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오늘날의 한국 미술을 소개하는 작가 앤디 세인트 루이스
예술 평론가이자 큐레이터, 작가로 활동하는 앤디 세인트 루이스는 미술계와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도 그 안의 변화를 면밀히 관찰한다. 그가 포착한 오늘날의 한국 미술은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 서울아트프렌드(@Seoulartfriend)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예술의 객관화, 앤디 세인트 루이스
처음 한국을 찾은 2009년부터 지금까지 16년째 한국 미술계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미술에 매력을 느낀 계기가 있나?
미술사학을 전공했음에도, 아시아 계통 미술을 잘 몰랐다. 특히 한국 미술은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외에 알려진 바가 별로 없었다. 막상 한국에 와보니 좋은 전시도 많았고, 작품을 감상하기에 적합한 대안적 공간도 잘 갖춰져 있더라. 그때부터 책도 읽고, 전시를 보러 다니며 한국 미술을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 미술계가 조금은 불친절하다는 걸 느끼기도 했다. 질 좋은 전시에 비해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전시 정보를 한곳에 모을 방법을 찾다가 2011년, 매달 서울에서 열리는 모든 전시를 웹사이트에 정리하기로 했다. 전시 리뷰와 기타 미술 관련 콘텐츠도 함께 게시했다. 모아놓고 보니 매달 200여 개의 새로운 전시가 열린다는 사실에 한국 미술계가 얼마나 광범위하고 활성화되어 있는지 실감했다. 개인적 필요에서 시작된 이 일은 어느덧 전시를 널리 알리고 홍보하는 역할로 이어져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서울아트프렌드에 매주 새로 열리는 전시 정보를 최소한의 글로 간단명료하게 나열한다. 웹사이트의 바통을 이어받은 것인가?
2021년까지 운영하던 웹사이트는 인스타그램과는 형식이 조금 달랐다. 서울아트프렌드에는 철저히 내가 보고 싶은 형식의 콘텐츠를 게시한다. 한 주에 개막하는 전시 7개를 날짜별로 정리하고, 갤러리나 미술관의 주소, 대략적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지도, 운영 시간, 전시 기간 등 필수 정보를 한글과 영어로 제공한다. 전시 콘셉트를 요약하거나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등 이해를 돕기 위한 짧은 글을 덧붙이기도 한다. 상단에는 각각의 전시를 대표할 수 있는 키워드도 함께 넣는다. 흥미롭거나 의미 있는 전시는 ‘Exhibition View’라는 제목으로 10장의 전시 이미지와 함께 업로드한다.
텍스트 기반의 뉴스레터 형식을 취하는 이유는?
재미의 측면에서 영상 콘텐츠의 강점이 뚜렷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텍스트가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고,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최신의 소식을 전해야 하는데, 전시를 설치하지 않았거나 이미지가 없는 등의 변수가 생기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정보를 흡수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가 시간에 전시를 보고 싶은데 뭘 봐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사람에게 가장 직관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고 싶었다. ‘Simple is the best’. 가끔은 단순한 게 가장 좋을 때가 있다.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가 모여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 같다.
실제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들의 반응은 어땠나?
솔직히 말하자면, 도달률 같은 분석적 데이터 외에 특별한 피드백을 듣지는 못했다. 별다른 스토리텔링 없이 그저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울아트프렌드’의 운영자가 누구인지조차 모른다. 다만, 2024년 4월부터 시작한 주간 전시 소개가 정말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단순히 전시를 문서화하던 때와 달리 조회수와 저장수의 비율이 월등히 늘었다.
콘텐츠 제작자이자 예술 평론가, 큐레이터, 작가로서 어떤 관점과 태도를 취하려 하나?
내가 다루는 범위 내에 존재하는 작가 혹은 작품에 관해서는 객관적 정보에 입각한 맥락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즉, 작품에 관한 개인적·비판적 관점을 주장하기보다는 작가가 표현하려는 형식적이고 개념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춰 해석하려 한다는 거다.
최근 몇 년 새 한국 미술계를 향한 세계의 관심이 증가했다.
음악, 영화, 문학, 패션, 뷰티, 음식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해외 관객이 다양한 한국 문화를 접하면서 그 누적 효과는 더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대된다. 언어와 문화의 경계가 없는 동시대의 보편적이고 시급한 문제들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한국 미술계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모더니즘 추상화, 개념 설치 미술, 비디오 및 뉴미디어 등 한국 미술계가 제공하는 다채로운 선택지는 해외 관객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간다.
삼성, 현대, LG 등 미술을 향한 국내 주요 기업의 애정과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아티스트의 인지도를 높이고 홍보할 최적의 시기다. 일본의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나 중국의 아이웨이웨이(Ai Weiwei) 같은 세계적인 ‘록스타’급 한국 아티스트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예술과 대중성은 어떤 관계성을 가질까?
대중성이 더 많은 사람을 예술계로 끌어들이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예술가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관객이 좋아할 만한 작품을 만들다 보면 영혼과 정직함, 믿음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제프 쿤스(Jeff Koons)나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 같은 유명 작가가 되길 원할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대중성이라는 키워드를 배제하고 자신만의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작년, 한국 작가 25인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 <Future Present: Contemporary Korean Art>도 펴냈다.
한국 작가들을 특정 유형의 운동이나 범주로 분류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책 역시 그런 포괄적 개념의 틀에서 벗어나 ‘밀레니얼’이라는 세대만 유일한 범주로 삼는다. 범주를 설정한 이유는 1960~70년대 작가들에 비해 80년대 작가들을 향한 한국 미술계의 주목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김아영, 정희민, 이강승 같은 작가들 말이다. 25명의 작가는 밀레니얼 세대 안에서도 2000년 이후 대학을 졸업한 이들로 꾸렸다.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여러 어려움을 이겨냈고, 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디지털 정체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최초의 세대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시대적 배경이 동일한 작가들이 저마다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작품 활동을 한다는 점도 인상 깊다.
예술가는 굉장히 다학문적인 존재다. 한국 밀레니얼 세대 비디오 및 미디어 아티스트의 두드러지는 특징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비디오 아티스트는 단순히 비디오 작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설치와 조각, 회화, 프린트 등 다양한 매체를 두루 다룬다. 추상이나 구상, 과정 중심적 예술을 전개하는 이들은 하나의 매체에 국한되지 않는 것 같다. 이미지의 본질과 실체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어떻게 진화할지를 탐색하는 과정이 아닐까? 정희민이 디지털 기반의 작업에서 조각에 가까운 과정 중심의 작업으로 옮겨간 것처럼, 매체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사고를 끌어내는 거다.
콘텐츠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은?
콘텐츠를 지켜보는 이들 중 일부가 직접 전시를 방문해 더 많은 작품을 경험하고 영감을 얻는다면 정말 뿌듯할 것 같다. 최근 팔로워 2만 명을 돌파한 것은 좋은 신호다. 콘텐츠를 통해 진정한 가치를 얻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뜻이니까. 매주 업데이트하다 보니 자료 수급에 어려움도 있지만, 일관된 방향성을 유지하는 중이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예술을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국내 관객뿐 아니라 해외 관객도 한국 미술을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직접 전시를 방문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나?
미술을 업으로 삼는 내게는 큰 차이가 있지만, 가끔 미술관에 가는 걸 즐기는 일반인에게는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분명한 건 실제 전시를 보러 갔을 때 실망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 사진전은 다를 수 있겠지만, 스케일이나 물성 등이 중요한 설치, 조각, 비디오 등의 작품은 관람객과 직접 마주할 때 더 깊이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 전문 지식이 없어도 괜찮다. 그저 현장에서 작품을 있는 그대로 느끼면 된다. 심지어 한국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전시는 무료이거나 저렴해서 직접 가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본다.
예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예술에 쉽게 다가가는 방법이 있다면?
일단 가보는 것. 전시를 보러 가기 전, 긴장감을 느끼거나 미리 공부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전시장에 걸린 모든 작품을 꼼꼼히 살펴보며 어떤 의미를 찾으려 애쓰거나 특별한 경험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 그림 하나에 1분만 투자해보자. 시각적으로 즐거움을 느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 포토그래퍼
- 차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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