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게 버려진 사물에 애정을 쏟아 자기만의 시선으로 간직하는 사진가 구본창이 그린 얼루어를 위해 보내온 미공개 작업.

Koo Bohnchang, Object 15-1, 2004

Koo Bohnchang, Collections 11, 2010

3·1문화상 수상을 축하드려요.
올해로 63회째니까 유서 깊은 상이죠. 그게 참 쉽지 않 은 일일 텐데 묵묵히 해왔다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 다양한 영역의 인물에게 주어지는 상인데요. 예술 분야 에서 사진가가 받은 건 내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의미 가 있어요. 영광스럽죠. 얼마 전 돌아가신 이어령 선생 도 수상한 적이 있으니 왜 안 그렇겠어요.

상이 주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어때요?
상을 바라고 작업을 하는 건 아니지만요. 내가 하는 건 그냥 하는 거니까요. 다만 나서지 않고 내 할 일을 해왔 는데 관심을 가지고 알아봐준 사실이 내게 큰 힘이 실 리는 느낌이더군요. 사진계에 어떤 방식으로 보답을 해 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될 것 같고요.

3년 만에 온 분당 작업실의 풍경이나 온화한 말투, 여전한 그 모습이 좋네요.
그래도 시간이 흘렀으니 여러 일이 있었고 변한 것도 있을 테죠. 모처럼 연락이 와서 ‘그린 얼루어’에 관한 과 제를 내준 거잖아요.(웃음) 잘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요 며칠 고민을 했어요. 예전 작업까지 다 끄집어내서 어떻 게 하면 취지에 맞게 내 작업을 잘 연결할 수 있을지 애 를 썼죠. 나름대로는 신선한 시간을 보냈어요. 역시 이 렇게 숙제를 받아야 하게 된다니까.(웃음)

지난 인터뷰에서 이것저것 수많은 작업과 자 료를 꺼내 보여주신 모습이 선해요. 세상이 알고 있는 ‘구본창의 사진’은 빙산의 일각이 라는 걸 알게 됐고요.
하나하나 작품으로 볼 수도 있지만, 스케치라고 하면 어 떨까 싶네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준비 작업 같은 거 죠. 스케치를 정말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게 모여서 시 리즈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도 하죠. <얼루어>에 보낸 사진들은 따로 모아서 발 표한 적이 없는 사진들이에요. 기회가 된다면 이렇게 한 번 묶어서 보여줘도 좋겠다 싶었던 것들이죠.

시간이 켜켜이 쌓인 물건을 찍은 사진이 인 상적으로 남았어요. 너무 쉽게 쉽게 버리는 세상이잖아요.
난 너무 아끼고 너무 안 버려요. 30년 된 와이셔츠는 기 본이고 젊은 시절 독일 유학 때 입던 옷도 그대로 가지 고 있어요. 존재 자체를 아끼니까 못 버리는 거예요. 자 기 나름대로 쓰임새가 있던 물건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 각해요. 하다못해 이런 옷걸이도 그래요. 그냥 보면 아 무것도 아니지만, 가냘픈 라인이 가지고 있는 정서가 있 어요. 나는 그런 걸 봐요. 그럼 쉽게 버릴 수가 없게 돼 요. 아끼게 되고 들여다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애틋해지 거든요. 모든 물체는 생명력을 지닌 채 지속가능한데 우 리는 너무 쉽게 폐기처분하는 것 같아요.

구본창의 사진이 그렇지만 아름다우면서도 애틋한 정서가 스며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내가 찍은 정물 사진에 묘한 서글픔 같은 정서가 있다고들 하죠.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 그런 거겠죠.

 

Koo Bohnchang, Object 08, 2003

Koo Bohnchang, Untitled, 1983

Koo Bohnchang, Untitled, 2019

이 사진들은 ‘그린 얼루어’와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요?
자연을 구해야 한다는 직접적인 메시지가 담긴 건 아 니에요. 그런 의도로 찍은 것도 아니고요. 나는 원래 세 월의 흔적이라든가 시간의 축적, 이런 거에 워낙 관심 이 많은 사람이에요. 새것보다는 손때 묻은 오래된 물건 을 좋아해요. 거기에서 의도하지 않은 아름다움과 존재 감을 찾아내는 걸 즐기고 또 잘하죠. 사진 속 물건이라 는 게 남들이 보면 그냥 쓰레기잖아요. 사용되고 남겨진 것, 쉽게 버려진 것들이란 말이죠.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어야 마땅한 물건을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고, 아름다 움을 찾아낸 작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직접적인 발언보다 은유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때가 있죠.
뭘 살 때 애정을 가지고 오랫동안 쓸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 같아요. 내 물건에 애정을 가지고 오래 잘 쓰면 쓰레기가 생길 일도 없어지는 거 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 사진들이야말로 ‘그린 얼루 어’의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내 삶 의 태도이기도 하고요. 지구본이 새까맣게 불탄 사진을 봐요. 상징적이지 않나요? 

기후위기를 떠올리게 해요. 그 문제에 대해 서도 생각하세요?
그레타 툰베리 같은 활동가의 주장을 공감하고 지지해 요. 나도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아서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챙겨 보는데요. 요즘 전 세계적으로 산불과 홍수 같은 이상 기후가 빈번하잖아요. 빙하는 녹아내리고 있고요. 발등의 불로 안 느껴지니까 그렇지, 큰 문제라는 걸 인 식하고 있어요. 기후위기 활동가들의 주장은 일회용 빨 대 하나 안 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거잖아요. 아 주 거대한 인식의 전환과 실천이 뒤따라야 하는데 글쎄 , 그게 쉽게 될까요? 인류는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비하 는 존재잖아요. 애초에 모르고 살면 모르고 산다지만 그 맛을 알아버렸는데 멈추거나 거꾸로 가는 일은 생각보 다 쉽지 않을 거로 생각해요. 그게 참 문제예요. 

불에 탄 지구본도 그렇고 사진 속에 등장하 는 물건은 어떻게 만나게 된 것인가요?
다 우연히 만나게 되죠. 일부러 찾아 나서면 절대로 만 날 수 없거든요. 대부분 누가 버린 건데 길에서 만나면 뛰어가서 가지고 오고 그래요. 첫눈에 반한다고 하잖아 요. 물건도 그래요. 반짝거리지도 않고 값어치도 없는데 길 위에서 애틋한 눈길을 보내는 것들이 있어요. 늘 보 던 건데 그날따라 다르게 보이는 경우도 있고요. 그날 내 심정이나 기운, 날씨 같은 게 함께 작용하면 그래요.

 

Koo Bohnchang, Color Box 08, 2005

Koo Bohnchang, Color Box 27, 2005

Koo Bohnchang, Untitled, 2007

그 물건은 바로 카메라 앞에 서게 되나요? 아니면 몇 날 며칠 두고 보나요?
바로 찍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작업실 한쪽에 두 고 이렇게 계속 보죠. 관찰해요. 그러다가 어느 날 내 마 음이 다시 움직일 때 촬영을 해요. 어떤 건 1 0년째 보고 있는 것도 있답니다.(웃음) 

버려진 물건이 작품이 되는 순간이네요.
작가는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걸 끊임없이 들여다보 고 그 안에서 새로운 걸 발견해내는 사람이에요. 그런 눈썰미와 태도가 필요해요. 고된 일이지만 그게 작품 하 는 맛이죠. 사람들이 공감해준다면 신이 나고요. 

잡지 에디터에게도 필요한 태도가 아닐지, 그런 생각이 드네요.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개인 작업도 하지만 매체 작 업도 많이 했으니까 잡지의 시스템도 잘 알아요. ‘그린 얼루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환경을 보호하자는 의미 없는 외침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식상하잖 아요. 매년 진행하는 거라면 좀 길게 보고 가는 장기적 인 프로젝트를 진행해도 좋지 않을까요? 뭐가 될진 모 르겠지만 그런 게 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잖아요. 

잡지를 말할 때와 작품을 말할 때의 표정이 나 태도가 달라요. 잡지를 좋아하시죠?
잡지처럼 매력적인 매체가 또 없죠. 요즘은 디지털도 중 요하겠지만, 인쇄물이 주는 대체 불가능한 힘이 있잖아 요. 한 장 한 장 넘겨 보는 그 행위가 특별하다고 생각해 요. 매달 많은 사람에게 보이고 리액션을 확인하는 건 아주 큰 자극이 되잖아요. 국내외의 좋은 잡지를 버리지 못하고 아직 모아두고 있고요. 전에도 잔소리처럼 말했 겠지만, 버리고 싶지 않은 잡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죽어 있는 페이지가 있으면 안 돼요. 

‘죽어 있는 페이지’를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외 전시나 여행을 통해 얻는 영감도 상당 할 텐데 요즘은 어떠세요?
그러니까 답답하죠. 지금 중국에서 큰 전시가 있는데 갈 수가 없으니 안타까워요. 전시장도 둘러보고 전시를 본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가 없어졌으니 재미가 없죠. 줌 같 은 영상 통화로 뭘 하긴 하는데 내 성에는 안 차고요. 

 

Koo Bohnchang, Untitled, 2019

Koo Bohnchang, Untitled, 2007

Koo Bohnchang, Untitled, 2007

요즘은 뭘 하며 지내세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그동안의 작업과 자료를 정리하면서 스스로를 다시 캐낸다고 할까요. 인 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으로 소통을 하기도 해요. 소셜 미디어가 불필요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난 좀 달라요. 잘 사용하면 다양한 세계의 사람들을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되더라고요. 흥미로워요. 바깥으로 다닐 때 느끼는 재미 나 자극과 또 다른 걸 느끼고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며칠 전에는 소셜 미디어에 비무장지대에서 발굴한 전쟁 유품을 담은 시리즈와 함께 ‘ No More War!’라고 올리셨더군요.
참담해요. 무고한 사람이 죽고 다치는 전쟁은 반대해요 . 아주 나쁜 거라고 생각해요. 막 화가 나더라고요. 내 방 식대로 목소리를 내고 싶어서 그렇게 한번 올렸어요. 작 은 목소리이겠지만 주변 동료들이 공감해주기를 바라 는 마음에서요. 같은 하늘 아래 그 참상이 벌어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견딜 수 없이 슬프더군요. 인 생이라는 게 왜 이렇게 전부 모순 덩어리인가 허탈한 심정이에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모순된 인간의 삶을 작업으로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끊임없이 고민하고 질문하고 찾아내는 것처 럼 보이네요. 그게 작가의 삶이겠죠?
이제 내가 일흔이 다 되어가는데 어떤 면에서는 두려운 게 없어요. 내 안에 확신이 있다면 끝까지 밀어붙여야 죠. 아직 지치거나 식지 않았어요. 

이 생크림 케이크는 조금만 드셔야 할 것 같 은데요?
글쎄, 단것을 좋아하는데 이제 건강을 조심하긴 해야죠 . 아직 정리해야 할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그 래도 뭐 때가 되면 떠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그 것도 잘 준비해야겠죠. 호텔 체크아웃 일정은 내가 선택 할 수 있지만 죽음은 그게 아니잖아요. 언제 체크아웃 당할지 아무도 몰라요.(웃음) 그러니까 그날그날 열심히 사는 게 최선인 것 같아요. 좋은 생각을 많이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