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전도연에게 “언니 파이팅!”을 외칠 수밖에 없는 이유.
2025, 전도연과 김고은
넷플릭스를 보다 밤을 새웠다. <자백의 대가> 첫 회만 봐야지 시작했다가 그리 되었다. <길복순>(2023)도 보고 <리볼버>(2024)도 봤지만, 그때와는 또 다른 전도연의 얼굴이었다. 웃을 땐 잔인한 운명 속에서도 사랑스러웠던 <너는 내 운명>(2005)의 ‘은하’가 스치고, 절망할 땐 하드보일드 멜로 <무뢰한>의 ‘혜경’이 스쳤다. 돌이켜 보니 전도연의 작품은 빼놓지 않고 오픈런으로 봤다. 나 이 ‘언니’, 믿고 봤네?
<협녀: 칼의 기억>(2015) 이후 다시 만난 김고은과의 케미는 기대 이상으로 뭉클했다. 남편을 죽인 살인범으로 몰린 윤수(전도연)와 대신 죽였다고 자백하겠다는 모은(김고은). 서로를 믿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두 여자의 핏빛 연대는 <델마와 루이스>의 엔딩처럼 멋졌다.
1997, 접속과 해피엔드
1997년. 학교가 끝나면 친구 집에 모여 채팅을 했다. 대화가 잘 통한다 싶으면 전화를 했고, 통화가 재미있다 싶으면 ‘우편’으로 사진을 주고 받기도 했다. 한창 대화가 이어지는데 친구 남동생이 수화기를 들(어 통신이 끊기)면 다같이 소리를 질렀다. “접속 끊겼잖아!”
잘파 세대에겐 비둘기 다리에 편지를 묶어 보냈다는 이야기만큼이나 생경할 PC통신 시대. 니들이 ’사이버 러버’를 알아?! 그 시절 우리는 채팅과 폰팅과 벙개로 멋진 상대를 만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품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1996)가 유럽 여행에 대한 로망을 퍼뜨린 것처럼, <접속>(1997)은 채팅으로 멋진 인연을 만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었다. 한석규가 아닌 다음에야 ‘목소리 좋은 남자 치고 잘 생긴 남자는 없다’는 진리에 가까운 현실은, 삼세번 이상 겪고 나서야 깨달았다.
하우스메이트이자 단짝 친구의 연인을 오랫동안 짝사랑하는 수현(전도연). 어느 밤, 드라이브를 하다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그 순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매료된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Pale Blues Eyes’. 이후 수현이 그 노래를 신청하자 라디오 PD인 동현(한석규)은 자신의 ‘옛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PC통신에 접속해 ‘여인2’ 수현과의 대화를 시작한다.
동현의 아이디는 ‘해피엔드’. 영화 속에서 ‘A Lover’s Concerto’가 깔린 피카디리 극장 엔딩의 복선이 되었고, 이후 전도연에게 수많은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의 제목이 되었다.
2002, 이혜영과 전도연
<리볼버>의 전도연과 임지연도 비슷하지만, <자백의 대가>를 보다 보면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의 두 주인공이 떠오른다. 왕년의 전문 금고털이범 ‘가죽잠바’ 경선(이혜영)과 전직 라운드걸 출신이자 가수 지망생 ‘선글라스’ 수진(전도연).
돈가방 때문에 배신하고 싸우는 이야기는 많았지만, 여성 투톱은 드물던 21세기 초. 뱅헤어에 가죽치마를 입은 파격적인 스타일로 변신한 전도연의 당시 나이는 서른 즈음, 올해 <파과>로 ‘존 윅’ 위협하는 K누나 액션을 보여준 이혜영은 마흔이었다.
우리들의 죽여주는 언니, 전도연
<파묘> 이혜영과 <파과> 김고은의 연결고리는? ‘죽여주는 언니’ 전도연이다. 사람 죽이는 것보다 아이 키우는 게 훨씬 힘든 킬러 ‘길복순’부터 남편은 살해 당하고 딸 아이를 지켜야 하지만 아내와 엄마 역할이 전부가 아니라 사람들의 오해를 사는 ‘안윤수’까지, 전도연이 아니었다면 몰입하기 어려웠을 역할들이다.
한국 영화는 침체기지만 우리는 전도연 보유국. 그래서 빗속에서 모은(김고은)이 그랬듯 전도연을 향해 외쳐본다. “언니 파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