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물건의 수명은 언제까지일까? 

명절맞이 대청소를 할 때가 되면 엄마와 매순간이 전쟁이다. 체는 열 몇 개쯤 있는 것 같고, 크고 작은 프라이팬이 열 개는 있는 것 같다. 냄비는 세다 지쳤다. 오래된 체는 이제 버리라고 하면, 엄마는 추억담을 늘어놓는다. “이게 막내 가졌을 때 엄마가 손목이 아파서 새로 샀던 건데, 예전에는 쌀에 돌이 많아서 골라내야 했잖아….” 이 프라이팬을 버리라고 하면 “요리용으로는 못 쓰는 건데, 깨를 볶을 때 쓰려고 갖고 있는 거야.” 자식들이 분가해 식구도 집밥도 줄어든 마당에, 깨를 볶으면 얼마나 볶을까? 많아야 1년에 한두 번일 일을 위해 낡은 프라이팬을 보유하는 게 맞나? 접시는 또 어떤가? 시대의 가장 핫한 그릇은 다 우리 집 그릇장에 모셔져 있고, 엄마는 딸이며 며느리에게 물려주고 싶어서 안달이지만 우리는 값은 나갈지언정 취향은 아닌 그릇들을 한사코 거절한다. 베이비부머 세대인 우리 엄마에게 물건은 언제나 귀한 것이고, 오히려 가치관이 더욱 선명해지는 것 같다. 물건은 생각보다 잘 망가지지 않고, 망가지지 않은 물건을 버리는 건 죄라는 생각이다. 그런 동시에 당연히 새것, 좋은 것에 대한 욕망은 사라지지 않으니 우리 집은 옛것과 새것이 서로 자리다툼 중이다. 

나라고 사정이 다른가? 엄마가 여러 살림살이에 치이고 있다면, 나는 옷과 신발의 무게에 눌려 있다. 슈즈는 70켤레가 넘어, 잘 안 신는 슈즈는 박스에 넣어 따로 보관 중이다. 매거진 에디터의 삶이란 곧 맥시멀리스트의 삶이다. “겨울옷이 너무 많아서 터진 만두처럼 옷장 밖으로 흘러나와”라고 하소연을 했더니 친구는 “터진 만두처럼 살이 흘러나와 옷이 안 들어가는 것보단 낫다”며 위로했다. 그의 드레스룸도 이미 가득 차서, 방 하나가 아예 옷방이 됐으니 같은 처지다. 이런데도 예쁜 물건과 예쁜 옷을 향한 욕망은 멈추기가 어렵다. 현대에는 의복이 자기 표현의 가장 큰 수단 중 하나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패션 천재들이 새로운 디자인을 내고 있으니까. 그러나 바로 이 욕망이 환경을 망치는 주범임에도 틀림이 없다. KBS <환경스페셜 –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를 보며 뼈아픈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는 패션 업계와 종사자들이 보고 들어야 할 현실을 눈앞에 펼쳐놓는다. 패션이라는 아름다운 이미지 뒤에 벌어지는 참혹함. 현재 인구 1명당 1년에 구입하는 의류는 68개. 바지 1벌을 만들 때 탄소 배출량은 자동차로 111㎞를 갈 때와 같다. 흰색 면 티셔츠 1벌을 만드는 데 드는 물은 2700L다. 저렴한 옷에 흔히 쓰이는 폴리에스테르는 페트병과 같은 플라스틱이다. 페트병은 재활용이라도 되지만, 옷은 그저 쓰레기가 되어 미세플라스틱으로 인간에게 돌아온다. 그렇다면 폐페트병으로 재활용한 옷은 친환경적인가? 이 역시 대표적인 ‘그린 워싱’이라는 거다. 폐페트병은 이미 재활용률이 80%가 넘는데, 패션에 소모되며 값은 올라가고, 다시 재생하지 못하는 쓰레기가 되기 때문이다. 1980년대와 비교해 연간 옷 구매량은 5배까지 늘었다. 그 이유를 ‘울트라 패스트 패션의 시대’에서 찾는다. SPA의 시대가 열리며 누구나 저렴하게 빠르게 옷을 살 수 있게 되었지만, 그만큼 쉽게 만들고 쉽게 버린다. 과잉생산된 옷들은 저소득 국가에 쓰레기로 버려져, 아프리카 가나의 수도 아크라는 거대한 옷 무덤이 되었다. 매주 수입되는 1500만 벌의 헌옷이 골목마다 강을 이룬다.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입을 수도 없으며 썩지도 않는 말 그대로 쓰레기 위에서 사람과 동물이 살아가고, 소들이 풀 대신 옷을 먹는 장면은 더없이 충격적이다. 나 역시 헌옷 수거함에 옷을 넣으며 이 옷이 필요한 곳에 가기를 바라지만, 실상은 헌옷의 95%가 수출된다. 유행과 패션에 민감하다는 한국은, 그 결과 세계 5위의 헌옷 수출국이 되었다. 의류 쓰레기를 양산하는 주역인 기업은 에코퍼, 비건 가죽, 재활용 소재로 만든 라인을 내세우며 친환경 이미지까지 가져간다. 그러니 살림살이를 쟁이는 엄마가 차라리 낫다. 체나 프라이팬은 분리수거에 따라 고철로 재활용되고, 유행이 지났다고 여긴 그릇들은 당근마켓에 올리자마자 순식간에 나갔다. 생활용품과 달리 선택 받지 못한 패션 아이템에게는 쓰레기가 되는 운명만이 남는다. 

옷을 너무 좋아하는 우리는 이제 어떻게 패션을 소비해야 할까? 가죽을 덜 소모하는 일, 옷을 덜 사는 일도 중요는 할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사지 않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질 좋은 옷을 선택하고, 오래 입어 의류 쓰레기를 덜 배출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일지 모른다. 내 옷장에는 10년째, 15년째 살아남은 옷이 꽤 있다. 버버리의 코트, 막스마라의 재킷, DKNY의 슬랙스, 미우미우의 카디건, 타임의 니트 등이다. 베이식한 디자인에 좋은 소재로 만든 클래식 아이템들은 수많은 드라이클리닝에도 살아남아 내구성을 증명했다. 제법 가격을 지불해야만 했던 옷이지만, 그만큼 오래 입었고 내년에도 입었으니 ‘좋은 소비’로 남았다. 반면 휴양지나 행사를 위해 기분을 낸 드레스는 멀쩡하더라도 다시는 입을 일이 없어 ‘나쁜 소비’로 남았다. 6년 동안 틈틈이 신어 허옇게 바래기 시작한 부츠를 버리는 대신 슈케어숍 릿슈에 가져갔다. 앤아더스토리즈가 국내 론칭하긴 전 파리에서 20만원대에 구입한 이 부츠를 어떤 럭셔리 브랜드 부츠보다 좋아했다. 케어를 마친 부츠는 새것 같았다. 관리만 잘 하면, 때때로 고쳐주면 신발은 영원히 신을 수도 있다고, 릿슈의 직원이 말했다. 5만원의 비용으로 신발은 쓰레기가 되지 않았고, 나도 아끼는 부츠를 계속 신을 수 있게 됐다. 올해 우리는 몇 벌의 옷을 구매하게 될까? 알 수 없지만 다짐해본다. 이미 구입한 것은 오래 입고, 수선하며 입겠다고. 재미 삼아, 기분 전환 삼아 구입해 한두 번 입고 말 옷은 처음부터 사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