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 맛을 보고 나서야 고쳐진다는 그 단발병이 다시 도졌다. 수식만 갈아 끼울 뿐, 결국엔 모두 단발로 귀결되는 2023년 헤어 트렌드. 

SNS가 문제다. 아니 내 직업이 문제인 걸까? 각종 뷰티 트렌드를 파악하려고 숨 쉬듯 들르는 그곳에서 요즘 핫한 셀럽의 사진을 탐닉한다. 가끔은 ‘와, 이 머리 진짜 예쁘다’라는 탄식이 절로 나는 개인 취향 저격 뷰티 룩도 마주한다. 그렇게 휴대폰 속 그 셀럽의 ‘머리’가 자꾸 떠오르고, 비슷한 머리를 계속 검색하다 보면 병이 시작되는 거다. 가위 맛을 보고 나서야 고쳐진다는 그 단발병이. 

올해는 유난히 셀럽의 단발머리 이슈가 많았다. 연초부터 글로벌 헤어 트렌드로 예견되기는 했다. 미우미우, 프라다, 샤넬, 셀린느 등 럭셔리 하우스의 캠페인에 등장한 모델도 모두 단발 일색. 하지만 대중의 마음을 흔든 건 역시나 단발로 무장한 국내 여배우와 아이돌이다. 태연, 아이유, 아이브 안유진, 에스파 카리나와 윈터, 트와이스 모모와 나연, (여자)아이들 미연, 레드벨벳 웬디, 르세라핌 채원, 배우 고민시와 박규영 등. 올해의 단발병 유발러는 모두 나열하기 힘들 정도. 계절을 타지도 않았다. 봄에는 ‘봄바람 타고 온 산뜻한 단발’. 여름에는 ‘휴가지에서 돋보이는 상큼한 단발’, 가을이 되니 ‘올드 머니 룩에도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중단발’이 활보한다. 수식만 갈아 끼울 뿐 2023년 헤어 트렌드는 결국 단발로 귀결된다. 

이 트렌드가 이토록 길게 지속될 수 있는 건 단발은 어떤 길이보다 다채로운 스타일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민시 단발로 대표되는 일명 ‘칼단발’ 태슬컷, 카리나와 아이유의 쇄골까지 닿는 중단발, 원터와 채원의 뱅과 함께 연출한 레이어드 단발 등 길이와 층의 정도, 앞머리 유무에 따라 여러 갈래와 이름의 단발로 나뉜다. 특히 레이어드 단발은 조금만 손질을 달리해도 분위기가 확 달라져 대중은 물론 셀럽도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윈터의 단발은 쇄골까지 내려오는 원렝스에 볼륨만을 위한 레이어드를 넣은 커트예요. 앞가르마에 어깨선을 살짝 뻗치게 하면 보이시한 매력을 풍기고, 옆가르마를 타면서 볼륨을 풍성하게 하면 사랑스러운 소녀의 이미지를 살릴 수 있어요.” 윈터의 헤어스타일을 책임지는 키츠 대표 원장의 윤서하가 말한다. 그에 따르면 최근엔 쇼트 단발 레이어드가 대세라고 한다. 상반기엔 중단발 길이가, 하반기엔 쇼트커트와 단발 사이의 더 짧은 길이를 선호하는 흐름이 있었는데, 올겨울엔 이보다 길이가 더 짧아진 쇼트 단발이 자주 눈에 띌 거란다. 바로 어제 SNS에서 본 <더팩트 뮤직 어워즈>에 참석한 배우 이유미의 헤어스타일이 떠올랐다. 

이렇게 하나쯤은 입맛에 맞는, 또 분위기 변화가 자유로운 단발이 유행하다 보니 미용실이 북적일 수밖에. 몇십만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보유한 단발 컨설팅 전문 숍 스타 원장님들은 예약 구좌(유명한 숍은 수시 예약도 불가하다)가 오픈됐다 하면 순식간에 풀 부킹이 된다. 값비싼 비용도 단발병 환자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준비물은 오직 가위와 원장님의 손인 ‘커트’일 뿐인데도, 이렇게 큰 지출도 서슴지 않는 이유는 커팅이야말로 헤어 디자이너의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술이기 때문일 터. 펌 시술이 필요한 경우 때로는 단발로 인한 지출이 어엿한 외투 한 벌과 맞먹기도 한다. 생머리여야만 그 매력이 돋보이는 태슬컷은 매직펌이 필수다. 이 밖에 뿌리펌, 모류교정펌, 잔머리펌, 다운펌 등이 있다. 몇 가지 펌을 모아 ‘컨투어링펌’이라고도 한다. 손질하기도 편하고 모발의 방향과 볼륨을 교정해 얼굴을 더욱 작아 보이게 하는 효과를 줘 붙은 이름이라고. 하늘이 내린 금손에게 시술받을 것이 아니라면, 단발은 이런 펌을 병행해야 완성도가 높아진다.

“아무래도 레이어드 단발의 인기죠. 레이어드는 머리카락에 겹겹이 층을 내는 스타일이에요. 성공적인 단발을 위해서는 얼굴형과 모질에 맞는 적절한 레이어드가 중요합니다. 동그란 얼굴은 컬 텍스처를 강조해 얼굴을 갸름해 보이게 연출하고, 긴 얼굴형은 앞머리와 옆머리를 활용해 길어 보이는 걸 보완할 수 있어요. 앞머리는 눈썹보다 짧게 자르기보다는 코 위를 살짝 가릴 정도로 내는 것이 좋아요. 동양인은 옆 두상이 빈약한 탓에 밋밋한 인상을 주기 쉬워요. 그래서 더욱 정교한 커트와 스타일링이 필요합니다.” 김혜수, 전지현, 문가영, 한효주 등 국내 톱 여배우의 헤어를 책임지는 살롱하츠와 하츠도산의 대표 원장 백흥권의 설명이다. 그의 말처럼 단발 커트는 어떤 시술보다 시술자가 중요하다. 숙련도는 물론, 눈썰미도 좋아야 한다. 체형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 골격이 큰 편이라면 쇼트커트는 피하고 레이어드를 주어 시선을 분산하는 것이 좋다. 살집이 있는 통통족이라면 일자보다는 둥근 커트선이 조화롭고, 너무 마른 체형은 자칫 애매한 단발 길이가 얼굴을 길어 보이게 할 수 있으니, 아주 짧거나 긴 단발 스타일을 추천한다.

‘단발이 잘 어울리는 사람의 특징’ 같은 건 더는 없다. 단발은 모든 얼굴형과 체형에 어울리게 변주되니까. 하지만 단발에 최적화한 모질은 있다고. 가늘면서 약간 반곱슬기가 있는 모발이다. 이런 모질을 가졌다면, 지금 당장 단발 시안을 찾아보길! 이렇게 단발을 예찬하는 에디터의 헤어스타일은 뭐냐고? 물론 단발이다. 그래서 나의 단발병은 이미 치유됐다. 올봄 태슬컷으로 시작해 시스루 뱅의 레이어드 중단발로 여름과 가을을 지나고 있다. 오늘 아침엔 앞머리가 괜스레 빈약해 보여 시스루와 풀 뱅의 중간쯤으로 모량을 늘려 싹둑 잘라냈다. 올겨울엔 다시 머리를 기를 생각이다. 하지만 분명 또 올 거다. 단발병은 원래 주기적으로 걸리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