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잠 ‘못’ 든 사이

잠 못 드는 밤이 많아질수록 체중계의 숫자가 늘어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다이어트 방해꾼 ‘수면 부족’.

수면 부족과 비만의 연결고리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체중과 신체 활동을 필수 불가결한 관계로 여겨왔다. 규칙적인 운동이 건강한 체중을 유지하는 필수 요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만 관련 연구가 진화하면서 체중과 운동 사이의 연관성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단순히 ‘섭취한 칼로리’에서 ‘소모한 칼로리’를 빼는 간단한 계산법만으로 체중 감량 행위가 설명되지 않는다는 거다. 최근 연구들은 이 모순적인 관계에 주목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 즉 비활동성이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것만큼 건강한 체중 유지와 비만 예방에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주목할 건 ‘숙면의 힘’이다. 수면 부족과 비만 유병률 사이의 강력한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증거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임상 수면 교육 전문가 테리 크랄(Terry Cralle)은 “수면 부족과 비만은 필연적인 상호 동반 관계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수면 부족이 신진대사 저하, 신체 활동성 감소, 식욕 증가를 동반하기 때문이죠”라고 설명한다.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넘겨버릴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수면 부족은 매일 새벽 2시까지 영상을 보고 몇 시간 눈도 붙이지 못한 채 출근하려고 새벽 6시에 일어나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평소 수면 시간이 성인 하루 권장 수면 시간인 7~9시간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 자체로 만성 수면 부족. 한두 시간 늦게 자는 습관이 대수롭지 않아 보일지 몰라도 이런 생활 패턴이 몇 주 혹은 몇 달간 지속되면 어느새 허리 사이즈는 늘어나 있을 것이다.
미국 내과학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하루 7시간 미만으로 자는 사람들은 권장 수면 시간을 지키는 사람보다 체질량지수(BMI)가 높고 비만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연구에서는 하루 6시간 미만 수면하는 사람들은 제2형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고 보고했다. 

깊이 자는 사람이 덜 먹는다

수면 부족은 단순히 ‘자는 시간의 길이’만으로 판단되는 게 아니다. 적정 시간을 잤더라도 수면의 질이 낮다면 수면 부족 상태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옆사람의 코골이, 업무 스트레스, 육아로 인한 잦은 수면 중 각성 모두 수면 결핍을 초래한다. 원인이 무엇이든 수면의 질이 떨어지거나 잠이 부족하면 체중 관리는 어려워진다. 클리블랜드 메트로헬스 수면센터장 존 카터(John Carter) 박사는 “만성 수면 부족은 휴식 상태에서 소모하는 에너지인 기초대사량을 감소시킵니다”라고 말한다. 게다가 피곤한 사람일수록 충분히 잔 사람보다 고칼로리 음식을 더 많이 찾는다. 늦은 밤까지 깨어 있거나 뒤척이며 잠을 잔 다음 날, 유독 달콤한 음식이 당긴 경험을 했을 거다.

NYU 의과대학 크리스틴 렌-필딩(Christine Ren-Fielding) 교수는 “몸이 피곤할 때 당이 많은 음식과 음료를 찾는 건 에너지를 빠르게 회복하려는 자연스러운 신체 반응입니다”라고 설명한다. 문제는 이런 음식을 섭취하더라도 피로 때문에 에너지 소비가 줄어든다는 데 있다. 소모되지 못한 칼로리는 지방으로 저장되기 때문이다. 수면 부족은 신체뿐 아니라 의욕과 의사결정 능력도 떨어뜨린다. 피곤한 상태에서는 필라테스 수업을 건너뛰기 쉽고,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과일이나 채소 대신 즉석식품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 수면 코치 셰비 머멜스타인(Chevy Mermelstein)은 “잠이 부족하면 합리적이고 건강한 선택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몸이 지쳐 있으니 식단을 짜거나 요리할 에너지가 없는 거죠”라고 조언한다. 결국 피로한 사람들은 끼니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가공식품이나 카페인 음료를 자주 찾는데, 이는 몸이 에너지를 빠르게 보충하려는 일종의 생존 반응이다. 

비만의 숨은 호르몬 메커니즘

수면 부족은 단순히 피로만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식욕과 신진대사를 조절하는 주요 호르몬 균형을 무너뜨려 체중 증가를 부추긴다. 잠이 부족하면 ‘포만감 호르몬’이라 불리는 렙틴(Leptin) 분비가 감소한다. 렙틴이 줄면 포만감을 느끼기 어려워져 평소보다 더 많이 먹게 된다. 반면 ‘식욕 촉진 호르몬’인 그렐린(Ghrelin)은 수면이 부족할수록 활발히 분비된다. 그렐린 수치가 높아지면 고칼로리 음식에 대한 욕구가 커진다. 또 하나의 중요한 호르몬은 코르티솔(Cortisol)이다.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알려진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지면 복부 지방이 늘고 근육이 손실되며 인슐린 민감성이 떨어진다. 이는 결국 혈당 상승과 지방 축적으로 이어진다. 신경과 전문의 앤 마리 모스(Anne Marie Morse) 박사는 “수면의 질이 낮으면 서파 수면(Slow-wave Sleep)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라고 설명한다. 깊은 수면이라고도 하는 서파 수면 시 분비되는 성장호르몬은 신체 회복과 대사 조절, 근육 유지에 필수적이다. 수면 시간이 적을수록 자연스레 비만의 위험이 높아지는 이유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법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수면 부족이 유발하는 고칼로리 음식 섭취가 다시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미 여러 연구에서 포화지방 섭취가 늘고 식이섬유 섭취는 줄어들 경우 얕은 비회복성 수면을 유발할 수 있으며, 당류와 탄수화물을 과다 섭취하는 것이 수면 장애를 악화시킨다고 밝혀졌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수면의 질을 조금만 개선해도 체중 감량에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날 테니, 가장 먼저 자신의 수면 습관을 점검하고, 수면 위생(Sleep Hygiene, 충분한 휴식과 숙면을 위해 지키는 일상 습관)을 개선해야 한다. 수면 전문가 제시카 핑크(Jessica Fink)는 “생체리듬은 수면과 각성 시간을 결정해요. 불규칙한 기상 시간은 생체리듬을 교란시켜 수면의 질을 떨어뜨립니다. 전날 잠을 설쳤더라도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세요”라고 조언한다.

불면증 환자가 종종 수면 제한(Sleep Restriction)이라는 인지 행동 치료 기법을 통해 수면 습관을 교정하는데, 이는 지정한 시간에만 잠을 자는 방법이다. 하루를 시작했다면 햇빛을 쬐고 몸을 움직여라. 낮에 충분히 활동하면 밤에 더 빨리, 그리고 깊은 잠에 들 수 있다. 머멜스타인 코치는 “좋은 숙면을 위한 습관은 아침에 시작됩니다. 낮 동안 충분히 먹고 움직여야 저녁의 수면이 깊어집니다”라고 강조하고, 렌-필딩 박사는 “이른 저녁에 하는 식사가 수면의 질을 높이고 체중 감량에도 도움을 줍니다”라고 조언한다. 숙면을 위한 현실적인 팁을 보태자면 우선 오후 2시 이후에는 카페인을 자제할 것. 그리고 잠들기 1시간 전부터는 멜라토닌 분비를 촉진하기 위해 전자기기와 조명을 줄이는 것이다. 심한 코골이나 잦은 각성, 불면으로 고생한다면 체중 증가를 의심해보자.

미국 수면의학회 발표에 따르면 체중이 10%만 늘어도 폐쇄성 수면무호흡증 발병 위험이 무려 600% 증가한다. 만약 수면무호흡증을 진단받더라도 최근에는 양압기(CPAP)를 통해 쉽게 치료할 수 있으니 수면 전문의를 찾아갈 것. 양압기 치료는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고, 단 음식에 대한 갈망을 줄여줘 체중 감량에도 효과적이다. 비만 수술 전문의 헥터 페레즈(Hector Perez) 박사는 “수면의 질을 높이는 것은 식욕 조절과 체력 회복, 그리고 기분까지 개선하는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라고 강조한다. 그는 최고의 체중 감량 전략은 수면을 바로잡는 것이며, 이는 어떤 다이어트보다 효과적일 것이라고 전한다.

    PETRA GUGLIELMETTI
    포토그래퍼
    정원영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