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더’로 연애하기

멜로가 체질인 사람도 있다던데 데이팅 앱이라고 체질을 안 탈까. <얼루어> 에디터들이 직접 써본 후 전하는 생생한 틴더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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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Stranger

태어나보니 디지털 네이티브였고 이를 혜택인 양 실컷 누렸다. 초등학생 때부터 온갖 메신저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를 즐겼고 취미는 랜덤채팅, 특기는 문자친구 사귀기였다. 그러니 틴더를 깔게 된 것은 핸드폰을 사자마자 카카오톡을 설치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뚜렷한 목적 없이 재미로 SNS를 하듯 내게는 데이팅 앱이 그랬다. 특정한 관계를 원하지 않더라도 낯선 사람과(그것도 나에게 암묵적 관심이 있는 사람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으니까. 틴더를 이제 막 시작한 사람이 지치는 첫 번째 단계는 반복되는 대화 패턴이다. 하지만 대화는 하기 나름. 뻔한 인사치레는 생략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경제적이다. 본론은 그때그때 달랐다. 지난 연애 이야기나 가까운 사람에게는 말하지 못할 고민을 털어놓는 일도 많았고 운이 좋은 날에는 공통 취미를 가진 사람과 밤새워 영화나 책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함정이 있다면 다섯 명 중 적어도 세 명은 음담패설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 어차피 그들의 대부분은 유치하고 지루하다. 휴, 아무 이유 없이도 매칭을 취소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물론 대화만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의 인연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현재의 나는 틴더로 만난 대여섯 명의 사람과 친구로서 연락을 이어가고 있고 지난날에는 두 명의 사람과 연애를 했다. 각각 일년 반, 반 년 정도를 만났는데 주위에서 걱정했던 것과 달리 연애 중에 상대가 몰래 데이트 앱을 하는지 의심하게 되는 일은 없었다. 서로 상대가 신경 쓰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익명의 상대를 실제로 만나는 일이 무섭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심지어 나와 만난 익명의 누군가조차 왜 이렇게 겁이 없냐며 걱정해준 적도 있다. 겁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다. 나는 이제 낯선 사람이 두렵지 않으니까. 지난 인연을 돌이켜보건대 누군가에게 소개를 받았거나 자연스러운 만남으로 가까워졌거나 결국 모든 사람은 낯선 사람으로 시작해 낯선 사람으로 끝났다. 그를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는 순간 그는 세상에서 가장 낯선 사람이 되었다. 아주 오래 본 사이든 미지의 익명이든 어차피 알 수 없는 사람으로 그치고 만다면 나는 이제 쉽고 빠르게, 가볍고 재미있는 인연을 택하겠다. 그렇게 오늘은 퇴근 후 감자탕에 소주를 마실 사람을 찾기 위해 스와이핑한다. 낯선 사람이라면 더 좋겠다.
– 정지원(<얼루어> 에디터)

아무래도 불편해

TV를 켰는데, 이상한 광고가 나왔다. 취향이 같은 새로운 친구를 찾으라나 뭐라나. 틴더 앱이었다. 유학 시절부터 외국에서 꽤 핫했던 데이팅 앱. 틴더가 우리나라 문화에 맞게 전략적으로 광고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처음 이를 보았을 땐, 절레절레 고개가 저어졌다. 나는 어쩌면 소개팅 앱 또는 데이팅 앱이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건지도 모른다. 굳이 원하면 지인을 통해 1차적으로 검증된 사람을 소개받으면 된다고 여겼으니까. 그런데 최근 지인들을 통해 30대 이상의 커플들이 틴더를 통해 만나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가 하면 틴더 앱으로 누군가를 만났던 일화를 스스럼없이 공개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접하면서 내 생각에도 점차 변화가 생겼다. 약간의 호기심이 생겼다고나 할까? 다른 이를 귀찮게 하지 않으면서(실제로 솔로 친구들의 새로운 만남을 주선해달란 요청에 많은 내 지인들은 고통 받고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신세대적인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다른 소개팅 앱처럼 ‘얼평’ 등의 제한이 없기도 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친구를 만들 수 있다거나 정말 운이 좋다면 운명의 상대를 만날 수도 있겠다는 그런 상상을 잠시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역시는 역시였다. 나는 살아오면서 익명의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이 없는 인간이었다. 틴더 앱을 다운받아 사람들과 이야기하길 수차례. 대화가 몇 번 오가지도 않은 채로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는 끊기기 일쑤였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아니 하고 싶지 않았다는 표현이 정확할 거다. 익명으로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은 내게 익숙한 일이 아니었으며, 떨리고, 더 나아가 무섭기까지 했다. 신상이라도 털리면? 누가 나를 알아보기라도 한다면? 정작 만난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라면?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나는 마음을 열기도 전에 대화를 끝냈다. 어느 누군가는 모르는 이와의 대화가 부담이 없어 편하고 재미있다고 했지만 내겐 정반대였던 것. 그러던 중에 한 동호회 관련 괴담을 들었다. 지인의 친구는 러닝 클럽을 통해 동호회 활동을 했다. 모인 사람들 중 한 명이 관심을 표했는데, 나중에 우연히 알고 보니 성범죄자였던 것. 사실 우리는 연락을 주고받은 이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 또한 그들이 친절히 스스로를 소개한다고 해도 믿을 수 없는 관계밖에 되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과 만난다는 게 낯설고 겁이 난 이상, 한번쯤 누군가를 만나볼 수도 있겠다던 생각이 쏙 들어갔다. 아직은 낯선 이와의 만남이 재미있기보다는 겁나고, 편안하기보다는 부담스럽다.
– 김민지(<얼루어> 에디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낯선 사람을 단순히 사진 몇 장, 설명 몇 줄만 보고 판단하고 만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라는 의문이 틴더에 대한 나의 지배적인 견해였다. 또한 이성친구를 틴더에서 만나 사귀고, 결혼까지 골인했다는 이야기는 전설 속의 영웅담처럼 실체가 없는 이야기일 거하고 확신했다. 주변에도 연애 앱을 이용하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잘 믿지 못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 탓에 내게는 평생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내가 틴더를 사용하게 된 이유는 충동적 호기심 때문이었다. 반복되는 일상과 똑같은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늘어만 가는 권태 속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하지만 호기로웠던 시작과 달리 남들의 사진을 책장처럼 넘겨가며 구경하는 일이 부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졌고, 한편으론 그 사진 속 남자들이 다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이 앱을 사용할 것이라는 불신의 마음도 싹텄다. 그러던 중, 내게 사용법을 알려주던 앱이 ‘슈퍼 라이크’라는 칸을 눌러보라고 유도했다. 뭔지도 모르고 클릭을 했더니 웬걸, 어떤 남자에게 엄청난 양의 하트를 날려버린 거였다.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그냥 앱을 종료했는데 몇 시간 뒤에 보니 슈퍼 라이크를 눌렀던 남자와 매칭이 됐다는 알림과 함께 그가 내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안녕하세요.’ 그 글씨를 꽤 오랜 시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실수로 벌어진 일이라는 걸 핑계 삼아 그와 대화를 시작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가워요.’ 그렇게 틴더에서의 첫인사를 시작으로 생각보다 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낯선 사람을 처음 대할 때의 불편함과 긴장감,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은근한 설렘이 나쁘지 않았다. 물론 그 대화는 얼마 가지 않아 끝이 났지만 나만의 상상 속에서 걱정하고 지레짐작했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의 편협한 시각과 주관적인 잣대로 쉽게 이런 대화와 만남을 속단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 잘 모르는 사람이기에 불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익명성이 주는 편리함도 있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에겐 하지 못하는 고민과 푸념을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실제로 그런 대화들이 나의 일상 속에 작은 환기가 되기도 했다. 아직은 이곳에서 누군가와 만날 용기는 나지 않지만 그래도 이 공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많이 덜어졌다. 혹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한번 해볼 만한 경험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시작과 끝의 무게가 항상 같은 건 아니고, 우리는 아직 서로를 잘 알지 못하니까.
– 이다솔(<얼루어> 에디터)

에디터
정지원
포토그래퍼
HYUN KYUNG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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