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경수진
경수진은 진짜의 힘을 믿는다. 어디 한번 끝장을 볼 생각이다.
촬영 시작 전부터 끝날 때까지 소속사 관계자가 돌아가면서 방문하는 건 오랜만이네요. 아이돌급의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나봐요?
뭐 그렇다기보다는 제가 빨리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여러모로 애써주고 계십니다.(웃음) 덕분에 힘이 나죠. 어떻게 보면 제 가족이라 할 수 있잖아요. 고맙죠.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지지받고 있다는 느낌은 괜히 든든한 법이죠.
맞아요. 팬들의 사랑도 감사하고 중요하지만, 저와 함께하는 스태프들이 저를 사랑으로 대해주고 있다는 걸 느낄 때 행복해요.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곤 해요.
원래 성향이 그런 편인가요?
현실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요. 제 우물 안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항상 견제해요. 그건 경수진이라는 개인의 인격과도 관계 있지만 배우의 진정성과도 연결되거든요. 배우는 내가 아닌 남을 이해하는 직업이에요. 그러려면 끊임없이 보고, 배우고, 관찰해야 해요. 그런데 정작 저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가까운 사람들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건 모순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들의 도움과 사랑, 피드백이 필요해요. 그 관심이 저를 성장시키거든요.
화보 촬영 현장에서는 첫 컷이 중요해요. 그 순간의 선택이 끝까지 가니까요. 모니터를 확인하고 자기 생각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어요.
제가 원래 꿍해 있는 걸 못 해요. 오늘만 그런 건 아니고 평소에도 제 의견을 사심 없이 말씀드리는 편이에요. 우리가 함께 작업하는 거잖아요. 조명이든, 옷이든, 포즈든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조율해가면서 확실히 결과가 좋아진다고 믿어요. 소통의 힘이죠.(웃음)
<나 혼자 산다> 출연 이후 경수진의 재발견이라 해도 좋을 만큼 많은 관심을 받고 있죠. 어때요?
출연하기까지 망설인 부분이 없지 않아요. 두렵기도 했어요. 우선 대중들이 배우 경수진에 대해 어떤 이미지나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어요. 아마 제 작품 중 <상어>나 <적도의 남자> 속 인물처럼 첫사랑의 아련한 이미지를 가지고 계신 분이 많았을 거예요. 털털한 진짜 제 모습을 보여드리는 일이 걱정된 건 맞아요. 결과적으로는 덕분에 많은 관심을 받게 됐으니까 행복하죠. 감사하고요. 인스타그램 팔로워도 엄청나게 늘었어요.(웃음)
치열하게 준비한 작품에 출연했을 때보다 공개적인 집들이에 대중이 더 반응한다는 사실은 어때요?
세상이 달라진 거죠. 배우는 연기만 잘하면 된다는 전통적인 가치관도 여전히 유효하지만 한편으로는 엔터테이너의 역할도 해야 하는 세상이 된 거예요. 저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다양한 경험을 하는 건 배우에게 꼭 필요한 일인데, 그런 활동이 스펙트럼을 넓혀준다고 믿거든요. 사람들이 저의 밝고 진취적인 모습을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어요. 앞으로의 작품 선택, 캐릭터, 이미지에 대한 방향을 그려나갈 때 도움이 될 거라 믿어요.
오늘 촬영은 또 다른 도전을 한 셈이네요. 최근에 획득한 밝고, 건강하고, 진취적인 이미지도 좋지만 당신의 인스타그램을 보는데 아무 표정을 짓지 않은 얼굴도 좋아 보였어요. 언뜻 서늘한 느낌마저 드는 그 얼굴이 궁금했죠.
이렇게 촬영하는 건 처음이에요. 사람의 얼굴은 가늠할 수 없어요. 딱 하나로 단정 지을 수도 없고요. 제 직업은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어필해야 하고 다양한 모습을 선보여야 하잖아요. 인스타그램에서 보신 밝게 웃는 얼굴, 슬퍼 보이는 얼굴, 서늘한 얼굴, 다 저의 진짜 얼굴이죠.
평소 미술, 음악, 영화 같은 문화나 예술에 관심 두는 편인가요?
당연히. 사람이 살아가면서 경험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에요. 생활 패턴도 거기서 거기인데 배우는 그 폭을 넓힐수록 도움이 돼요.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 음악, 전시를 가리지 않고 보고, 듣고, 생각하려고 하죠. 그건 꼭 필요한 공부예요. 좋은 걸 느끼고 마음껏 해석하면 돼요.
최근에 본 인상 깊은 전시는 뭐죠?
권철화 작가의 <탱고>라는 전시가 좋았어요. 전부터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마침 개인전을 하길래 다녀왔죠. 주로 사람의 얼굴이나 육체를 드로잉으로 표현하는데 제가 몸의 선에 관심이 많아요. 지문처럼 모든 사람의 선은 전부 다른데 저마다의 다른 삶이 그렇게 드러나는 거겠죠. 또 제 친구가 <살다, 꽃처럼>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했어요. 사람의 일생을 꽃에 비유한 작업을 선보였어요. 꽃이 피고 지는 일도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과 닮았잖아요.
권철화 작가의 드로잉은 어둡고 거칠죠. 고통이나 우울함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런 마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경험이 쌓이면서 배운 게 있다면 이제 어느 정도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된 점인 것 같아요. 슬픔이나 화,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게 하는 나름의 방식도 알게 됐고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쌓였을 때 걷어내는 법도 알게 됐죠. 슬픈 감정이 쌓이면 울고 싶잖아요. 그럼 저는 그냥 울어버려요. 참지 않고요. 감정의 끝을 봐야만 해요.
당신이 말하는 경험은 나이와 상관 있을까요?
저는 나이나 성별을 기준으로 뭘 생각하거나 판단하진 않아요. 그건 잣대가 될 수 없어요. 언젠가 어떤 방송에서 김완선 선배님이 그러셨거든요. ‘나이 어리다고 무시하지 말고 나이 많다고 무조건 존경하지 말라’고요. 10대 청소년이 저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해서 현명한 순간도 있을 거고, 나이는 많지만 경험과 깨달음이 부족할 수 있어요. 세상은 늘 둘 중에 하나만 고르라고 하잖아요. 정답은 없어요.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주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있어요. 어느 쪽인가요? 던져놓고 보니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질문이네요.
저는 그냥 유쾌한 사람이에요.(웃음) 제 이야기를 많이 할 때도 있고, 또 어떤 날은 친구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 날도 있죠. 대화라는 건 주고받는 거니까요.
최근 몸도, 마음도 잘 먹고 잘사는 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요. 마음먹기에 따라 아주 심플한 일이지만 어쩌면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을 동시에 해요.
저도 관심 많아요. 저는 심플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사람을 아주 크게 보면 두뇌와 육체로 나뉘어 있잖아요. 그 둘은 떨어져 있지만 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영향을 주고받아요. 저도 전혀 몰랐던 고통이 제 안에 머물러 있을 때도 있을 거예요. 깊숙한 무의식에요. 요가나 명상, 걷기 같은 운동을 통해서 무의식에 쌓여 있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어요. 두뇌든 육체든 한쪽을 풀어주는 거죠. 운동이 아니더라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자기만의 방법을 아는 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것만 알아도 인생은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어요.
오늘 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묻지 않았죠. 2019년에는 tvN의 단막극 <개 같다 거지 같다 아름답다>와 TV조선의 <조선 생존기> 2편의 작품에 출연했어요. 하고 싶은 말 있어요?
2편의 드라마를 떠올릴 때 느껴지는 감정은 좀 달라요. 당연히 그렇겠죠. 일단 아쉽다는 마음이 먼저 들긴 하네요. 배우로서 좀 더 많은 모습을 보여드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다는 뜻이에요. 그건 늘 그랬던 것 같아요. 2020년에는 작품도 많이 하고 오늘처럼 화보를 통해서 자주 얼굴을 비추고 싶어요.
아까 지나가듯 ‘대표작이라고 내세울 만한 게 아직 없는 배우’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넘어가지 않고 남았어요. 경수진 씨는 지금 어디까지 왔어요?
글쎄요. 전에는 지금보다 욕심이 많았거든요. 결국 진짜 나다운 걸 찾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대중들은 진정성을 바라는 것 같아요. 조금 부족한 면이 있더라도 그걸 감추기보단, 거짓 없이 드러낼 때 더 많은 사랑과 응원을 아끼지 않으시죠. 어디까지 왔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건 알아요. 그러니 앞으로의 경수진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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