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모든 게 잘될지도 몰라! 엔데믹 무드와 함께 파티가 다시 시작되었다. 답답하거나 설레거나. 일상 속에서 우리에게 기쁨을 준 것 역시 문화 그리고 라이프스타일이었다.

받는구나 마침내

<올드보이>와 <박쥐>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두 번 받은 후 ‘깐느 박’이란 별명을 갖게 된 박찬욱 감독이 올해 <헤어질 결심>으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번 ‘깐느 박’을 증명했다. <헤어질 결심>은 <아가씨> 이후 6년 만에 연출한 박찬욱의 11번째 장편영화. 주로 원작을 각색해온 박찬욱 감독의 이전 작품과 달리 정서경 작가와 공동 집필한 오리지널 시나리오라는 점이 제작 단계부터 기대를 모았고, 박해일과 탕웨이의 캐스팅과 ‘15세 관람가’라는 점도 화제였다.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나 너 때문에 고생깨나 했지만 사실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등 제목과 문어체 대사가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하면서 올해 최고의 문화 상품이 됐고, 지난여름에 출간된 각본집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국내에서 관객 188만여 명을 동원했다. 한편, 송강호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한국 배우로는 최초의 수상이다.

감독이 된 배우들

‘청담부부’라는 유쾌한 별명을 갖게 된 배우 정우성과 이정재의 또 다른 행보는 바로 연출이다. <보호자>는 정우성의 장편영화 감독 데뷔작으로, 10년 만에 출소해 자신을 쫓는 과거에서 벗어나 평범하게 살고자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 액션 영화로 김남길과 김준한이 참여했다. 이정재의 첫 연출 데뷔작 <헌트>는 국내에서 관객 430만여 명을 동원한 데 이어 제75회 칸영화제, 제47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제55회 시체스영화제에 공식 초청됐다. 지난해 말 개봉한 <장르만 로맨스>를 연출한 배우 조은지는 58회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가격

올해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영화 관람료가 1천원 인상됐다. 팬데믹으로 멀어졌던 관객들은 오랜만에 방문한 영화 관람료가 비싸다는 데에 한목소리를 내는 중이다. 팬데믹 기간에 OTT로 콘텐츠를 시청하는 데 익숙해진 관객들에게는 주말에 보는 영화 1편에 1만5천원에서 2만원까지 내야 한다는 것에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영화 티켓 구매력 지수’라는 게 있다. 최저 시급으로 1시간 일했을 때 평균 관람료로 볼 수 있는 영화 편수를 말한다. 한국은 중간 정도지만 급상승하고 있는 영화 관람료가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일이 됐다. 고용노동부는 2023년도 적용 최저임금을 시간당 9620원으로 고시했다.

1,269만명의 관객 

지난 팬데믹 동안 극장가 상황은 참혹할 정도였고, 영화를 사랑하는 배우들은 만나면 영화계 걱정부터 했다. 이대로 사장되는 건 아닌가 싶었던 영화계가 올해 <범죄도시2>로 다시 1천만이 넘는 관객 1269만 명을 모으며 부활을 선언했다. 지난해 361만 명을 동원해 최다 관객 수를 기록한 <모가디슈>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이다. 이후 <한산: 용의 출현> <공조2: 인터내셔날> <헌트> 등 상업영화가 뒤를 이으며 좋은 흐름을 이어가는 중. 부산국제영화제도 3년 만에 정상 개최됐다.

COMEBACKTOPGUN

<탑건>의 리부트 시리즈인 <탑건: 매버릭>의 관객수는 817만여 명으로 외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적당히 흥행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장기 상영과 역주행을 오가며 줄곧 박스오피스 상단을 차지했다. 1990년대 후반 세대라 사회인이 되는 이 무렵에, 1986년 <탑건>의 속편이 다시 상영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심지어 이 작품으로 명실상부 할리우드 톱스타가 된 톰 크루즈가 그대로 주연을 맡았다. Z세대는 오래된 <탑건>을 OTT로 보며 쿨하다고 말하고, 손주를 본 부모님은 톰 크루즈에게서 세월을 발견한다. 이미 부장님 반열에 오른 X세대는 비행을 위해 비행하는 매버릭을 보면서 다시 뜨거워진다. 오랜만에 내한한 톰 아저씨가 말했다. “영화는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어쩌면 놓쳤을 영화들

1 <성적표의 김민영>기숙사의 같은 방을 쓰던 친구들이 대입 수능을 치고 1년 만에 다시 만나 서로의 거리를 다시 재어본다. 여전히 같은 게 많지만 어떤 부분은 영영 달라진 스무 살 우정의 이야기.

2 <성덕>조건 없이 사랑했지만 흑역사만 남긴 슬픈 오빠들에 대한 기록. 실패한 덕후의 생생한 증언을 담은 다큐멘터리. 작년 영화제 개봉 후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지난 9월 극장에서 개봉했다

3 <썬더버드>강원랜드가 위치한 정선군 사북 지역에는 길가에 방치된 자동차가 즐비하다. 그 모습에서 시작된 새로운 누아르 영화로, 돈을 둘러싼 장르적 재미를 듬뿍 안고 있다.

4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율리에와 에이빈드의 연애 과정을 그린 노르웨이 영화. 누군가에게 최악이 되는 사람들. 그게 사랑이라고 말하는 영화다. 원제는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라는 뜻.

5 <썸머 필름을 타고!>관객의 입소문으로 정식 개봉까지 하게 됐다. 고등학교 영화 동아리를 배경으로 영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확인한다. 인스타그램 필터 같은 색감이 청춘의 시간을 눈부시게 재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