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투박하고 치열한 노동의 현장에서 태동한 워크웨어가 부드러운 터치를 더해 우아한 모습으로 등장했을때.

워크웨어 룩을 생각하면 대부분 이런 장면이 떠오른다.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한 타운하우스의 집 안 이곳저곳을 수리하려고 정비공이 찾아온다. 그는 포켓이 주렁주렁 달린 코튼 셔츠에 투박하고 튼튼한 생지 데님을 입었을 것이다. 그의 주 업무는 널찍한 정원에 제멋대로 자란 잡초를 베는 일. 크고 작은 포켓에서 이런저런 공구를 꺼낸 다음 작업을 시작한다. 때는 반드시 뙤약볕 아래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흥건히 흐르는 날이어야 한다.더운탓에이내상의를벗고일에몰두하는그.더럽혀진손따위는 데님팬츠에쓱쓱닦고마는데.모든작업이끝나면차가운물한잔으로 마른입을적시고벗어둔셔츠를툭툭털어다시입을것이다.이처럼 아메리칸 영화의 클리셰로 각인되는 워크웨어 룩은 아메리칸 캐주얼의 범주 아래 성장해왔다. 이름 그대로 ‘일할 때 입는 옷’이라는 뜻으로, 튼튼하고 기능적인 디테일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수납을 고려한 포켓 장식, 편리를 주는 벨티드 디테일, 내구성 좋은 소재, 찢기거나 더러운 듯한 워싱, 투박한 신발이 대표적이다.

워크웨어 룩이 패션에 영향을 끼친 것은 21세기에 비주류 문화가 B급 컬처와 힙스터 문화를 견인하며 함께 발전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이번 시즌, 워크웨어는 디테일의 변주를 통해 ‘우아함’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마치 원래부터 그런 것처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우아한 워크웨어로의 변주, 그 특징을 보전하며 가장 완벽하게 업그레이드한 브랜드는 디젤이다. 데님으로 시작한 브랜드답게 포켓을 더하고워싱을하는등데님을재료로한변화는어쩌면당연한일.눈길을 사로잡은 룩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한국 모델 선윤미가 입은 베스트와 스커트다. 버석거리는 얇은 소재에 상하의 모두에 큰 포켓이 달린 옷은 마치 진흙밭에 뒹군 것처럼 빈티지한 디스트레스드 워싱이 눈에 띈다. 그러나 맥시한 스커트의 슬릭 사이로 은은한 광택이 있는 부츠를 더해 분위기의 믹스매치를 주는 바. 허리선 밑으로 늘어지는 벨트 디테일을 더해 그런지하면서도 우아한 워크웨어 룩을 완성했다.

디젤뿐 아니라 지방시, 고셰, GCDS, 오토링거 등도 디스트레스드 워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브랜드다. 지방시는 오래 입어 낡은 듯한 느낌을, 고셰는 페인트를 흩뿌린 듯한 데님 워싱을, GCDS는 뜯겨 해진 듯한 디테일을 연출했고, 또 오토링거는 군데군데 물이 빠진 듯한 염색 기법을 이용했다. 모두 브라톱이나 탱크톱 등 작고 여성적인 아이템을 매치해 대비를 준 것이 포인트다. 소재의 변화를 통해 분위기 반전을 노린 브랜드는 펜디와 이자벨마랑이다. 그중 펜디는 실키한 카고 팬츠로 런웨이를 올킬(?)했다고 해도과언이아니다.언뜻실키한소재와빅포켓을필두로한카고팬츠의 디테일이 상충하는 듯 보였으나, 팬츠와 비슷한 색감의 청키한 신발, 가늘고 여린 니트 톱을 매치해 리드미컬한 룩을 완성했다. 광택이 은은한 윈드브레이커 소재의 베스트와 카고 배기 팬츠에 T 스트랩 앵클 샌들 힐을 매치한 이자벨마랑도 마찬가지. 다부진 가죽 소재에 포켓과 지퍼, 벨트 디테일을 조형적으로 장식한 미우미우와 루이 비통의 룩도 눈여겨볼 키 룩 중 하나. 투박한 모티프가 페미닌한 디테일을 만나 일으키는 신선함은 늘 흥미로운 스타일을 유도한다. 서툴고 어설퍼도 이번 시즌 꼭 한번 시도해보길 바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