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STAINABLE LOVE / 임세미
배우 임세미와 <최악의 악> 속 유의정은 모두 사랑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들의 삶은 사랑의 이름으로 지속가능하다.
화보에서만큼은 <최악의 악> 속 의정을 한껏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어요. 남편을 두고 기철(위하준 분)과 왜 저러나 싶다가도, 퍼석퍼석한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저도 처음 모니터링을 하고 화들짝 놀랐어요.(웃음) 의정은 태어난 이후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늘 고군분투했어요. 위계질서가 철저한 경찰 집안에서부터 오빠보다 실력이 뛰어난데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높은 벽을 마주해야 했으니까요. 그 틈에서 옳다고 여기는 것을 찾아가려고 애쓰는데, 그 길은 무척 외롭고 고독했을 거예요. 자신을 꾸미는 시간보다 삶을 진취적으로 이끌어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실존했다면 지금쯤 사회적으로 꽤 괜찮은 선배님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요?
<최악의 악>이 모처럼 등장한 통쾌한 장르물이라 반응이 뜨거워요. 공개 전 우려한 부분도 있었어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 장르라는 이유로 피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다양한 반응 중에서도 긴 설명 없이 ‘재밌다!’라는 짧고 굵은 피드백을 보면 기뻐요.
언더커버, 1990년대, 삼각관계라는 소재가 새롭지는 않죠. 차별점을 둔 부분이 있나요?
복제될까 피하기보다 우리만의 정서와 표현 방법에 집중했어요. 어차피 저희는 그 시절에 있던 사람이 아니잖아요. 과거의 향취를 2023년의 우리가 어떻게 표현할지에 집중했어요. ‘MZ스러운 누아르’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가장 좋아하는 신은 뭔가요?
기철과 의정, 준모(지창욱 분)와 해련(김형서 분)이 만나는 장면요. 사건의 중심에 있는 네 사람이 한 프레임에 담기는데,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궁금했어요. 네 사람의 감정이 한껏 휘몰아치는 순간이에요. 시청자에게도 그날 펼쳐지는 의정의 하루가 인상적일 거예요.
의정은 기철과 준모 사이에서 혼돈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에요. 모두가 감정을 폭발시킬 때, 의정은 꾹꾹 인내하고 응축해요. 그는 어떤 사람이에요?
현장에서도 팽팽한 의견 대립이 있었어요. 경찰로서 사건을 수사하고 싶다는 욕심과 남편을 지키겠다는 일차원적인 마음으로 뛰어들었지만 과거를 마주하며 여러 감정에 휩싸여요.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 없는 의정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심장 떨리고 흥미롭더라고요.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고요. 막상 촬영이 시작된 후, 글로 읽었을 때 상상하지도 못한 다양한 감정이 파생되면서 환장과 혼란의 연속이었어요. 기철과 식사 장면에서 이건 데이트일까? 수사일까? 지금 의정은 경찰인가, 준모의 아내인가, 기철의 순수한 시절을 기억하는 첫사랑일까? 배우와 감독, 그 누구도 답을 내릴 수 없었어요.
절대적 선과 악은 있을 수 없는 것처럼요? 문득 인물에 대한 해석이 궁금해지네요.
의정의 혼란을 정리하지 맙시다! 감독님 역시 찰나에 스치는 의정의 감정을 그대로 담자고 하셨고요.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는 말처럼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되는 인물이었어요. 후반부로 갈수록 혼란이 증폭되는데 모든 건 대중의 해석에 맡기기로 했어요.
촬영장에 자주 가서 ‘임 PD’라는 별명을 얻었다면서요. 늘 ‘재미있게 연기하고 싶다’는 말을 해왔는데, 이번 현장에서는 어떤 재미를 찾았나요?
연기 학도처럼 뜨겁고 좋은 열정이 솟구치는 유쾌한 현장이었어요. 액션 신은 한 번 찍으면 3일은 찍는데 저는 액션이 별로 없었어요. 주로 수사본부에만 있어서 강남연합 친구들과 만날 일이 없었고요. ‘다들 고생하는데 한번 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갔는데 영감과 열정이 듬뿍 채워지더라고요. 오경진 역할의 배우 최성혁과 최정배 역의 임성재를 주축으로 스터디를 했어요. 배우 (이)신기, (배)명진 오빠, 차래형 등 강남연합 멤버들과 촬영이 쉬는 날 모여 대사를 주고받고 감정을 공유했어요. 낙수가 바위를 뚫듯, 소소한 재미가 일의 동력이 된다고 믿는데, 촬영 현장은 폭포 같았어요.
일과 일 사이 세상을 향한 관심이 가득해요. 유튜브 콘텐츠 <세미의 절기>를 비롯해 해양 환경단체 시셰퍼드 등에서 활동하고 있죠?
자연, 동물, 인간 등 사랑하는 존재가 많은데, 언젠가 이 모든 게 사라질까 두렵고 무서운 마음이 컸어요. 오래 보고 오래 사랑하고 싶거든요. 동물을 입지 않고 먹지 않고 사용하지 않는 것, 식물의 윤리적 소비를 실천하는 비거니즘의 삶을 지향해요. 그래서 달걀이나 버터, 우유, 해산물 등도 먹지 않고, 완전 식물성 소비를 하는 비건의 삶을 살고 있어요.
얼마나 됐어요?
2019년에 시작했으니 4년이 좀 넘었네요. 10년 정도 페스코 베지테리언의 삶을 살다 커밍아웃했죠.
계기가 있었나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소와 송아지를 마주했는데, 그들의 모습에서 제 엄마와 조카가 보였어요. 모든 생명이 주변에 생존하는 인간과 다르지 않다는 감정에 휩싸였죠. 자연스럽게 먹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용기를 내 선언했어요.
쉽지 않은 길이죠?
처음에는 많이 불안했죠. 저 역시 실패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굳건한 마음을 지탱할 수 있는 건 사랑이었어요. 환경을 위해서, 건강상의 이유로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려고 했을 때는 시간이 지나면 ‘먹고 싶다’는 방향으로 욕구가 발현됐어요. 그런데 그들을 나와 같은 존재라 여기고 사랑하게 되니 안 먹어야 할 확실한 이유가 생겼어요. 줄 서서 먹는 식당을 찾아다닐 정도로 맛있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다행히 비건 식문화가 많이 발전했어요. 행복한 미식 생활을 즐기고 있어요.
이런 라이프스타일이 삶도 변화시켰나요?
영화 <매트릭스>에서 빨간 약, 파란 약을 먹으면 시선이 달라지는 것만큼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포용의 범위가 넓어졌고, 배우로서 관찰하는 시야와 공감의 넓이가 확장되었어요.
최근 눈길이 갔던 뉴스가 있나요?
요즘은 눈과 귀가 소수의 이야기에 쏠려요. 비건을 하면서 소수의 입장을 잦은 빈도로 경험하며 ‘이렇게 달리 보이는구나. 소수가 아닌 사람들은 정말 잘 모르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장애나 성 소수자, 노동자, 늙음, 동물 등 소리를 내지 못하거나 소리를 내도 잘 닿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관심이 커요. 영화 <딸에 대하여>라는 작품을 찍었는데, 최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많은 대화를 나눠서 그런지 모르겠어요.
이 모든 것을 품고 어떻게 나아가고 싶어요?
그저 무사하기만을 바라요. 두려움에 마음이 동해서 시작한 라이프스타일이었으니까요. 저와 함께 사는 흑미라는 까만 친구부터 가족, 친구 모두요. 동물을 축산업으로 분류해 사랑이라는 단어가 낯선 존재로 만들었지만, 소, 돼지, 닭 친구도 무사하면 좋겠어요. 그게 제가 요즘 희망하는 것들이에요.
요즘 임세미는 무사한가요?
그런 것 같아요.(웃음) 매주 수요일에는 디즈니플러스에서 <최악의 악>을 기다리고요. 김남주, 김강우 선배와 차은우 씨와 함께 <원더풀 월드>라는 작품을 찍고 있어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던 김남주, 김강우 선배가 억울하게 아이를 잃고 이와 얽힌 사건이 벌어지는 작품이에요. 저는 이 부부의 가까이에서 사건을 함께 겪는 인물을 열심히 연기하고 있어요.
세상에 단 하나의 단어만 존재할 수 있다면 뭘 남기고 싶어요?
사랑요! 사랑의 품에서 자연, 동물 그리고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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