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플라잉은 아직 다 날지 않았다. 진짜는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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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는 마가린 핑거스(Margarin Fingers). 바지와 목걸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부츠는 앤더슨 벨(Andersson Bell). 모자는 자라(Z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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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는 블라인드니스(Blindness). 바지는 소잉 바운더리스(Sewing Boundaries). 목걸이는 포트레이트 리포트(Portrait Report).

아침에는 뭘 했어요?
승협 계획은 오전에 운동할 생각이었는데 일어날 수가 없었어요. 어제 하체 운동을 너무 열심히 했나 봐요.
회승 오랜만에 푹 잤어요. 눈뜨니까 스튜디오에 와 있더라고요.(웃음)
차훈 저는 일어나자마자 분리배출을 했어요. 멤버들과 같이 사는데 각자 쓰레기는 각자가 버리거든요. 제가 탄산수를 좋아해서 물병이 어마어마하게 나와요.
재현 요즘 낮과 밤이 바뀌어서 해 뜨는 걸 보고 잘 때가 많아요. 오늘도 잠이 안 와서 애매하게 자다가 나왔어요.

오는 길에 이제 1년이 다 갔다는 걸 알았어요. 아직 10월이지만 오늘 대화는 11월호에 담기는 거니까 더 그래요.
승협 그러게요. 저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방금 하신 말 듣고 알았어요. 제가 워낙 하루살이처럼 살아서요.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연말이라고 특별한 기분이 들진 않아요. 1월이든 11월이든 같아요.
회승 저도 마찬가지예요. 지금은 힘껏 앞으로 달리는 중이거든요. 달리기하면서 뒤를 돌아보면 안 되잖아요. 지금 딱 그래요.
차훈 그래도 지난 1년을 돌아보는 건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재현 맞아요. 개인적으로 내년이 천천히 왔으면 좋겠네요. 나이 먹는 일이 싫거나 두렵진 않은데요. 2019년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더 많이 느낀 다음, 2020년을 맞고 싶어요. 아직은 좀 부족해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싶어요?
재현 저도 그렇고, 엔플라잉 멤버나 팬들이 행복한 감정을 느끼면 좋겠어요. 2019년의 공연 목록이 더 채워지길 바라고요.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올해를 돌아봤을 때 아쉽지 않을 만큼이요.

올해의 기억 중 저장하고 싶은 순간이 있어요?
승협 엔플라잉에게 의미 있는 해예요. ‘옥탑방’이라는 노래가 뒤늦게 잘됐잖아요. 저희를 알아봐주셔서 덕분에 월드 투어도 시작했어요. 각 나라에 계신 팬을 직접 만났다는 게 가장 소중하죠. 이제 시작이에요. 앞으로 계속, 자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재현 저는 드러머잖아요. 무대 맨 뒤에 제가 있어요. 열심히 연주하고 노래하는 멤버들의 뒷모습과 환호하는 객석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건 저밖에 없어요. 지금 그 순간이 사진처럼 떠올랐어요.
차훈 제 롤 모델 중 한 명이 건즈 앤 로지스의 기타리스트 슬래쉬예요. 올해 그가 섰던 무대에서 저희도 공연했거든요. 한국의 예스24라이브홀과 일본의 스튜디오 코스트요. 묘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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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은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니트와 다리의 액세서리는 모두 카이(Kye). 바지는 디스퀘어드2(Dsquared2). 신발은 나이키(Nike).

2015년 데뷔 후 간절히 원하던 순간이었을 텐데, 막상 마주하고 나니 어때요?
재현 벅차요. 많은 분들의 관심이 과분하다는 생각도 하고요. 원래 열심히 하려는 마음은 컸고, 나름대로 잘해왔다고 생각하는데 ‘옥탑방’이 변곡점이 된 것 같아요. 상황이 좀 달라지니까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걸 많이 깨닫는 중이에요.
회승 사랑받고 있다는 걸 잘 체감하지 못할 때가 많아요. 팬들을 만나야 느낌이 와요.
승협 자꾸만 잘됐다고 해주시지만 이제 주목받았다는 말이 더 맞아요. 아직은 부족하죠. 더 욕심이 나요. 엔플라잉이라는 밴드가 전 세계를 돌면서 함께 공연하는 일, 공연을 마치고 모여서 맛있는 음식 먹는 게 꿈이었는데 올해 그게 이뤄졌어요. 놓치고 싶지 않고, 더 잘되고 싶어요. 요즘 작업실에 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어요. 야망이 커졌어요.

그 야망은 어떤 종류일까요? 좀 세속적인 편이기도 해요?
승협 어쩌면 그럴 수도 있고요. 엔플라잉이라는 이름이 밴드로서 확실히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자신감과 확신이 느껴지는 말투네요.
승협 회사와 스태프가 저희를 많이 믿어주세요. 저희가 좀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기회도 주시고요. 기분이 좋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요. 자신감이 많이 생겼죠.
재현 저나 훈이나 악기를 연주한 지 이제 10년이 넘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안주하거나 게을러질 수 있는 시점이에요. 그런데 누군가 ‘잘한다 잘한다’ 했을 때 신나는 거 있잖아요. 지금 그래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죠. 회사나 스태프의 믿음이 고맙고, 그 신뢰를 깨뜨리고 싶지 않아서 더 열심히 공부하게 돼요.

노래하는 사람은 어때요?
회승 저는 항상 스펙터클해요.(웃음) 노래라는 게 제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거든요. 주변 환경이나 제 컨디션에 따라 변수가 많이 생겨요. 항상 도전이고, 항상 돌파해야 하는 순간과 만나요. 스트레스와 재미가 공존한다고 할까요?
승협 회승이를 향한 저희의 신뢰는 명확해요. 아마 <얼루어>가 나올 때쯤, 어떤 방송에서 혼자 노래하는 회승이를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 무대를 보면서 정말 기뻤어요. 자랑스러웠고요. 아직은 비밀이에요.
회승 노래에 대한 욕심은 커요. 모든 무대를 다 완벽하게 해낼 순 없으니까, 늘 아쉬움이 남아요. 더 잘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노력하다 보니까 지금의 제가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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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협이 입은 옷은 모두 김서룡(Kimseoryong). 부츠는 앤더슨 벨. 회승이 입은 니트는 앤 아더스토리즈(&Other Stories). 바지는 김서룡. 신발은 로스트가든(Lostgarden). 재현이 입은 재킷과 바지는 모두 엠프로파(Mpropa), 셔츠는 채뉴욕(Chaenewyork). 신발은 손신발(Sonshinbal). 차훈이 입은 옷은 모두 김서룡. 부츠는 닥터마틴(Dr. Martens).

책이 나올 때쯤이면 엔플라잉의 여섯 번째 미니앨범 <야호>도 세상에 나왔겠네요. 타이틀곡이 ‘굿밤’이죠?
승협 맞아요. 이번에 월드 투어 다닐 때 호텔 방에서 만든 곡이에요. 야경이 참 예쁜 도시였는데, 창밖으로 그 풍경이 내다보이는 방이었어요. 그 밤이 아쉽더라고요.

밤의 종류는 참 많기도 한데, 밤 시간을 좋아해요?
차훈 밤을 좋아한다기보다 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에요.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 비 오는 날 어둑한 오후예요. 밖에 나가지 않고 보송보송한 상태로 바깥의 비를 볼 때요.
회승 해가 떠 있는 시간을 더 좋아해요. 그때의 기분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작 제가 좋아하는 걸 하는 시간은 대부분 밤이네요.
승협 ‘굿밤’ 가사 내용이 아쉬운 밤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저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햇볕도 좀 쬐면서 움직이는 걸 좋아해요. 밤에는 늘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하루를 잘 보낸 건지 뭔지 너무 피곤해서 빨리 잠들고 싶은데, 또 자기 싫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어요.

가을은 익어가는데 요 며칠 엔플라잉의 ‘봄이 부시게’를 실컷 들었어요. ‘엔플라잉의 음악은 두고 봐야 아는구나’라고 생각했죠. 자신들의 음악을 규정할 수 있어요?
승협 아직이요. 진짜 엔플라잉의 음악은 이제부터 시작이거든요. 이제야 진짜 우리 음악을 하게 됐어요. ‘엔플라잉스러운 것’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규정이라는 건 저희가 할 일이 아니라, 듣는 분들이 해주실 거로 생각해요.
회승 저도 뭐라고 규정할 순 없지만, 음악이라는 기록물을 남긴다고 생각하면 제 자신이 자랑스러울 때가 있어요. 잘된 음악이든 망한 음악이든 그게 역사로 남는 건데,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거요. 혹시 모르죠, 22세기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듣고 있을지도요.
재현 심리치료사. 엔플라잉의 음악이 누군가에게 심리치료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차훈 실제로 어떤 심리치료사의 사연을 받았는데, 저희 음악을 치료에 사용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위로가 될 수 있는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음악의 힘을 믿거든요.

엔플라잉은 밴드죠. 갑자기 당신들이 휘젓고 있을 라이브 공연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승협 자신 있어요. 밴드는 라이브죠. 11월 23일, 24일에 부산에서 공연해요. 바쁘시겠지만 놀러 오세요.
재현 라이브는 밴드의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저희의 가장 큰 프라이드이기도 하고요.
차훈 엔플라잉을 확실히 규정할 수 있는 건, 우리는 라이브 밴드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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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은 엠프로파. 이너로 입은 티셔츠와 바지는 모두 포저(Poszer).

라이브를 할 수 없는 환경도 있잖아요. 특히 연주자는요.
재현 음악 방송은 아예 못하죠. 저는 핸드 싱크도 좋아해요. 라이브와 전혀 다른 장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이런저런 도움도 돼요.
차훈 처음에는 어색하고 민망했어요. 연주하는 척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마음을 좀 다르게 먹은 게, 제가 녹음한 걸 들으면서 무대에 서 있는 거잖아요. 어차피 제 연주인 거예요. 요즘은 라이브를 할 때나 핸드싱크할 때나 상관없이 그냥 똑같이 연주해요. 선만 연결되면 바로 라이브가 가능해요.

오늘 밤에는 뭐 할 거예요?
승협 아침에 못한 운동을 밤에라도 해야 될 거 같아요. 운동하면 스트레스가 풀리거든요.
재현 무슨 일이 있어도 방 청소를 해야 돼요. 지금 초토화 상태예요.
차훈 저희 다 모여서 합주해야죠. 무조건 해야 돼요. 그거 끝나면 여느 때처럼 유튜브로 고양이 영상 보고요.
회승 그럼 저는 합주와 운동을 마치고, 그냥 푹 쉴게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