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함께 쓰실 분 구합니다
서로의 곁을 내어주기도, 적절히 침범하기도 하면서 ‘같이 또 따로’ 시간을 보내는 그들을 찾아갔다.
작업실 셰어는 룸 셰어만큼이나 흔하다. 요즘 도심 곳곳에 공유 오피스가 하나 둘 생겨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합리적인 공간 사용을 제안하는 공유 오피스도 좋지만, 누군가와 공간을 함께 쓴다고 했을 때 우리는 ‘내 집’ 같은 아늑함을 떠올린다. 유리창으로 햇살이 가득 들어오고, 공용부엌에는 집에서 쓰던 도구가 걸려 있는. 하루 중 가끔은 서로의 자리로 가 안부를 묻고, 함께 저녁을 먹는 그런 풍경들 말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윤예지, 윤미원, 김승환이 셰어하는 작업실에선 자연스러운 일이다. 홍대 산울림 소극장 근처 건물 4층.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앙증맞게 주차된 브롬톤 자전거와 작은 식물들이 반겨주었다. 그 옆으로 이어지는 아담한 부엌공간과 복도를 통과하면, 이들의 공간이 펼쳐진다. 윤예지 작가는 작업실 생활 7년 차로 가장 오래된 멤버다. 이곳은 원래 그녀 친구의 디자인 스튜디오 ‘로그프레스’의 사무실이었다. 지인 찬스로 한 자리를 맡아 쓰다가 스튜디오가 이사를 가면서 개별적으로 사람을 구하기 시작했다. 윤예지 작가가 이곳의 호스트인 셈. 셋 말고도 북디자이너 1명과 에디터 1명을 더해 총 5명이 이곳을 같이 쓰고 있다. 윤미원 작가는 북 디자이너와 책상을 나눠 쓰는 멤버로 월, 화, 목요일에만 작업실을 찾는다. 김승환 작가는 작년 <언리미티드 에디션(Unlimited-Edition)> 전시에서 두 작가와 인사를 나누다 자리 하나가 비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지막으로 합류했다.
작업실 공간 전체에는 빈티지 무드가 흐른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나무 바닥, 을지로 인쇄소 골목에서 볼 법한 지류함, 짝이 맞지 않는 나무 의자와 소파…. 일부러 만들어낸 건 아니다. “디자인 스튜디오와 작업실로 쓰이기 훨씬 전에는 인터넷 쇼핑몰 사무실이었어요. 그때 바닥, 창문, 가벽 등 전반적인 인테리어를 거의 다 했다고 들었어요. 저희는 따로 계획 없이 기존의 공간을 살리면서 선반이나 각자의 소품 정도만 더해서 쓰게 됐죠. 새로이 입주자가 들어올 때마다 더하거나 빼면서 조금씩 인테리어가 달라지는 정도예요.” 윤예지 작가의 설명이다. 곳곳에 유독 식물이 많은 이유는 기존 멤버가 퇴실하면서 두고 간 것과 이들이 입주하면서 키우기 시작한 것들이 더해져서다. 의도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이곳을 스쳐간 사람들과 시간의 흔적이 쌓여 만든 분위기는 꽤 조화롭다. 함께 써나가는 작업실의 매력이다.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묵묵히 작업에 몰두하며 보낸다. 저녁을 늘 같이 먹어서 메뉴 정하는 게 하루의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여유가 있는 날은 차를 타고 나가 맛집에 가고, 집에서 가져온 반찬으로 저녁을 해 먹는 날도 있다. 김승환 작가는 멤버들과 함께 따뜻하게 데워진 부엌에서 저녁을 먹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라고 꼽기도. 작업실을 함께 쓰는 즐거움 중 하나는 그런 온기를 나누는 순간일지 모르겠다. 작업실을 함께 써서 좋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일을 하다 막히는 지점이 있을 때 서로 의견을 들어볼 수 있고, 혼자 일하다 하염없이 늘어질 때면 멤버들의 일하는 방식이나 시간을 다루는 법을 보며 자극도 받는다고. 무엇보다 그림을 그리고 고민하는 일상의 일부를 전적으로 이해해주고 함께 나눌 동료가 가까이 있어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들은 ‘카페가 되기도, 일터가 되기도, 바가 되기도 하는 작고 큰 방(윤예지)’이자 ‘혼자 그림 그리는 중의 한 줄기 사회생활(윤미원)’이자 ‘창작을 위한 공간’(김승환)인 작업실에서 ‘함께’ 그리고 ‘각자’의 시간을 착실히 쌓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