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입에 달고 사는 이가 있다. 어느 자동차 브랜드의 오너가 아니라 RVN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테드 킴이다. 그가 이끄는 RVN은 매일이 혁명이고 혁신이다. 오죽하면 이름도 레볼루션(Revolution)에서 따왔다.

1,4,5,6,7,9 니트라는 소재의 한계를 넘어 인체공학적 착용감을 선사하는 RVN. 그중 ‘컬러의 향연’이라는 주제 아래 펼친 2022 봄/여름 컬렉션 아이템들. 2 니트를 편직 기계로 짠 모습. 3 테드 킴(Ted Kim)이 직접 그린 아이디어 스케치. 8 RVN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테드 킴.

서울에서 첫 번째 팝업이다.
모국에서 첫 번째 팝업이라는 사실에 기분이 묘했다. 디자이너로서 고객들과 교감할 일이 그리 많지는 않은데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분들을 만나고 있다.

반응이 뜨겁다.
좋아하는 분위기가 피부로 느껴진다. 누군가는 이런 옷을 갈망했다고 말하더라. SNS에 컬러 테라피, 컬러 맛집이라는 해시태그가 많이 올라와 짜릿하기도 했다.

처음이라 부담도 있었겠다.
첫인상은 오래 남으니까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장소 선정에 공을 들였다. 다행히 이곳, 스페이스 알에서 적극 지원을 해준 덕에 원하는 그림이 완성되었다.

한국 시장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
언젠가 모국으로 가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뉴욕에서 30년을 살아 한국이 가까우면서 먼 나라처럼 느껴졌다. 한국 시장을 전혀 몰랐기에 실현이 어려웠다. 그러다 이번에 생산 기지를 LA에서 한국으로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추진되었다.

생산 기지를 옮긴 이유는?
한국의 니트 장인이 이탈리아의 장인보다 낫다. 퀄리티가 다르다.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함께 발전된 까닭이리라. 샘플 생산차 왔다가 그대로 눌러앉았다.

RVN 2022 봄/여름 컬렉션의 특징을 소개해달라.
Explosion of Color, 컬러의 향연이다. 끝을 알 수 없는 팬데믹 아래 사회 전체에 우울이 만연해졌다. 사람들에게 다시 즐거움을 찾아주고 싶었다. 컬러가 치유의 좋은 도구가 될 것이라 믿는다.

컬렉션을 준비하며 가장 공들인 부분은 무엇인가?
혁신을 위한 연구와 개발이다. 원단 개발에서 아트워크까지 모든 것이 내 손끝에서 시작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진짜의 아름다움과 예술성은 손에서 나온다. RVN이 항상 새로운 이유다.

한 인터뷰에서 ‘패션계의 테슬라’가 되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인가?
맞다. 테슬라의 혁신을 닮고 싶다. 우리가 사용하는 편직 기계에 AI까지 접목돼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 내 손끝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편직 기계가 실현한다.

RVN 탄생 시점으로 돌아가보자. 그 배경이 궁금하다.
파슨스 재학 3학년 때 도나 카란에게 발탁되어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작했다. 졸업 후 막스마라에서 1년을 제외하고는 도나 카란 4년, 마이클 코어스 8년 등 뉴욕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 즈음 뉴요커들을 위한 옷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글, 테슬라, 애플 등 미국식 혁신을 바탕으로 한, 타임스퀘어의 찬란함과 팝 뮤직의 환상적인 무드를 담은 브랜드를 상상했다. 도나 카란에게서 디자인을 배웠고 마이클 코어스에서 브랜딩을 배웠기에 준비는 충분하다 싶었다.

니트를 선택한 이유는?
처음부터 니트를 선택한 건 아니었다. 당시 LA 공장에서 니트 편직 기계를 접한 뒤 신세계가 열렸다. 그 전에는 니트라고 하면 그저 축축 늘어지는 스웨터나 카디건만 생각했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입체적일 수 있는 소재였다. 그동안 느꼈던 디자인적 한계를 니트가 풀어주었다.

2012년, 비욘세가 입어 화제가 된 팬츠도 니트 소재였다.
그날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비욘세가 입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친구에게서 전화가 와서 알았다. 그녀가 우리 바지를 입고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는 사실을. 덕분에 RVN의 첫 테이프를 성대하게 끊었다.

RVN의 니트 공정이 기존의 니트와 크게 다른 점은 무엇인가?
어려웠던 공정과 낭비를 줄여주는 것이다. 최대한 입체적으로 편직하는 이유는 덜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원사를 아낄수록 더 착한 가격으로 만들 수 있다.

니트 봉제가 친환경 기법이라고 들었다. 원래 친환경 이슈에 관심이 있었나?
처음에는 원사를 아껴야 원가가 절감되고, 그래야 고객에게 착한 가격으로 우리 제품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우리의 자연스러운 행위가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고, 더 노력하여 현재는 원사 86%를 재활용하는 데 이르렀다. 

친환경과 지속가능성은 전 세계적 이슈인 동시에 우리가 당면한 과제이기도 하다. 이런 방향으로 계획하고 있는 게 더 있을까?
시대와 발맞춰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원사 자체도 더 친환경적인 것으로 업데이트하고, 캐시미어 재활용도 구상 중이다.

RVN은 셀럽들이 좋아하는 브랜드로도 잘 알려져 있다. 비결이 무엇인가?
편한 착용감 덕분이다. 팝 가수들이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무대에서 입고 활동하기가 좋아서일 거다. 신축성이 좋고 유연하기에 하나의 아이템으로 다양한 사이즈를 커버할 수 있다. 자연히 스타일리스트들도 좋아한다.(웃음)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나?
맛있는 요리를 좋아해서 맛집 찾아다니는 것을 즐긴다. 역사와 이야기가 담긴 골목 한켠에 자리한 오래된 곳을 특히 좋아한다. 그곳에 가면 비단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닌 역사 그 자체를 흡수하는 것 같다. 팬데믹 전에는 여행 다니길 좋아했는데 그것도 이국적인 먹거리를 접하기 위해서였다.

제일 좋아하는 여행지는 어딘가?
이탈리아와 포르투갈이다. 특히 포르투갈은 마늘을 많이 써서 입맛에 맞는 요리가 많다.

반드시 지키는 루틴이 있나?
아침에는 간단한 스트레칭과 함께 요가와 명상을 한다. 미국에 있을 때도 컬렉션이 끝나고 나면 반드시 요가 센터에 가서 하루 종일 채식을 먹으며 요가를 했다. 일종의 비우는 날인 것이다. 머리를 비워내야 또 새로운 영감을 채워 넣을 수 있으니까 창작자들에게 이런 행위는 필수다.

영감을 받는 대상은 무엇인가?
모든 예술 분야에서 영감을 받는다. 모던 아트, 다양한 색감, 결이 맞는 아티스트 등이다. 나는 RVN이 아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직원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옷은 액자에 걸었을 때 작품처럼 보여야 가치가 있다고.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만들지 않는 게 낫다고 이야기한다.

최근에 주목하는 아티스트는?
추상회화를 하는 윤양호 작가다. 컬러를 쓰는 데 공감하는 바가 많다.

테드 킴의 패션 철학은 무엇인가?
불편한 거는 절대 만들지 않는다는 것. 여성의 몸에 최대한 인체공학적으로 맞게 하는 것. 몸에 딱 달라붙는다고 표현하는 것도 결국 부분부분 입체적으로 재단해 불편하지 않게 만들고자 한다.

RVN 의상은 보는 것과 달리 막상 입으면 부담스럽지 않게 착 붙는 느낌이 있다.
사진으로만 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기분이다. 모두 입고 직접 느껴보기를 권한다.

RVN은 어떤 여성을 위해 존재하는가?
최고가 되고 싶은 모든 여성을 위한다. 우리 옷을 입고 모두 자신감을 가지고 최고를 향해 달리기를 응원한다.

RVN의 ‘혁신적인’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
곧 니트로 만든 가방과 신발이 나올 것이다. 그후 차차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도약하겠다. 지켜봐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