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한 존재가 주류를 흔들어놓을 때 드러나는 비범함. 이센트릭 몰리큘스의 조향사 게자 쇤이 일으킨 경이로운 혁신.
‘향기의 무정부주의자’, ‘아로마 아나키스트’···. 향기에 대한 강한 반항성이 느껴지는 단어들이 향수 브랜드를 표현하는 수식어라면 믿겠는가.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개념의 니치 향수 브랜드 ‘이센트릭 몰리큘스(Escentric Molecules)’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센트릭 몰리큘스는 향의 분자가 체취와 만나 각기 다른 느낌으로 발향되는 메커니즘, ‘스킨 센트(Skin Scent)’로 유명하다. 향수를 뿌리는 사람에 따라 향이 다르게 느껴져 오직 나만의 살냄새가 연출되는 것. 이센트릭 몰리큘스의 탄생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던 아로마 분자인 ‘아이소 이 슈퍼(Iso E Super)’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아이소 이 슈퍼를 발견한 천재 조향사 ‘게자 쇤(GEZA SCHOEN)’은 단순함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미니멀한 조향 방식을 통해 향수를 새롭게 정의하는 이센트릭 몰리큘스를 설립했다. 지난 5월, 국내 최대 니치 퍼퓸 편집숍 퍼퓸갤러리에서 개최한 이센트릭 몰리큘스의 국내 론칭 이벤트 현장에서 게자 쇤을 만나 흥미로운 대화를 나눴다.
아직 이센트릭 몰리큘스가 익숙하지 않은 한국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소개해주세요.
이센트릭 몰리큘스는 조향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에 도전하며 향수 산업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향수 브랜드입니다. 우리는 단순함과 순수함에 강한 신념이 있습니다. 그 신념을 바탕으로 미니멀한 조향 방식을 통해 향수 예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죠. 우리 브랜드의 비전은 단순히 독창적인 향수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이센트릭 몰리큘스의 향수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향이 보다 유의미하게 다가가길 원하고, 느낀 적 없는 새로운 영감을 얻기를 기대합니다.
이센트릭 몰리큘스의 세 가지 라인업과 이 라인업에 기대한 효과는 무엇인지도 알려주세요.
이센트릭 몰리큘스는 ‘몰리큘(Molecule) 라인’, ‘이센트릭(Escentric) 라인’, 그리고 ‘몰리큘 +(Molecule +) 라인’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몰리큘 라인과 이센트릭 라인은 2006년 브랜드 탄생과 함께 론칭했죠. 몰리큘 라인의 향수는 단일 향료만 사용합니다. 향료 자체가 곧 향수가 되는 급진적인 미니멀리즘을 추구하죠. ‘몰리큘 01’은 오로지 아이소 이 슈퍼만을 담고 있습니다. 화학적으로 복잡한 분자 구조를 가진 향료의 발향은 놀랍도록 단순하고 직선적인데, 그 자체만으로 특별합니다. 한 악기에서 여러 가지 선율이 표현되는 것처럼 말이죠. 이센트릭 라인은 몰리큘 라인의 단일 향료를 중심으로 다른 원료를 블렌딩해 만듭니다. 아이소 이 슈퍼가 다른 향료의 향 노트를 증폭시켜주는 역할을 하지요. ‘이센트릭 01’은 아이소 이 슈퍼 65%에 라임, 헤디온, 아이리스가 조합됩니다. 마지막으로 2021년에 론칭한 몰리큘 + 라인은 몰리큘 01에 단 하나의 천연 향료를 조합한 향입니다. ‘몰리큘 01 + 만다린’은 아이소 이 슈퍼의 포근함과 만다린의 시트러스함이 조화를 이뤄 새로운 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센트릭 몰리큘스의 향수의 제조 방식은 지극히 단순합니다. 하지만 향은 결코 단순하지 않죠. 제가 기대한 효과는 여기에 있습니다. 향료는 단일하지만 향료의 복잡한 분자 구조가 만날 때 드러나는 놀라운 신선함, 바로 그것이죠.
아이소 이 슈퍼와의 첫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아이소 이 슈퍼 향을 처음 맡은 것이 1990년 8월이었습니다. 향에 대한 호기심으로 거침없이 향을 연구하던 시절이죠. 이상한 이름이 적힌 병 하나를 열어보게 되었는데, 그 느낌을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오랫동안 정체불명의 소리를 계속 들어왔는데, 어느 날 나무들 사이로 튀어나온 야생 동물을 마주하고 그 소리가 바로 그 짐승의 울음소리였다는 것을 깨달았달까요. 충격적으로 거친 느낌이었습니다. 아이소 이 슈퍼의 분자는 아무런 조합 없이도 중독적인 향을 냈습니다. 단독으로 맡았을 때는 후각이 감지할 수 없을 만큼 미세한 우드 향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맨살에 닿는 순간 체온에 의해 향이 강렬해지고, 그 향이 온몸을 감쌉니다.
천재 조향사로 불리는 지금, 당신이 조향사가 아닌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어릴 적부터 조향사가 꿈이었나요?
열세 살 때부터 남성 향수 샘플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열다섯 살이 되었을 무렵에는 그 샘플만 100개가 넘었죠. 눈을 가린 채 샘플을 시향하며 향만으로 구별하는 연습을 반복했습니다. 그중에는 아주 역한 향도 있었고, 손에서 놓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인 향도 있었습니다. 비슷한 향끼리 묶고 그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는 향료를 찾았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게 향수보다 숭고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죠. ‘이 향수들도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거잖아!’ 그 누군가가 제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정말 짜릿했습니다.
조향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가장 처음 떠오른 생각이 가장 중요합니다. 원료가 될 수도 있고, 분자 구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나 예술 작품에서 받은 영감일 수도 있고요. 우연히 마주한 색감이나 풍경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중요합니다. 조향하는 모든 순간에 그 아이디어를 기억하고 향에 담으려고 해야 하죠.
당신이 정의하는 이상적인 향기는 무엇인가요?
독창적인 조향 방식을 갖고 매력적인 비율의 향료가 모두 갖춰진 향기요. 아무리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향기가 사용자와 맞지 않다면 최악입니다. 단순히 좋은 냄새가 좋은 향수가 될 수 없습니다. 향수를 뿌리는 사람과 얼마나 잘 어울리느냐가 핵심이죠.
이센트릭 몰리큘스는 명확한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마다 다양하게 발현된다는 점에서 열린 결말의 소설 같습니다. 이센트릭 몰리큘스로 써 내려가고 싶은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이센트릭 몰리큘스는 향료의 복잡한 분자 구조에 영감을 받아 탄생한 향수 브랜드입니다. 향료가 사용자마다 다르게, 하지만 매력적으로 발현될 수 있도록 단일 향료 자체에 집중하는 미니멀한 조향 방식을 지향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저희 향수를 착용하는 사람이 향을 보다 개인적이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자 합니다. 점점 더 다양한 라인업을 확장하며 개인마다 다른 스킨 향을 통해 그 사람과 가장 잘 어울리는 향기를 찾아주려 합니다.
