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부터의 이상윤
이상윤과 인터뷰를 하는 동안 진정성과 노력, 고민이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등장했는지 모르겠다. 진지하고 반듯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상윤을 가두어버리기에는 우리는 아직 그를 너무 모른다.
요즘은 학교 생활에 열심이라죠?
작품 쉬는 동안 학교를 열심히 다녔어요.
학교를 다니고 있다기에 대학원일 거라 생각했어요. 얼마나 더 다녀야 ‘대졸’이 되는 건가요?
이제 한 학기 남았어요. 연기하면서 중간중간 한 과목씩 신청하고 듣다가 지난해와 올해는 꽉 채워서 들었어요. 이번 학기가 끝나면 졸업인데 드라마를 들어가게 되어서 좀 걱정이긴 해요.
어린 친구들이 나이 많은 연예인 선배를 어려워했을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좀 불편했겠죠? 다행히 조별 활동이 많아서 왕따는 아니었어요. 전공 중에 실험하는 수업을 듣고 있거든요. 조원들과 같이 밥도 먹고 회의도 하고 그래요. 물론 혼자일 때가 대부분이긴 하지만요.
연장자에게 조장을 강요하지는 않던가요?
제가 하면 큰일나죠. 조장은 실험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어린 친구들에게 양보하는 게 도리입니다. 하하.
전공이 물리학이죠? 워낙 전문적인 분야라 수업을 따라가기가 수월하지 않았을 것 같네요.
사실 현역 시절에도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못했어요. 시간이 너무 지나버린 데다 띄엄띄엄 하다 보니 수업을 따라가기가 정말 힘들더라고요. 반면 교양과목은 연륜과 노련함이 상당히 도움이 되었어요.
굳이 다시 학업에 복귀하고 끝마치려는 건 어떠한 의지 때문인가요?
학교를 졸업하는 건 부모님 그리고 저 자신과의 약속이에요. 저를 아는 많은 분이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을 하기도 했고요. 사실 고민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에요.지금이 배우 생활을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시기인데 다른 데에 시간을 쓰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에 대해서요. 하지만 쉬지 않고 작품을 하면서 저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 시간을 학업에도 쓰게 된 거죠.
새롭게 들어가는 주말 드라마 <내 딸 서영이>에서 또다시 엄친아가 되었다면서요?
네. 어떻게 하다 보니 또 엄친아예요. 그런데 이제까지와는 좀 달라요. 친절한 남자가 아니거든요. 남을 배려하기보다는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인물인데 그렇다고 예의가 없는 건 아니에요. 그야말로 진짜 남자예요.
상남자인 엄친아라니, 엄친아의 정점을 찍는군요.
아, 그렇게 되는 건가요? 이제까지 사건 사고가 많은 장르를 많이 하다보니 멜로는 부수적인 부분에 불과했어요.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멜로 연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내 딸 서영이>의 강우재 역할이 들어왔어요. 특이한 두 인물이 만나서 사랑을 하고 또 특이한 상황이 만들어지면서 감정에 변화가 생겨요. 3년 전과 현재로 시간이 나뉘면서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사랑을 표현해야 해요. 여자를 사랑하는 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저 역시 기대가 돼요.
상대역인 이보영 씨와의 호흡은 어떤가요?
아직은 같이 포스터 촬영밖에 못했어요. 계속 비가 와서 촬영이 늦어지고 있거든요. 워낙 연기를 잘하는 분이니 저만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아요. 내년 2~3월까지 방송되는 호흡이 긴 드라마인 만큼 제가 잘 맞춰가야죠.
‘엄친아’란 이상윤을 인식하게 한 수식어이지만 이상윤을 가둬버린 수식어이기도 해요.
맞아요. 그 수식어가 싫은 게 아니라 그걸로 저의 이미지가 한정되는 게두려워요. 그걸 벗어난 캐릭터 제의가 들어오기에는 배우로서 제가 가진 힘이 아직까지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아직 어떠한 힘을 보여주지 못해서 그런 거라 생각하고 그걸 깨나가려고 노력해요. 저만이 할 수 있는, 해내야 하는 숙제예요.
연예인을 꿈꾸는 끼가 넘치는 어린 시절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네 맞아요. 내성적인 편이었고 무리에 묻어가는 스타일이었어요. 내 일만 조용히 하는 그런 아이였는데 연기를 하면서 성격도 조금씩 바뀌었죠.
어떻게 바뀌었는데요?
아직도 낯을 가리는 편이고 처음 만난 사람과 활발하게 대화를 하지는 못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사회성이 많이 좋아졌어요. 사회적인 관계를 위해서 조금의 연기가 필요할 때도 있는데 그런 것도 어색해하지 않고 조금씩 익히게 되었고요. 조금 더 어른이 된 거라고 생각해요.
천생 배우의 느낌도 아니고 가지고 있는 재능이 많아서 처음부터 이 길을 확신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호기심이었어요. 길거리 캐스팅으로 광고 모델을 하게 되었고요. 마침 시간 여유가 있을 때라 경험 삼아 시작했죠. 남들 앞에서 뭔가를 하는 걸 싫어해서 낯설고 힘들었는데 언젠가부터 이상하게 제가 그걸 즐기고 있더라고요. 연기 수업을 받던 어느 날, 저도 모르게 확 빠져들어서 연기를 했는데 신기하게도 그때의 저를 본 친구, 선생님도 그걸 알아보더라고요. 그때 정말 짜릿함을 느꼈어요.아, 연기라는 걸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떠올리는 이미지들 중에 가장 멀리 있는 것을 찾아본다면요?
저는 그렇게 좋은 아들이 아니에요. 드라마에서 착한 아들 역할을 많이 해서인지 저를 효자로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외동 아들인데도 집에서는 좀 무뚝뚝한 편이에요. 집안일도 안 도와드리고 손 하나 까딱 안 하려고 하는 그런 아들이요. 그리고 책 읽는 걸 싫어해요. 집에서는 거의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봐요.
반대로 예상하는 이미지에 가장 부합하는 게 있다면요?
키가 커서인지 농구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은데 농구를 정말 좋아해요. 구기 종목은 다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농구를 좋아해요. 고등학교 친구팀, 연예인팀, 길에서 농구하다가 들어간 팀도 있어요.
그럼 운동을 하지 않을 때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건가요?
예전에 대학 다닐 때는 게임을 정말 많이 했어요. 학교 수업도 빠지고 할 정도였어요. 시간이 지나니까 너무 후회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적절히 조절하면서 하려고 하는데 게임이 중독성이 있어서 그게 좀 어려워요.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를 가장 많이 해요.
최근에 본 영화 중에 추천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얼마 전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다시 보다가 전율을 느꼈어요. 온몸에 소름이 돋더라고요.다시 보는데도 대사 하나하나가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시간이 꽤 지나서 영화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한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이상윤이라는 배우에게 대중이 기대하는 것, 당신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에는 거리감이 꽤 있죠?
착하고 바른 이미지를 보고 또 어떤 때는 그것만 보는 것 같아요. 배우로서 좀 더 어른이고 싶고 남자이고 싶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실제로도 제게는 많은 캐릭터가 있으니까요. 이제 30대에 들어섰고 20대와 40대와는 다른 30대의 남자만이 가질 수 있는 묵직하면서도 자유로운 매력을 보여주고 싶어요.
더 괜찮은 당신이 되기 위해 고민하는 게 있나요?
어른스러워지려고 해요. 사람들을 만날 때 웃는 얼굴로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하려고 하는데 자칫하면 그걸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좀 더 주관을 가지려고 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NO’를 잘 못하잖아요. 누군가 울면 울지 말라고 하는데 왜 울지 말라고만 해야 하나요? 울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마음껏 울어’라고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도덕적으로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잣대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좀 더 소신을 가지되 진심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어깨를 부대끼며 살고 싶어요.
연기를 하는 데 있어 느낌을 믿나요? 노력한 만큼의 결과물을 믿나요? 물론 후자인 것 같긴 해요.
그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안 되기도 해요. 깊숙이 들어가서 제대로 하려고 노력하고 인물, 상황, 대사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는데 어떤 때는 그게 불편할 때도 있어요. 그 대사와 상황은 그 인물의 감정이잖아요. 즉흥적으로 할 때가 필요한 순간도 있거든요. 공부하고 고민하는 것이 연기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저의 장점 중 하나라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과 또 다른 부분이 제게 필요하다는 생각도 해요.
연애를 하는 것도 더 괜찮은 당신이 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어떤가요?
여자친구를 만나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둘의 관계를 통해 배우는 게 많아요. 연기자로서 어른이 되고 그에 맞는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건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맡겨진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깊이가 더해진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또한 안정적인 연애를 하고 있다는 건 당신의 반듯한 이미지에도 든든한 한몫을 하고 있죠.
그럴 수도 있겠죠. 좀 더 떳떳하고 싶었어요. 서로를 좋아하고 만나는 게 잘못하는 것도 아닌데 감춰야 하는 게 이상하더라고요. 공개를 한 후에도 여전히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어쨌든 밖에서도 당당하게 만나고 편하게 지낼 수 있으니까 좋아요.
일상적인 하루의 일과 중에 가장 기다려지는, 마음을 다하는 순간이 있나요?
농구하는 거요. 열심히 뛰고 땀 흘리고 나서 깨끗이 씻고 잠들면 그 다음 날 정말 개운해요. 어떤 고민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는 기분이에요.
옷이나 술에 관심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용돈의 대부분은 어디에 투자하는 편인가요?
70%는 식비로 쓰고 있어요. 맛있는 거 먹는 걸 정말 좋아해요. 아무래도 데이트를 하다 보니까 더 많이 사 먹게 되는 것도 있고요.
배우를 하지 않았다면 뭘 하고 있을까요?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거나 유학을 갔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요즘 자연과학 분야가 힘들다 보니 많은 친구들이 치대대학원이나 의대대학원으로 방향을 바꿨어요. 물론 현실에 닥쳐보면 또 다른 결정을 내리게 될지도 모르지만 저는 계속 물리를 공부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당시에는 정말 물리가 좋았거든요.
연기를 하는 동안 이것만큼은 가져가고 싶다, 하는 게 있다면요?
진정성을 가지고 진심으로 하는 게 가장 먼저예요. 연기를 하면서 가끔씩 길을 잃을 때도 있었어요. 요즘도 가끔 외부적인 요소들 때문에 흔들릴 때가 있어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기 때문에 흔들릴망정 길을 벗어나지는 않아요. 그 다음에는 노력이겠죠. 연기를 정말 잘하는 선생님이 있는데 그 분이 말씀하시길 자신의 연기에 단 한 번도 만족한 적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노력을 멈춘다는 건 정지가 아니라 퇴보하는 거라고요. 자만심에 빠져서 노력하지 않게 되는 걸 가장 경계해요. 진정성이 바탕이 된 노력하는 배우, 이게 끝까지 가져가고 싶은 거예요.
머지않은 시간 내에 만나고 싶은 역할이 있나요?
작년부터 한 여자를 열렬히 사랑하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작품에서 그걸 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이번 역할을 잘 해내고 나면 다음에 만나고 싶은 역할이 생각날 것 같아요. 이 작품을 잘 끝내면 스스로 어떤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설레어요.
배우라는 영역 안에서 처음 생각하고 마음먹은 만큼 잘 가고 있나요?
배우라는 직업의 정점을 30대 후반 정도로 보고 있어요.지금은 그곳을 향해가는 과정이에요. 더 열심히 달리고 부딪혀야 하는 시점이에요. 달릴 수 있는 장은 마련된 것 같고 어떻게 달려나갈지에 대한 고민은 지금부터 시작이에요.
친한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진지하기만 한 건 아니죠?
친해지면 농담도 많이 해요. <개그 콘서트>에 나오는 유행어를 따라 하기도 하고요. 비슷한 것 같지는 않지만요. 근데 가까워질수록 장난도 많이 치고 배려를 안 하는 편이라 상대방이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요.
두 번째 만날 때는 제게도 농담을 해줄 건가요?
음 … 그건 고민 좀 해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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