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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전세계 아트 페어를 섭렵한 전문 컬렉터 송경하&석홍지

2025.08.29이재윤

전 세계 아트페어와 갤러리, 오픈 스튜디오를 종횡무진하는 송경하, 석홍지 부부는 200여 점의 작품을 보유한 전문 컬렉터다. 2018년부터 아트 기획사 컨템포러리(Kontemporary)를 운영하고 있다.

석홍지(왼쪽)와 송경하(오른쪽). (왼쪽부터) Tim Brawner, ‘Nyctalops’, 2022, Acrylic on Canvas, 45.7×60.9cm. Arjen, ‘Untilted 8’, 2021, Oil on Canvas, 60×80cm. 이근민, ‘Refining Hallucinations’, 2016, Oil on Canvas, 184×222cm.
송경하와 석홍지의 집 침실에 걸린 작품. 김춘미, ‘Ivy’, 2024, Oil on Canvas, 140×120cm.
침실 입구에 걸린 작품. David Shrigley, ‘It’s All Your Fault’, 2019, Screenprint on Paper, 56×76cm.

12년째 지속하고 있는 아트 컬렉팅의 시작은 어디였나?
석홍지 영국에 머물던 때, 우연히 방문한 경매 현장에서 생각보다 사람들이 작품을 쉽게 사고판다는 걸 알았다. 전업 컬렉터가 되기 전,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좋은 공간을 수없이 찾아다닌 경험도 영향을 미쳤다. 멋진 공간에는 꼭 좋은 작품이 걸려 있더라. 개인적으로 가장 뜻깊은 컬렉션은 조세프 알버스(Josef Albers)의 ‘인터랙션 오브 컬러(Interaction of Color, 1963)’ 시리즈다. 컬렉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가장 처음 장만한 작품이기도 하다. 둘 다 건축학을 전공해서인지 건축에 영향을 미친 작가의 작품에 끌렸다. 교과서에 나올 법한 유명 작가의 작품을 살 수 있다니, 컬렉션의 중심축이 되어줄 것 같았다.

송경하 작품 하나를 관람하는 데 드는 평균 시간은 30초라고 한다. 30초만 봐도 되는 걸 굳이 돈을 들여 구매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좋아하는 걸 더 오래, 더 가까이 두고 싶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든 함께 있다 보면 마치 집에 사람 하나가 더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두 사람의 컬렉션에 포함시킬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있다면?
송경하 작품을 구입하는 건 단순한 감상을 넘어 깊은 개입과 책임이 따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작품을 선별하는 명확한 기준과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일단 첫눈에 매료되어야 한다. 시각적으로 마음에 드는 작품에 한해서 작가와 작품의 독창성(Originality)과 숙련도(Quality)를 살핀다. 그 외에 상상력, 심미성과 같은 여러 지표를 가지고 작품의 가치를 평가한다.

석홍지 물론 커리어나 나이대에 따라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 작가나 작품에 대해 알려진 정보가 많으면 작품을 알아보는 일이 훨씬 수월하다. 반면, 처음 보는 작가이거나 너무 어린 작가라면 시간을 두고 천천히 탐색전을 펼친다. 이유가 무엇이든 돈을 들이는 일이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점차 만족스러운 컬렉션에 다가가는 중이다.

제일 최근 구매한 작품 역시 그 기준에 부합했나?
석홍지 지난 5월, 프리즈 뉴욕에서 브라질 추상 작가 탈리타 하마우이(Thalita Hamaoui)의 작품을 샀다. 화려한 색감에 반했고, 작가가 그동안 선보인 작업도 마음에 들었다. 갤러리가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한 전시라는 점도 인상 깊었다. 

1년 중 6개월 이상을 해외에 머무르며 유수의 갤러리와 아트페어, 작가들의 오픈 스튜디오, 컬렉터의 집을 살핀다. 어떤 곳을 주로 찾나?
송경하 전 세계 미술 관련 일정은 이미 정해져 있다. 세계 각국에서 열리는 아트바젤과 프리즈, 비엔날레를 따라 각 도시별 중요한 전시들이 개최되기 때문에 우리 역시 그 일정에 맞춰 움직인다. 

석홍지 주요 도시의 아트페어가 ‘가야 할 곳’이라면, 새롭게 시작되는 곳들은 ‘가고 싶은 곳’이다. 아트바젤 파리는 첫 회가 너무 좋아 이후로도 계속 찾고 있고, 2026년 2월에는 중동 지역에서 처음으로 카타르가 메이저 아트페어를 열어 방문을 계획 중이다. 또 영국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V&A Museum)과 네덜란드의 보이만스 반 뵈닝언 미술관(Museum Boijmans Van Beuningen)에서 공개한 보이는 형태의 수장고처럼 새로운 방식의 전시이자 색다른 혁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곳은 놓치지 않으려 한다. 미술사의 근간이 되는 작품도 챙긴다. 다빈치나 라파엘로처럼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그 힘을 느끼고, 때로는 요즘 미술과 비교하곤 한다. ‘내가 다빈치의 작품을 아무 정보 없이 봤다면 샀을까?’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재미도 있다. 그 밖에 유행하는 장소나 새로 생긴 호텔, 건물, 레스토랑에서도 영감을 얻는다.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다 보면 각각의 아트 신이 가지는 차이점도 금세 알아차릴 것 같다.
송경하 유럽 기반의 나라들은 미국이라는 신대륙이 생기기 전까지 오랜 시간 미술 종주국이었기에 정통성을 가진 진지한 미술 성향이 짙고, 시간의 속도도 느린 편인 것 같다. 반면 미국은 추상 같은 개념미술이 발전한 곳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행위예술처럼 혁신적이고 새로우며 충격적인 작품이 많고, 변화의 속도도 훨씬 빠르다.

정통과 혁신 사이, 한국 미술계는 어느 지점에 서 있다고 생각하나?
석홍지 가장 좋은 걸 가장 먼저 가져오려고 하는 민첩함이 돋보인다. 동아시아의 역사는 굉장히 길어 도자기, 서예 같은 문화로 다져진 기본기가 탄탄하다고 생각한다. 그를 바탕으로 작품을 보는 자기만의 취향을 만들어가고 있는 시기인 것 같다.

송경하와 석홍지의 집 거실 전경. (왼쪽부터) Larissa de Souza, ‘Velas acessas para o amor que partiu’, 2023, Acrylic and Mixed Media on Linen, 80×40cm. Aya Takano,‘The Summer Sea, A Beach of Crying Sand’, 2004, Acrylic on Canvas, 145.7×111.8 cm. Wang Ye, ‘Soft’, 2024, Silk Embroidery on Silk, 20×30 cm.

남다른 민첩함으로 이룩한 한국 미술계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송경하 한국 미술계의 강점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용기 있게 시도하는 것이다. 영상 같은 미디어나 거대한 스케일의 매체를 과감하게 활용하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 작가들은 급변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경쟁력을 갖추게 되더라.

석홍지 한국 문화가 성장하면서 세계적인 갤러리들이 한국 미술계에 더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갤러리들이 한국 작가를 영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5년, 10년 전만 해도 제3세계 작가나 여성 작가 영입이 많았다. 다르게 말하면 한국이 주목받으면서 그동안 꾸준히 활동해온 작가들이 더욱 빛을 보는 걸 수도 있다. 프랑스 파리 피노 컬렉션 미술관과 협업한 김수자나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전시를 올린 서도호처럼.

직접 관찰한 해외 미술시장 속 한국 미술의 위상은 어떤가?
석홍지 이우환, 박서보, 이배 같은 단색화 거장들의 작품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한국 미술계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면 더 다양한 한국 작품으로 시야를 넓히는 식이다. 반면, 해외 유명 어워드에서 수상을 하고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해외 활동이 활발한 작가들은 상대적으로 빨리 주목받기도 한다. 2023년 김아영이 세계 최대 규모의 미디어아트 어워드 ‘2023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에서 최고상인 골든 니카상을 수상한 뒤, 폭발적 관심을 받은 것이 좋은 예다.

송경하 국내와 해외에서 인기 있는 한국 작가의 경향이 다른 것도 흥미롭다. 그래서 하나의 갤러리라도 국내와 해외 부스에 다른 작가를 편성하는 전략을 펼친다.

아트페어가 열리면 가장 주목받는 것은 어떤 작품이 얼마에 팔렸느냐다. 그 중심에 있는 컬렉터로서 안목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석홍지 ‘미술관이 이 작품을 왜 샀을까’ 생각하면서 소장품을 살피는 것. 전 세계 유명 미술관 10곳, 너무 많다면 테이트 모던과 뉴욕 현대미술관(MoMA) 정도만 봐도 괜찮다. 한 작가의 작품을 여러 개 산 경우도 있고, 연구 목적이나 작품 시기에 따라 구매한 경우도 있고, 어떤 작가는 한 점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구매 성향이나 선정 이유를 생각하면서 주요 컬렉션 위주로 먼저 보고, 여건이 된다면 아트페어도 다녀보길. 해외에서는 뮤지엄 후원 활동을 하면서 미술관 위주의 여행을 다니는 등 미술 이해를 돕는 프로그램이 많으니 활용해보는 것도 좋겠다.

컬렉팅 입문자가 어떤 방식으로 미술계에 접근하면 좋을까?
송경하 눈앞에 있는 작품이 전체 중 일부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요 아트페어 일정이나 미술관, 작가 정보, 시장 동향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석홍지 예산과 용도에 맞는 작품을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또 지난 10년간 온라인 옥션이 활성화하면서 구매할 수 있는 작품의 수가 월등히 많아졌다. 생각보다 다양한 경로로 작품을 구할 수 있으니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해보길 권한다.

컬렉팅에서 지속성을 만들기 위해 제일 중요한 건 뭔가?
송경하 현실적으로 컬렉팅을 지속하려면 작품의 가치와는 관계없이 내가 팔고 싶을 때 팔 수 있는, 경제적인 순환이 가능해야 한다. 또 자신의 취향을 명확히 하려면 미술시장에 어떤 작품이 유통되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의 다양성을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야 하는 거다.

전략적인 움직임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은데.
송경하 세계적인 컬렉터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널리 알리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전략을 쏟는다. 루벨 뮤지엄(The Rubell Museum)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출신 작가 아모아코 보아포(Amoako Boafo)가 현시대 가장 성공한 흑인 작가로 알려진 것처럼 말이다.

석홍지 작가의 능력과 컬렉터의 서포트, 미술관의 서포트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때 비로소 미술 생태계 안에서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인공지능(AI) 같은 기술의 발전이 심화된 요즘, 아트 컬렉팅은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송경하 미술은 아주 오랜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손으로 하는 작업이 주류를 이루는 분야이며, 그 미묘한 차이를 계속해서 바라보는 게 컬렉팅이다. 그렇기에 컬렉팅은 인공지능과 건강하게 동행할 수 있는 통찰력을 준다고 생각한다.

석홍지 직접 비행기를 타고 가서 작품을 확인하고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일련의 과정은 하나의 여행과도 같다. 경험 중심의 컬렉팅을 특별하게 여긴다면, 자신만의 가치와 생각이 담긴 독특한 컬렉션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포토그래퍼
    차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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