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시장에서 ‘K’는 정말 프리미엄 라벨일까? 한식이라는 낯선 장르를 세계에 우뚝 세우고 있는 셰프들의 여정을 좇았다. 

 

1 견고한 브랜딩을 거쳐 완성한 솔잎의 인테리어. 2 솔잎의 시그너처 메뉴인 감태 샌드위치. 오픈 초기, 외국인에게 감태라는 식재료를 설명하기 바빴지만 이제는 감태를 먹기 위해 솔잎을 찾는다. 3 솔잎의 공간과 요리는 필요한 핵심만 남기기 위해 덜어내는 과정을 거듭해 완성한 결과다.

| SOLLIP |
CHEF PARK WOONG CHUL & KI BO MEE 

박웅철 셰프와 기보미 파티시에가 운영하는 런던의 레스토랑. 2021년 오픈 이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미쉐린 1스타를 받았다. 영국의 미쉐린 레스토랑 중 한국인 셰프가 운영하는 유일한 공간으로 프렌치 스타일에 창의적인 한식 터치를 가미한다. 

‘솔잎’이라는 이름이 독특하다.
브랜딩 과정은 기보미 파티시에가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한국적인 동시에 우리의 철학을 담을 수 있는 요소를 고민하던 중 소나무가 떠올랐다. 오래전부터 솔잎은 특별히 신경 써서 음식을 마련하는 날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고객을 대하고자 의미를 담았다. 

SNS 피드와 매장, 디시 등 일관된 이미지다. 브랜딩에 오랜 시간을 쏟았나?
이름을 정한 후 식기, 매장 인테리어 등을 촘촘히 준비했다. 비자 발급, 매장 위치 선정 등을 준비하는 동안 브랜딩에 몰두했다. 레스토랑의 콘셉트를 분명히 한 다음 한국 작가를 찾아 그릇과 기물을 공수하고 지양할 것과 지향할 것을 명확히 해뒀다. 

런던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둘의 인연이 런던 요리 학교에서 시작됐다. 결혼 후 신혼 생활도 런던에서 했고. 우리의 공간, 브랜드, 요리를 떠올릴 때 배경은 런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일할 당시 요리에 대한 편견 없는 시각과 다채로운 식재료 등 셰프로서 긍정적인 부분을 목격하기도 했다. 

제주 해비치 호텔에서 커리어를 쌓던 중 런던으로 이주했다. 계기가 있었나?
제주에서의 시간은 편안하고 즐거웠다. 그러다 문득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동시에 오랜 시간 품어온 욕심을 펼쳐보고 싶었다. 원하는 걸 하려면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해 고민 과정이 길지는 않았다. 능력치가 뛰어난 천재 셰프는 아니더라도 음식으로 장난치지 않고 묵묵히 실력을 쌓아왔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프렌치 다이닝을 베이스로 한식 요소를 가미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단순하다. ‘런던에서 매장을 열면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칠까?’를 생각했을 때 외국인의 눈에 우리는 프렌치를 하는 두 명의 아시안일 뿐이다. 런던에는 이미 훌륭한 프렌치 셰프가 많다. 우리의 경쟁력은 결국 문화적 배경이라고 생각했다. 요리의 백그라운드는 파인 다이닝이지만 인생 전반의 배경은 한국이었이니까. 

개인의 문화적 배경이 요리에 반영된다고 믿나?
물론이다. 셰프로서 경험뿐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겪은 모든 경험이 다각도로 반영된다. 

한식적 요소는 어떤 형태로 반영되나?
틀을 정해놓지는 않는다. 한식에서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영감과 식재료를 경계 없이 접목한다. 우리를 향해 ‘크리에이티브하다’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이 모든 건 어딘가에서 내가 습득한 경험과 지식에서 시작된 영감이다. 

2년 전과 오늘, 솔잎의 어떤 점이 발전했다고 느끼나?
좀 더 디테일이 강해지고 깔끔해졌다. 우리만의 아이덴티티가 선명해졌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단골손님에게 한식적 느낌이 강해졌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 아무래도 초창기에 한식적 터치에 조심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어렵거나 낯설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컸다. 고객은 물론 우리의 음식을 고객에게 잘 전달해야 하는 홀 스태프에게 한국 문화가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3년의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교육했다. 매 시즌 새로운 메뉴가 나오면 테이스팅은 물론 원재료를 보여준다. 조리법과 재료를 공부할 수 있도록 노션에 자료를 정리해둔다. 오픈 초기부터 지금까지 모든 자료가 아카이빙되어 있다. 

한국인으로서 외국인에게 요리를 선보이며 사명감을 느끼기도 하나?
예민하게 깨어 있으려고 한다. 누군가는 우리 레스토랑에서 한식을 처음 경험할 수 있는데, 잘못 소개했을 때 한국 음식이나 식재료에 오해가 생길 수 있으니까. 이런 생각이 기저에 있다 보니 정확한 정보나 교육에 더욱 경각심을 갖게 된다. 

솔잎을 운영하며 잊을 수 없었던 경험이 있나?
지난여름 해비치 호텔의 초청으로 갈라 디너를 열었다. 오랜 시간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 든든한 응원과 지원을 받으며 우리의 브랜드를 펼쳐 보일 수 있어서 뭉클했다. 4.5명으로 시작한 3년의 여정을 보상받는 듯했다. 

솔잎에서 펼쳐보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작게는 영국, 넓게는 유럽 전역에 한국 문화를 전파하고 싶다. 사람 냄새 나는 한국 고유의 문화,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우리의 멋을 말이다. 우리 문화와 민족성에 자부심이 크다. 훌륭한 식재료와 작가도 알리고 싶다. 그 첫 번째 프로젝트로 영국에서 활동 중인 이재준 작가의 전시가 11월에 열릴 예정이다. 오너로서 누구나 일하고 싶은 회사로 성장시키고 싶은 욕심도 있다. 

 

1 매장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브랜드 경험이 시작된다. 아토믹스는 작은 공간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다. 2 까다로운 과정을 통해 엄선한 식기. 3 모던한 한식 파인 다이닝을 선보이는 아토믹스의 공간.

| ATOMIX |
CHEF PARK JUNG HYUN 

박정현 셰프는 뉴욕에서 ‘세계 속 한식’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올해 ‘제임스 비어드상’을 수상한 그는 캐주얼 다이닝 아토보이를 시작으로 파인 다이닝 아토믹스를 탄생시키며 뉴욕 미쉐린에서 별 2개를 받았다. 접시 위에 올려진 그의 음식은 미식 이상의 문화적 경험을 제공한다. 

뉴욕 정식의 오픈 멤버로 알려졌다.
처음 뉴욕에 오게 된 계기도 뉴욕 정식에서 일하기 위함이었다. 정식에서 경험을 쌓으며 한식의 엄청난 가능성을 확인했고, 2016년 아토보이를 오픈했다. 2012년까지 외국에서 근무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한식을 공부했다. 

한식의 요소인 반찬을 일종의 시스템으로 활용한 것, 메뉴에 관한 설명이 적힌 카드는 아토보이의 강점이 됐다. 이런 요소를 어떻게 찾았나?
한 나라의 음식은 레시피로 규정할 수 없다. 여러 문화양식을 보여주는 통로라고 생각한다. 문화와 경험으로 접근하고 서로의 생활 양식이나 역사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해야 깊은 이해를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고 자라며 한식을 접하지 않은 사람에게 한식을 선보이는 데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무엇인가?
한식이 선사하는 문화적인 것에 초점을 맞춰 접근한다. 우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은 하나의 디시나 맛을 넘어 경험적 측면이 크다. 유럽이나 호주 등 해외에서 쌓은 경험이 글로벌한 맛의 바탕이 됐다. 

하나의 메뉴가 탄생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
경험을 통해 창조한다.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맛이나 색, 영감을 하나씩 꺼내 적어보고 이것들을 가장 조화롭게 완성하고자 한다. 특정 아티스트나 콘텐츠보다 나의 삶, 경험을 되짚어보고 편집 과정을 거친다. 경험하는 모든 것이 영감이 된다. 

여러 인터뷰를 통해 요리 철학 중 하나로 균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균형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무엇인가?
레스토랑 전반의 경험을 아우른다. 맛은 물론 준비 과정에서의 속도도 영향을 끼친다. 문화를 전달하는 입장에서 수용자에게 과하지 않아야 한다. 온전히 하나의 경험이 어긋남 없이 균형감 있게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나?
여러 피드백을 받지만 우리 레스토랑에서의 경험을 통해 한국에 관심이 생겼다는 말을 들을 때면 감사와 자부심을 느낀다. 한국 여행을 다녀왔다는 분도 있었다. 

뉴욕에서 한식을 펼치는 과정에서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우리만의 한식을 선보이며 여러 사람과 소통한다는 점이 즐겁다. 한국인에게는 각자의 개인적인 한식 경험이 존재해 의견을 나누기 어려운 지점도 이곳에서는 자유롭게 화두를 던질 수 있다. 

반대로 외롭고 힘겨운 순간은 언제인가?
많이 발전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재료 유통에 한계가 있다. 좀 더 다양한 재료가 유통될 수 있다면 한식 레스토랑이 보여줄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올해 뉴욕의 대표 명소인 록펠러 센터에 새로운 레스토랑 나로(Naro)를 오픈했다. 한식의 위상을 실감하나?
11년 전, 처음 뉴욕에 발을 디딘 때와 비교하면 한식을 향한 관심과 발전 가능성은 크게 달라졌다. 요즘 K-타운이라 불리는 32번가에 가면 뉴요커나 유럽, 아시아 등지에서 온 관광객이 많다. 한국 유학생, 주재원 또는 한식이 그리운 관광객이 주요 고객이던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다. 2020년 록펠러 센터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식당가 개편 작업에서 아시안 퀴진으로 일식과 중식이 아닌 한식을 떠올렸다는 것도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다. 

더 개발하고 펼쳐내고 싶은 영역이 있나?
한식이 글로벌 마켓으로 넘어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한식에 필요한 것이 뭔지 심도 있게 고민하는 중이다. 하나의 분야나 영역으로 특정하기보다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내 역할을 고민하는 단계다. 

박정현의 이름으로 펼쳐보고 싶은 활동은 무엇인가?
한식을 더 깊이 공부하고 한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구하고 싶다. 그런 과정이 다음 세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JEJU NOODLE BAR |
CHEF DOUGLAS KIM

재주 누들 바는 미국에서 미쉐린의 별을 받은 유일한 면 요리 전문점이다. 여전히 그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으며 셰프 더글라스 김은 우리에게 익숙한 라면을 모던하고 유쾌하게 풀어낸다. 2017년부터 꾸준하고 성실하게 한식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해외에서 탄탄한 커리어를 일궜다. 한식에 매료된 계기가 있나?
1999년 처음 뉴욕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당시 근무한 레스토랑이 노부(Nobu)다. 미쉐린 3스타를 거머쥔 노부는 당시 예약에만 6개월이 소요됐다. 한번 들어간 요리사도 쉽게 그만두지 않았다. 일식이 세계적으로 익숙한 장르가 된 것에 노부의 역할이 컸을 거라 본다. 이곳에서 일을 시작하고 느낀 게 ‘왜 한식을 이렇게 풀어내는 곳은 없지?’라는 의문이었다. 요리에 대한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뉴욕 요리 학교(CIA)에 진학했다. 당시 정식당의 임정식, 더 그린 테이블의 셰프 김은희와 셰프 김세경, 셰프 송훈도 함께 공부했다. 이후 노부 크루즈에서 일하며 다양한 음식과 재료, 레스토랑을 접하면서 견문을 넓혔다. 

당시 뉴욕에서 한식의 위상은 어땠나?
외국인이 접근할 수 있게 풀어낸 곳은 전무했다. 제대로 된 한식당은 32번가에 있는 설렁탕집 가미옥 정도였다. 매장에는 영어를 잘 못하는 직원도 많아 외국인을 위한 서비스와 편의조차 열악했다. 

퍼세(Per Se), 주마(Zuma) 등 파인 다이닝에서 경력을 쌓고 캐주얼 다이닝을 선보였다. 이유가 있나?
크루즈에서 일하던 중 이탈리아 어느 섬에서 배가 정박했다. 장을 보러 나갔다가 해변 근처의 로컬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성게알 파스타랑 브루스케타, 빵 정도의 단출한 음식이었는데 무척 행복하더라. ‘내 공간을 연다면 굳이 파인 다이닝을 고집할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정확한 타이밍과 맛있는 재료, 좋은 사람들과 분위기가 시너지를 발휘했을 때 이미 나만의 파인 다이닝은 완성된다. 미쉐린 1, 2, 3 레스토랑을 섭렵하며 후회 없이 공부했고, 전반적인 경영도 익혔다. 

한식 중에서도 라면을 전문으로 한다. 왜 라면이어야 했을까?
투자나 파트너 없이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했기에 최대한 빨리 오픈할 수 있는 레스토랑을 생각했다. 그 와중에 뻔하고 식상한 요리는 하고 싶지 않았다. 평소 일본 라멘을 좋아했는데, 한국은 라면을 많이 먹는데 왜 라면집이 없을까 싶었다. 

힘든 순간도 있었나?
많은 준비를 하지 못하고 문을 열었기에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2018년 미쉐린에서 별을 받은 후 환경이 좋아졌다. 재주라는 이름 자체도 도전이었다. 한국인은 한식당을 기대하고 왔지만, 다른 요리를 선보이니 당황해했다. 컴플레인을 참 많이 받았다. 내 목표는 노부 같은 한식당이었기에 우리는 외국인의 입맛에 더 집중했다. 

한식의 요소는 어떤 식으로 반영되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프랑스에 갔을 때 유명하다는 치즈를 먹었는데 내 입에는 역겹더라. 우리가 익숙하고 맛있게 먹어온 것도 외국인의 입에는 어색할 수 있겠다 싶어 외국인을 타깃으로 한국 요리를 선보인다. 

램 자장면, 경양식 커틀릿 등 익숙한 듯 낯선 요리가 재미있다.
다이닝의 색을 확실히 하는 게 중요하다. 외국인의 입맛에 맞춘다고 하면 퓨전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퓨전은 하나의 퀴진과 또 다른 퀴진을 섞는 것이다. 나의 경우 그 바운더리가 없다. 맛있고 좋다고 생각하는 재료를 요리에 활용한다. 

7년 동안 뉴요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비결이 뭔가?
좋은 재료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 PR 대행사를 쓰는 대신 좋은 재료를 사용한다. 내가 먹지 않을 것은 절대 판매하지 않는다. 레스토랑 역시 비즈니스다. 굴러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수익이 나야 한다. 같이 일하는 직원의 노동 환경 역시 중요하다. 셰프로서 자아를 찾거나 애쓰기보다 ‘재주 누들 바’라는 우리 브랜드를 위해 천천히 욕심부리지 않고 성장하려 한다. 

오픈 초기와 현재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초창기에는 일반 라멘집처럼 회전율이 빠른 식당을 표방했다. 현재는 예약제로만 운영하고, 우리의 음식을 좀 더 진지하고 풍부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 주류를 곁들일 수 있고 전채 요리, 메인, 디저트 등 카테고리를 구분했다.

펼쳐보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
한국 음식의 위상이 더 확산되고 높아지기를 바란다. 지금처럼 꾸준히 한다면 10년 뒤에는 한식의 발전에 기여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노부 같은 한식 레스토랑을 만들고 싶다’는 꿈은 나의 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