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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A LIFE / 윤경호

화수분처럼 쏟아지는 윤경호의 언어는 인생의 여정을 찬란히 지나온 흔적이다. 

코트는 뉴인(Neu_In). 슈즈는 지미추(Jimmy Choo).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셔츠는 뉴인.

재킷은 자라(Zara). 안경은 생 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슈즈는 호간(Hogan). 이너 톱과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은 이아크(Earc). 셔츠는 뉴인. 슈즈는 지미추.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은 자라. 슈즈는 닥터마틴(Dr.Martens). 안경은 구찌(Gucci).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은 이아크. 셔츠는 뉴인.

유튜브 채널 <뜬뜬>에서 배우 김남길, 주지훈과 출연한 회차의 반응이 뜨거웠어요. 공개를 앞둔 작품도 줄줄이고요. 요즘 모두가 배우 윤경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어떤 기분인가요?
신나면서 한편으로는 무서워요. 저는 40년 넘게 안전속도를 준수해온 사람이거든요. 그런 제게 요즘은 ‘이렇게 달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빨라요. 1년에 한 번, 10년에 한 번 올까 말까한 기회가 단기간에 찾아와 행복하면서도 불안합니다.

‘유림핑’이라는 별명을 얻은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를 시작으로 2025년 확실히 가속이 붙었죠?
한번은 제가 우스갯소리로 소속사 대표님께 “요즘 머리에서 고무 타이어 타는 냄새가 난다”고 엄살을 부렸어요. 언젠가 그리워질 수 있으니 지금은 즐기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또 이런 생각을 해요. ‘그래, 내가 좀 천천히 가고 싶다고 마음먹었을 때, 정작 천천히 기회가 온다면 어떨까?’ 상상하면 또 덜컥 겁이 나요. 그래서 늘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당장 내일부터 내리막길일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을 돌려요.(웃음) 언젠가는 또 다른 누군가가 이런 속도와 즐거움을 누릴 것이고, 저는 그게 순리라고 생각해요. 저마다의 속도가 있고 기회의 총량이 있을 거잖아요.

요즘처럼 제안이 쏟아질 때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요?
가장 신날 때는 제 새로운 색을 꺼내줄 수 있는 시나리오를 만날 때예요. 정성스럽게 충분히 고민하고 답을 드리죠.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못하는 장르, 잘하는 장르가 있다고 스스로 규정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런 걱정을 하기에는 드라마 <자백>의 조기탁과 영화 <좀비딸>의 조동배라는 두 인물의 스펙트럼이 큰데요.
‘조기탁’ 같은 어둡고 강한 인물을 연기하는 희열과 성취감이 있지만, 사실은 재미와 웃음을 줄 때 오는 보람이 더 커요. 비교하기 애매하지만, 결이 다른 즐거움이고 일상 역시 밝아지거든요. 제가 처음 연기를 하려고 한 이유도 누군가에게 살아보지 못한 세상을 경험하게 하고, 세상은 살 만하다는 어떤 행복감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거든요. 재미와 웃음을 통해 그걸 전달할 수 있으니 요즘은 ‘호감’이라는 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를 실감해요. 그래서 좀 더 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제 롤 모델이 오맹달, 필립 시모어 호프먼, 로빈 윌리엄스 같은 배우들이거든요. 외모를 초월해 특유의 유쾌함과 친근함, 대중에게 만만한 따뜻함을 풍기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세 배우 모두 작품 안의 캐릭터를 현실에서 봤을 법한 인물로 풀어내는 능력이 뛰어나죠.
그러니까요! 그분들이 가진 특유의 심플함이 좋거든요. 오디션에 수없이 떨어지고 스스로 질문하며 깨달은 건 ‘나’라는 고유의 맛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작품 안에서 배우는 어떤 이미지로서 존재하는데 감독과 대중의 만족을 신경 써 뭔가를 가미하려 하면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연기가 나와요. 연기를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욕심을 내려놓고 정말 최소한의 재료로 맛을 내는 요리사가 되고 싶어요. 오가닉한, 음, 사찰 음식 같은 연기요. 물론 아직도 어려워요.

‘윤경호의 맛’을 찾았나요?
아직 찾아가고 있어요. 같은 조미료라도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다른 맛을 내듯, 내가 어떤 대사를 했을 때, 다른 배우가 할 때와는 다른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은 있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큰 아픔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거예요. 저와 같은 외모의 사람이 우는 게 낯설 수는 있겠지만, 슬픔에 대한 확실한 기억이 있으니 그 슬픔을 표현할 때 전해지는 묘한 연민이 있지 않을까 같은 기대를 품고 보여주려 하죠.

<메소드연기>가 얼마 전 개봉했고, 4월 개봉을 앞둔 <끝장수사> 외에 드라마 <취사병 전설이 되다> <김부장>과 영화 <남편들> <크로스2>까지. 감독님들이 윤경호를 찾는 걸 보면 그 맛이 좀 통하나 봐요.
감사하죠. 너무 감사하죠. 생각해보면 정말 뭘 해도 안 될 때가 있었거든요. 대학 시절, 한 친구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사흘 밤낮을 열심히 도운 적이 있어요. 지금처럼 상조 회사가 없을 때였어요. 장례가 끝나고 그쪽 부모님이 수고했다고 10만원씩 용돈을 주셨는데, 제가 받은 봉투에만 만원이 빠져 있는 거예요.(웃음) 장례 마지막 날 운구만 한 친구 봉투에도 10만원이 들어 있는데요. 당연히 실수셨겠죠.

그 실수가 하필이면!
하필이면 제 봉투에(웃음). 친구들보다 몇 곱절은 더 일했는데, 그 만원 비어 있는 게 당시에는 참 서운하더라고요. 어린 시절 유치했던 마음인데, 그렇게 뭘 해도 안 될 때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지금 이 사랑과 관심이 더 감사하고 믿기지 않아요. 정말 이게 저로서는 신기한 현상이거든요. 말이 많다는 건 늘 흉으로 여겨졌고, 그래서 아내에게만 얘기했는데, 이 모습마저 좋아해준다고 하니까요.

여전히 이 일이 설레고 궁금한가요?
특히 저를 새롭게 써주는 대본을 마주했을 때 가장 설레요. 빨리 현장이 열려 대사와 표정, 사건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맞닥뜨리고 싶어요. 그 과정이 쌓이면서 내가 가진 색이 흑백에서 삼원색으로, 그 안에서 또 다른 색으로 확장되는 걸 느꼈거든요. 배우의 색을 찾아낼 기회는 창작자의 창의력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최근 가장 큰 희열과 성취감을 느낄 때는 언제였나요?
얼마 전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초등학교 2학년 학생에게 편지를 받았어요. 또박또박 쓴 글씨로 ‘경호 삼촌 사랑해요. <좀비딸>에서 최고였고 저도 꿈이 배우예요. 존경해요’라는 내용이었는데 벅차더라고요. <도깨비>가 끝나고 카페에 갔을 때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어요!”라며 조각 케이크를 선물해주신 분도 기억에 남아요. 결국 픽션인데, 그걸 간접 경험하고 즐기는 게 느껴졌거든요. 그런 순간들은 콤플렉스에 가려 차마 내비칠 수 없었던 제 꿈이 이뤄진 선물 같은 기억이에요. 사람들이 일상의 짐을 내려놓고 작품을 마주했을 때, 휴식을 줄 수 있는 연기를 하는 광대가 되고 싶어요. 영원히, 오랫동안요. 그러려면 잘 행동해야죠. 별 탈 없게.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죠?
고치고 싶어도 잘 안 고쳐지는 제 어떤 면이에요. 걱정과 잡생각이 많아요. 그 덕분에 연기 생활 내내 돌다리를 여러 번 두드리며 건널 수 있긴 했죠. 걱정과 불안이 사라질 때까지 완벽하게 하고 싶으니까요.

과거에는 크게 걱정했지만 이제 더 이상 걱정하지 않는 것, 또 새롭게 걱정하는 게 있나요?
늘 걱정은 많아요. 사주에 재물이 줄줄 샌대요. 물론 전보다는 풍요로워졌지만, 여전히 먹고사는 것에 걱정이 있어요. 저희 일이 정규직이 아니라서 그런 불안감은 늘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뜻하지 않은 상황에 사람들의 관심으로 인해, 혹은 오히려 관심과는 다른 측면에서 비난의 대상이 될까 봐 늘 마음 졸이죠.

벌써 마음을 졸인다고요?
어떤 영화 속에 나온 대사처럼, 불은 우동 면처럼 ‘뚝!’ 끊기지 않고 국수 가락처럼 길게 사랑받고 싶어요. 아주 탱탱한 국수 가락처럼, 쫙~ 늘어나고 싶어요. 근데 지금 제게 주시는 사랑이 혹시 불은 우동면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요? ‘국수라고 생각하자’ ‘국수라고 생각해야 돼’ 하면서도 ‘우동은 아닌가?’ 이런 생각이 항상 찾아오죠.

오늘 촬영 중 스칼렛 플레저(Scarlet Pleasure)의 ‘What A Life’를 재생해달라고 했어요. 영화 <어나더 라운드>의 엔딩으로 유명한 곡이죠. 왜 이 곡이 떠올랐어요?
영화는 못 봤는데, 배우 매즈 미켈슨(Mads Mikkelsen)을 좋아해서 그 영화의 엔딩 장면이 알고리즘에 떴어요. 자기 전이었는데, 그걸 보는 순간 잠이 확 깨는 거예요. 원래 무용을 해서 그런지 몸짓이 아름답더라고요. 저 자유로운 몸짓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하고 그다음 영상으로 크리스토퍼 월켄(Christopher Walken)이 뮤직비디오에서 춤추는 걸 봤어요. 거슬러 올라가면 권해효 선배님이 한 뮤직비디오에서 춤추던 영상도 생각났고요. 그렇게 중년의 배우들이 본인의 흥과 필에 심취한 모습이 좋아 보였어요. 나는 뭔가에 저렇게 심취할 수 있을까, 그런 충동이 오는 순간을 기다렸어요. 뭔가를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감정에 도취될 수 있을까 궁금했거든요. 그러다 문득 콘셉트와 오브제를 보고 오늘 그 기회가 열릴 것 같았어요.

요즘처럼 바쁜 일상에서 꼭 지키는 루틴도 있어요?
뭘 하려고 해도 거의 못 지키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10분이라도 ‘나 자신’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건 꾸준히 하고 있어요.

어떤 식으로 집중하나요?
한자로 이름을 써요. 아이들 이름을 지으며 배우로서 새로운 이름을 갖고 싶어 작명가를 찾아갔는데, 이름은 그대로 가져가되 한자 뜻을 바꾸면 어떻겠느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벼슬 경’에 ‘빛날 호’를 쓰고 있었는데, ‘공경할 경’에 ‘맑을 호’라는 이름을 받았어요. 어떤 물이든 그 모양 그대로 받아낼 수 있는 큰 그릇의 사람이 되라는 뜻이래요. 대신 이 뜻을 펼치기 위해서는 이름을 1만 번 쓰라고 하더라고요. 1만 번을 써야 비로소 내 이름이 된다고요. 몇 번 도전했는데 늘 2천 번쯤 쓰고 포기했어요. 목표를 정하니까 괴롭고 힘든 여정이었는데 하루에 10분씩, 그 시간에 이걸 하자 해요. 이름을 좀 쓰고 그날 할 일에 대한 정리를 합니다. 꽤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포토그래퍼
    김민주
    스타일리스트
    우리정
    헤어
    정원
    메이크업
    박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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