병 후 일상 복귀가 쉽지 않은 상황도 우울감의 원인일 것이다. 또 재발이나 질병 악화가 두려워 매일 불안 속에서 살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마음 치료를 받아야 할까?
A 환자 개인의 상담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사회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신체적인 질병 때문에 개인의 역량이 다소 떨어지고 들쑥날쑥하더라도 그 상황을 직장이나 사회에서 이해하고 끊임없이 기회를 줘야 한다. 암이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암에 걸리면 주변에서 일하는 걸 말렸다. 암의 발병률도 낮았지만 암이 주는 신체적인 타격이 훨씬 컸다. 심각한 후유장애나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인식이 달라졌다. 일단 암의 경험률이 높아졌다. 기대수명을 산다는 가정하에 일생 암을 경험할 확률이 38%다. 가까운 일본은 50%가 넘는다. 한국의 기대수명은 80대 중반이다. 확률이 높아진 이유는 조기 발견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인구의 약 40%가 암 때문에 일할 수 없다고 하면 사회적인 손실은 엄청날 것이다. 요즘 암 치료의 목적은 완치를 넘어 일상적인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한 몸이다. 암 치료가 재정립되고 있는 만큼 사회가 암 환자를 바라보는 시각도 변화해야 한다. 

항암 치료 이후에는 머리에 안개가 낀 것 같은 케모브레인 현상을 느낄 수 있다. 자가면역질환도 마찬가지다. 집중도 어렵고 예전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 그런 질병 후의 불편과 재발에 대한 불안, 잠재적인 환자로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 등은 결국 스스로 뚫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때로는 회피하고, 때로는 건강을 위해 도망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와 지금의 고민을 나눠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Here & Now’다. 눈앞의, 당장 내게 닥친 현재의 고민을 나눠야 한다는 거다. 먼 미래에 생길지도 모르는 일로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이미 지나간 상황에 대해 정서적으로 위축되는 것 역시 좋지 않다. 현 상황에서 내게 당면한 문제나 갈등, 불안을 상의하길 바란다. 

Q 질병 후 마음이 아파 선생님을 찾았는데, 지금은 그 누구보다 단단한 마음을 갖게 된 환자가 있는가? 상담을 통한 성장 사례가 궁금하다.
A 누구나 다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경험하면서 산다. 하지만 트라우마 때문에 인생이 피폐해지기만 하지는 않는다. ‘외상 후 성장’이라는 표현이 있다. 삶의 절망을 경험한 후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경험 때문에 한층 다른 차원의 삶을 살게 된 것. 그 배경이 될 수 있는 건 ‘회복 탄력성’이다.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성장 과정에서 만들어진 안정적인 애착, 즉 엄마는 지금 내 눈앞에 없지만 나를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면 외상 후 새로운 희망, 가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거다. 삶을 이겨낸 사람은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이 있다. 그 이야기는 어떤 영화보다 울림이 깊다. 그런 이들을 상담할 때는 내가 오히려 배우는 것이 많다. 

Q 마음과 몸이 연결되었다는 신념이 있다고?
A 내 신념이 아니다. 마음과 몸의 연결은 과학적인 사실에 가깝다. 정서적인 영향은 내분비, 수면, 면역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암도 발생시킬 수 있다. 정신신경내분비면역학이 이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Q 우울장애나 불안장애가 아니어도 몸이 힘들어서, 질병 때문에, 상사 때문에 직장 생활이 버겁다고 느끼는 사람도 정신과적 상담이 도움이 될까?
A 상담이 해결책은 아니다. 상담은 어디까지나 같이 상의하는 거다. 스스로를 객관화하지 못할 때 정신과 의사라는 거울을 통해 나를 비춰 보는 것. 지금 처한 환경이 정신적·신체적으로 얼마나 큰 부담을 주는지, 아니면 너무 과도하게 해석하지는 않는지를. 그 후에 상황을 헤쳐나갈 방안을 같이 고민하는 거다. 궁극적으로 선택은 본인의 것이다. 예전에는 정서나 신체에 문제가 생기면 퇴사나 업종 변경 등의 조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좀 생각해봐야 하는 부분이다.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쌓아온 노력과 성취해온 것이 있고, 이것들이 모여 정체성이 되기도 하니까. 반대로 직장 생활이나 일이 개인의 정체성을 훼손할 때도 있다. 상사의 괴롭힘 같은 것 말이다. 그럼에도 내 삶의 방향이 직업과 일치한다면 일과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면서 버텨내는 것이 옳다. 약의 도움을 받는 것도 괜찮다. 일단 힘든 상황을 잘 지나기 위해 약을 쓰는 거고, 상황이 달라지면 약은 끊으면 된다. 

Q 환자에게 명상을 추천하는 편인가?
A 물론 도움이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명상이 일상 스트레스 관리에 탁월하게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명상은 생각을 비우는 거다. 불필요한 생각, 잡념, 불안, 끼어드는 생각을 떨쳐버리는 거다. 명상하는 동안은 비울 수 있을지 몰라도 일상을 시작하면 또다시 그 생각이 다시 머리를 채우고 만다. 현실적으로 여유가 많아서 오랜 시간 명상하며 보내면 좋겠지만,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은가. 특히 우울장애가 의심될 정도로 힘들다면 명상보다는 신뢰할 수 있는 지인이나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

불안은 대부분 미래를 생각하는 데서 온다고 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스트레스와 무의미한 대화는 버리고, 지금 내 앞에 선명히 보이는 문제 해결을 위한 도움을 받아야 한다. ‘Here & Now’ 이광민 원장과의 대화 끝에 내게 남은 것이다. 상담 같던 그와의 인터뷰가 질병 때문에 혹은 마음 관리가 힘들었던 누군가에게 작은 울림으로 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