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우리 몸이 사실은 하나의 전기에너지로 연결되어 있다면 어떨까? 단단히 뿌리내려 설 수 있는 땅, 그 위에 신발이라는 가림막 없이 온전한 나로 선다.

“우리 이제 신발을 벗어볼까요?” 강사의 안내와 함께 서울숲 가족마당의 넓은 잔디 위에서 나는 맨발이 되었다. 따스함이 감도는 봄, 야외 활동을 즐기려 애써 찾은 ‘어싱 요가’ 프로그램의 마지막 관문이었다. 그저 야외라기에 접지를 통해 지구 표면에 있는 에너지를 우리 몸에 연결하는 ‘어싱(Earthing)’에는 관심도 두지 않고 한쪽 어깨에 요가 매트를 짊어진 채 플립플롭을 찍찍 끌며 간 자리였다. 맨발로 신은 플립플롭 하나 사라진다고 땅을 밟는 느낌이 크게 달라질까? 흙 위로 촘촘히 올라온 잔디에 한 발 내딛자마자 그런 생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물기를 적당히 머금어 촉촉하고 부드러운 땅이 내 발을 끌어당기기라도 하듯 안정감 있게 가 닿았다. 접지였다.

30분 동안 맨발로 서울숲 곳곳을 누볐다. 열 발가락과 넓은 발바닥으로 딛는 모든 걸음이 생경했다. 흙을 다져 만든 산책로 위를 걸을 때는 그 위에 뿌려진 자잘한 모래가 밟혔다. 인상을 찌푸린 채 까치발을 하고 있었지만, 지압판 위를 걷는 듯 저릿하게 아파오는 느낌이 싫지만은 않았다. 축축한 환경을 좋아하는 식물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날 때는 물에 푹 젖은 진흙 위를 걸었다. 강릉 경포대 앞 백사장보다 보드라웠다. 공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시냇물 속을 걸을 때는 물살이 다리를 스치며 감각을 일깨웠다. 이 짧은 시간에 벌써 어싱에 적응했나 싶었던 건 건조한 땅보다 젖은 땅을 밟을 때 어싱의 효과가 더 향상되기 때문이었다. 물 아래 땅을 밟았으니까. 맨발 걷기가 끝나고 얻은 건 잠깐의 활력과 ‘꿀잠’. 아침 8시에 시작하는 수업 때문인지 전날 잠을 설쳤지만, 수업을 마치고 괜히 에너지가 넘쳐 함께 수업을 들은 친구와 그늘 하나 없는 땡볕에서 2시간 넘게 아사나를 했다. 점심까지 든든하게 챙겨 먹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따뜻한 물에 샤워하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그렇게 깊은 잠은 오랜만이었다.

‘맨발 걷기’ ‘접지’라고도 하는 ‘어싱’은 <어싱: 땅과의 접촉이 치유한다>의 저자이자 미국의 성공한 케이블 사업가 클린턴 오버(Clinton Ober)의 개인적 발견에서 시작됐다. 그는 접지하는 행위가 지표면의 자유전자를 몸으로 유입해 체내 전기에너지량인 인체 전위를 전기에너지량이 0V에 가까운 지표면 전위와 같게 만드는 것을 확인했다. 노이즈 없는 화면과 신호를 제공하기 위해 케이블을 접지해 지표면과 동일한 전위를 유지하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클린턴이 의학 전문가, 과학자 등과 함께 진행한 연구와 관찰로 증명한 어싱의 효과를 몇 가지 나열해보면 이렇다. ‘염증과 관련 질환의 증상 완화’ ‘만성 통증 감소’ ‘수면의 질 향상’ ‘기력 회복’ ‘신경계 안정과 호르몬 균형을 통한 스트레스 완화’ ‘생체리듬 정상화’ ‘혈류 개선 및 혈압 안정화’ ‘근육 긴장 및 두통 해소’ ‘여성의 월경 증후군 증상 경감’. 어싱을 달리기와 요가에 접목해 3년간 활동해온 요가 강사이자 명상 커뮤니티 도시명상을 이끄는 임보미 대표는 맨발 걷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흙을 밟으면 땅과 연결되고 동시에 함께하는 사람과도 이어져요. 몸은 물론 마음까지 편안해지죠.” 컨디션이 안 좋을 때면 심해지던 그의 다리 부종과 생리통을 완화시킨 것도 몸의 순환을 돕는 어싱 덕이었다.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한 친구는 어싱을 한 다음 날과 그다음 날까지 일상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근육이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내가 없던 기력이 생기고 깊은 잠을 잔 것 모두 어싱의 효과 때문이었으리라.

우리가 거의 온종일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 근무시간 내내 바라보는 컴퓨터, 휴식을 취하며 시청하는 텔레비전, 음식을 보관하는 냉장고와 옷을 깨끗하게 빨아주는 세탁기 등등. 인간의 삶에 필수인 전자 기기는 전자파를 끊임없이 방출한다. 국제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사람의 심장과 신경에는 전류가 흐르고 전기적 충격에 반응하며 활성화한다. 더불어 인간의 신체는 전자기장 시그널에 영향을 받고 조정된다. 외부의 전기 간섭은 전기 전도성을 지닌 인간의 몸속 회로를 교란하고, 체내에 전기적 노폐물로 쌓인다. 이 노폐물이 축적되면 인체 전위가 높아지고 장기 기능 약화와 만성 염증, 자가 면역 질환, 중증 질환의 원인이 된다.

하지만 어싱은 인체 전위의 높낮이보다 지표면 전위와의 만남 자체를 더 중요시하기도 한다. 온라인 저널 <ESD>에 발표된 연구에는 인체 전위가 0V에 가깝지만, 평소 통증을 느끼고 잠을 제대로 못 자던 사람이 어싱을 한 뒤, 통증이 줄고 수면의 질이 개선된 사례가 등장한다. 지표면 전위는 항상 음전하를 띠는데 이는 지표면에 자유전자가 많다는 의미다. 자유전자는 쉽게 이동할 수 있고, 양전하를 줄인다. 염증, 조직 파괴, 질병의 핵심에 있는 양전하성 분자 ‘유리기(Free Radical)’가 줄어드는 것. 만성 염증과 통증을 앓고 있다면, 그 원인이 높은 인체 전위가 아니더라도 맨발 걷기로 유리기를 중성화해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맨발 걷기는 건강한 활동으로 자리 잡는 중이다. 경기도 가평에 위치한 아난티코드는 웰니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맥퀸즈 카페 뒤편에 황톳길을 만들어 투숙객이 어싱을 체험할 수 있도록 소개한다. 지난 4월 1일 개막한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서는 순천만 연안과 내륙의 람사르 습지, 도심정원까지 15km를 잇는 어싱길을 올해 처음 선보였다. 배우 귀네스 팰트로(Gwyneth Paltrow)는 미국 ABC의 토크쇼 <지미 키멜 라이브>에서 어싱 효과를 언급하며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하기도 했다. 어싱은 땅을 밟는 것 외에 수영하거나 접지 장비를 사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 수 있지만, 임보미 대표는 지속가능성을 강조했다.
“지속가능한 어싱을 하는 게 중요해요. 흙을 밟는 게 도시에서는 가장 효율적이죠.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건강 및 라이프스타일 전문 강사 데이비드 울프(David Wolf)는 신발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발명품’이라고 말했다. 신발이 발 아래 지표면 전위와 인체 전위 사이를 절연하기 때문. 당장 신발을 벗고 집 앞 공원으로 달려가 땅을 밟아야겠다. 대지의 치유 에너지를 통해 조금이라도 건강해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