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삶에는 항상 어떤 이벤트가 일어나고 있는 거죠.” 새로운 작품을 앞둔 박은빈이 말했다. 

핑크 메시 드레스는 몰리 고다드 바이 무이(Molly Goddard by Mue). 블랙 청키 슬링백 로퍼는 가니 바이 비이커(Ganni by Beaker). 삭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블랙 레더 재킷과 화이트 셔츠, 스카이 블루 니트 톱과 블랙 스커트, 슬링백은 모두 미우미우(Miu Miu). 시스루 삭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펄 프릴 베스트는 듀이듀이(Dew E Dew E).

레더 베스트는 디올 바이 육스(Dior by Yoox). 블랙 크롭트 재킷은 가니(Ganni). 핑크 플리츠 튤 스커트는 필로소피 디 로렌조 세라피니 바이 무이 (Philosophy di Lorenzo Serafini by Mue). 앤티크 실버 플랫폼 슬라이드는 가니 바이 비이커.

 

촬영하자고 하면 반듯하게 서 있던 박은빈이 많이 달라졌네요? 내면의 변화가 느껴져요.
화보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끌어내니까 일탈처럼 경험해보자는 용기가 예전보다는 좀 생긴 것 같아요. 요즘 일을 연이어 하면서 느끼는 게 있거든요. 연기는 특별한 일이니까 제 삶에 항상 어떤 이벤트가 일어나고 있는 거죠.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거기에 익숙해지는 거예요.

요즘은 어떤 것에 익숙해요?
만약에 제가 지금 아프면 촬영 전체가 중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요. 그런 면에서 조심하면서 살다 보니 그게 또 무료해질 때가 있더라고요. 늘 대본 외우고, 촬영하고, 또 대본 외우고, 촬영하고, 반복이에요.

오늘의 이벤트는 뭐였나요?
촬영 중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영우에서 잠깐 벗어나 영화 <마녀2> 제작 발표회에 가서 경희 얘기를 하고 온 거요. 그리고 여기 <얼루어> 화보 촬영을 하러 온 게 오늘의 이벤트예요.

지금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박은빈이에요?
경희도 아니고, 영우도 아닌 박은빈인데요.(웃음) 오늘은 저도 몰랐던 제 모습을 화보를 통해서 보게 됐는데, ‘이런 것도 잘 어울릴 수 있구나’ 하는 걸 경험해봤죠.

오늘은 이벤트가 무척 많은 날이었네요. 다시 날이 밝으면 제주로 가야 한다면서요?
어제 촬영이 생각보다 늦게 끝나 새벽 4시에 집에 왔어요. 이틀째 아예 잠을 못 잤어요. 제가 그동안 했던 대사 중에 역대급으로 대사가 많거든요. 현장은 정말 즐거워요. 역할도 재미있고 힘은 나는데, 스스로 견뎌야 할 몫이 커진 것 같아요. 대사도 남이 외워줄 수 있는 것도, 해결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마녀2>를 한다고 했을 때는 궁금하더라고요. 설마 ‘마녀’는 아니겠지 싶었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종영 인터뷰 무렵에 <마녀2>를 한다는 발표가 났거든요. 다들 ‘제가 악역이다’ ‘사람을 몇은 죽이면 좋겠다’는 쪽으로 말씀하시는 걸 보면서 ‘아, 이거 어떡하지…’ 제가 당연히 새로운 도전을 했을 거라고 생각들 하신 것 같아요.

박은빈의 악역, 그러고 보니 궁금하네요.
‘선역만 하고 싶다, 악역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없어요. 살다 보면 악해질 때도, 선해질 때도 있는 거잖아요. 앞으로 지내다 보면 악역 같은 선역을 할 수도 있고, 선역인데 사실상 악역일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럼에도 <마녀2>의 역할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역할도 확실한 선역이죠? 모든 배우가 정의로운 역할이 어울리지는 않아요.
맞아요. 확실한 선역이죠. 근래에 반응이 좋은 작품이나 제게 들어오는 여러 작품 속 사람의 성향이 있잖아요. 정도를 걷는 캐릭터가 저한테 자주 들어오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나를 올바른 이미지로 보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도를 걷는다는 건 은빈 씨한테 어떤 의미예요?
변절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캐릭터마다 나름의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 안에서 보여드릴 수 있는 여러 면을 보여드리고 있는 것 같아 만족스러워요.

10대 때는 어떤 고민을 했어요?
와, 벌써 10여 년이 지났네요. 사실 저는 10대 때 또래보다 어른들이 더 무례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어른들은 대체 왜 그럴까요?
이를테면 아역 배우의 삶에 대해 항상 무례한 질문을 하는 건 어른이고, 필요 이상의 걱정을 하는 것도 어른이었고요. 날벼락 같은 질문을 자주 받곤 했어요. 조심성이 없는 어른을 보면서 ‘나이를 먹는다고 다 좋은 어른이 되는 건 아니구나’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좋은 어른이 된다는 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런 어른을 보며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하면서 스스로를 다잡았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지금도 어린 친구들이 결코 어리지 않다고 생각해요, 각자의 나이와 각자의 세상에서 모든 걸 누리고 느끼고 있잖아요. 그래서 웬만하면 굳이 원하지 않는 조언은 하지 않으려고 해요. 저도 모르게 조언할 때도 있지만.(웃음)

인터뷰라는 건 그때의 나를 기록하는 거죠. 예전 거 본 적 있나요?
제가 기자님 이름도 선명하게 기억하잖아요? 오늘 세 번째 만남인데 전부 제가 좋아하는 작업이에요. 예전 인터뷰를 보면 저 스스로 멋진 사람 같아 보이더라고요.

다 박은빈이 한 말인데요.
그래도 정리를 잘해주시니까요. 지난 인터뷰를 불현듯 봤을 때 ‘이때 이런 생각을 했구나’ 싶었지만, 그때의 제가 지금의 저보다 훨씬 안정적이었든지 더 성숙했든지. 그런 색다른 감성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가끔 제 인터뷰를 저장해놓아요.

 

블랙 뷔스티에 점프슈트는 로에베(Loewe). 플랫폼 뮬은 지안비토 로시(Gianvito Rossi).

데님 드레스는 로에베. 화이트 하트 베레모는 큐밀리너리(Qmillinery).

스웨이드 재킷과 블랙 톱, 블랙 팬츠와 슬링백은 모두 프라다(Prada). 블랙 삭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점점 더 유명해지고 있는 건 어때요?
그렇다고 하는데 제가 바깥 생활을 많이 안 하다 보니까 특별히 실감하는 건 없어요.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부쩍 는다거나, 작품에 대한 호평을 듣는 일 같은 거죠.
인스타그램은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조금 느낀 건, 선배님들이 제 작품을 재미있게 보셨다, 팬이었다면서 건네는 말씀이에요. 진심으로 여러 번 봤다고 하실 때는 같은 연기자로서 몸 둘 바를 모르겠으면서도 뿌듯하더라고요. 제가 걸어온 길에 대해 그렇게 얘기해주는 분이 늘어나는 것 같아 좋아요.

유명해지면 더 다양하고 많은 작품을 선택할 수 있잖아요?
그건 정말 감사한 일 같아요. 장르 불문, 역할 불문으로 천차만별인 작품과 캐릭터가 들어와요. 그래서 머리가 더 복잡하기도 하고요.

어떤 게 제일 복잡해요?
기회비용이라는 게 있잖아요?(웃음) 요즘은 제작 기간이 늘어나서 1년에 한 작품 하면 지나가는 것 같아요.

‘내 시간을 온전히 잘 보냈다고 생각하는 작품이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했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연모>는 어떤 작품으로 남았나요?
그 마음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스물아홉 살에 동갑인 송아를 만나서 제 20대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낸 작품이었고, <연모>는 제가 감히 꿈꿔보지 못한 역할을 만나서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해볼 수 있었어요. 많이 힘들었지만 제 또래 어느 여성이 조선 시대 왕 역할을 해보겠어요? 뿌듯하고, 보람도 있었어요.

왕 역할이 여성 배우한테는 드물죠.
맞아요. 익선관을 쓰고 곤룡포를 입는 건 정말 희소한 가치가 있는 거죠, 최선을 다했기에 아쉬움이 없는 작품이에요. 또 새로운 작품을 만나고 또 다른 캐릭터를 만나야 하니까 그대로 다 잘 봉인해뒀어요. 캐릭터는 캐릭터대로 잘 있게 하자. 작품의 여운에 젖는 건 실제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더라고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어떤 마음으로 선택했어요?
사실 <연모>와 같은 시기에 제안받은 작품이었어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지만 제가 잘할 자신이 없는 작품이기도 했어요. 욕심은 나지만 좀 부담스러운 작품이었어요.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고 어느 하나 거슬리지 않고 잘해낼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좀 두렵더라고요. 그래서 여러 번 고사했는데, 그런 저를 기다려주셨죠. 작가님과 감독님이 저를 믿어주니까, 그 마음에 보답해야겠다 싶어서 용기를 냈어요.

용기 낸 만큼 얻고 있어요?
정말 너무 어렵게 느껴졌지만, 어느 순간 실마리가 보이고 그때부터는 술술 풀리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래서 감독님과 작가님이 내게 기대를 하셨구나 하고 스스로 느낀 적도 있어요. 저 스스로 가지고 있는 저에 대한 믿음이 있잖아요? 그 믿음을 다시 상기시켜준 부분이 있어서 그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를 내게끔 해준 작품인 것 같아요.

누구나 있잖아요, 두려움은.
천재 캐릭터는 처음인데, 영우는 자폐 스펙트럼도 지니고 있는 인물이죠. 저는 이 역할을 대할 때 정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한 것 같아요. 이상하다는 건 무엇이고, 비정상이라는 건 무엇이고 정상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정말 정상인가? 하는 생각들 있잖아요.

답도 찾았어요?
프레임 속에 가둬서 사람을 재단하지 않고, 그런 이상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특색 있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의 특성이 되는 거잖아요. 제 역할도 그렇고 이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사람이 모두 다 다채로워요. 결국에는 ‘이상함’이 아니라 ‘특성’으로 보면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우영우는 이상하지만 이상하지 않은 변호사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방금 드라마 웹사이트 전면에 있는 기획 의도를 듣는 것 같았어요. 이미 다 그려져 있네요, 드라마가.
하하! 맞아요. 저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편집본을 6부까지 얼추 본 상태예요. 그림이 있죠. 감독님도 우리가 찍은 드라마고 내가 만든 드라마지만 봐도 봐도 재미있다고 하시더라고요. 편집 기사님도 ‘이 시대의 백신 같은 드라마’라고 말씀하셨어요. 굵직한 작품을 해오신 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행복하더라고요. 제가 대본을 보면서 느낀 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 촬영하면서 작품이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 선장이 확실한 배에 탄 것 같아 일단 항해가 즐겁습니다.

지금 새벽 2시 10분 정도 됐어요. 낮과 밤의 모습이 바뀌는 사람도 있잖아요. 어떤가요?
저는 사실 낮보다 밤을 좋아하고 밤에 좀 더 생생한데, 지금은 그만 깨어 있어도 될 것 같아요.(웃음) 그래도 제 텐션 괜찮지 않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